내 집 이야기

雪中花 123...

소나무 01 2025. 3. 18. 11:39

춘분이 며칠 뒤다. 3월 중순인데 눈이 내리다니. 봄날의 마지막 눈인 듯. 

봄꽃들이 피기 시작했는데 잠시 움츠러든 것 같으면서도 하얀 눈 때문에 오히려 더 돋보인다면 역설인가. 눈은 눈대로 다시 겨울이 찾아볼 때까지 더는 없을 테니 한편으로 역시 더 맘 안에 들어오고.

 

가장 돋보이는 것은 홍매화. 오래전 여산 장날 길거리에서 묘목을 구입할 때 "설중매"라 하며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는데 꽃은 물론 향기가 더없이 좋다.

 

 

영춘화. 보는 이들이 개나리로 착각을 많이 하는데 이름 그대로 '봄을 맞이하는 꽃'.  줄기와 꽃 모양이 비슷하여 멀리에서 개나리와 혼동하기 쉬우나 개나리보단 개화 시기가 훨씬 빠르며 꽃이 단아하다. 서울에서 내려오며 분당 근처의 묘목원에서 샀던 것.

 

 

복수초도 눈 밭에서 꽃을 피우는 녀석이지만 내 집에서는 처음 눈을 대하는 것 같다. 눈이 조금 녹아내렸지만 이른 시간 때문인지 꽃잎을 닫고 있다.  익산 장날에 한 화분 가게에서 천 원 주고 샀는데 해마다 다시 피고 다시 피고... 그 뜨거운 여름날 땅이 가루가 되도록 메마르는데도 고사하지 않고 살아나는 그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과 함께 경이. 

 

 

아직 만개는 아니지만 산수유도 피기 시작하고 있다. 꽃모양 자체가 노란 눈송이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 위에 다시 흰 눈송이가 내려 더욱 곱게 피고.

구례 산동 마을에 갔을 때 집 돌담 주변과 계곡을 온통 노랗게 물들인 산수유의 장관을 기억하며 '추억의 꽃'으로 구입했던. 

머릿속에 맴도는 '아스라하다'는 말.

 

 

수선화. 지금 이 터에 살겠다고 땅을 구입하며 다른 묘목들과 함께 천 원짜리 수선화 하나를 구입해 발길 닿지 않는 언덕에 심고는 나 몰라라 했는데 어느 해  '뒤돌아 보니' 소나무 옆에 노란 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때

"오, 아니 안 죽고 살아 있다니...". 생명의 경이에 놀라다. 지금은 수십 개로 번식.

 

 

내 집에서 가장 이른 풍년화. 연못에 얼음이 꽁꽁인 2월 중순의 차가운 날씨에도 꽃잎을 내민다. 그래서 이건 기후적인 여건보다는 365일의 산술적인 계산에 정확히 반응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도.

산발적인 꽃잎이어서 가까이 다가 가 보지 않으면 존재감 없음이 흠이랄까.

 

 

생강나무 꽃. 피는 시기와 꽃 모양새가 비슷해 산수유와 혼동하기 쉽다.

정선 땅에 갔을 때 조양강 물가에서 만난 어느 촌부가 지금 생강나무 꽃이 한창이라며 작은 가지 하나를 꺾어 코에 대주며 냄새 맡아보라 했다. 생강 냄새가 났다.

강원도 아리랑에 나오는 동백은 남녘에 피는 빨간 동백이 아니라 이 생강나무를 말하는 것이라 했다. 하여 김유정의 '동백 꽃'도 사실은 이 생강나무 꽃이다. 아오라지의 정선을 떠오르게 하는 나무.

 

 

삼지 닥나무. 수년 전 전주에서 전통문화 관련 일을 할 때 알게 된 나무. 한지를 만드는 닥나무에서 이렇게 에쁜 꽃이 피어 나다니. 향도 그윽하다. 휴대폰의 접사렌즈를 썼는데도 작은 꽃잎 하나가 선명하지 않지만 곧 노랗게 활짝 피게 될 것이다.

 

 

이건 진짜 매화.

흔한 매화? 내 집 동산에 이제야 한 두 송이씩 피기 시작하는데 그야말로 꽃샘추위를 맞고 있는 듯 아직은 대부분 자태가 움츠러든 모양새. 이건 꽃보다 매실주나 효소 담그자고 10여 그루 넘게 구입해 심었는데 워낙 척박한 땅인 데다 게을러 터진 주인이 거름도 하지 않아 여름 날 '매우 매우 부실한 열매'로 그 주인을 '응징'한다. 하여 지금은 꽃 보려고 심었다며 스스로에게 엉뚱한 위로.

 

나열하고 보니 이 모두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온다는 특색이 있다. 확실한 봄의 전령.

 

내 블로그 제목과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인내하던 길게 느껴진 겨울이 가고

결국은

이 눈 속에도 결국 봄이 다시 내 곁에 오다.

 

                                       - 2025. 3.1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