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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들의 염탐

소나무 01 2022. 12. 24. 12:48

주방 창밖을 응시하니 새들이 분주히 오간다. 유리창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참새 대여섯 마리가 닭장 인근 나뭇가지에 날아들어 가지 사이를 옮겨 다니며 수선을 피우고 있다. 그러다가 곁에 있는 닭장 안으로 쏜살같이 날아들어가더니만 사료통 주변에 흩어져 있는 작은 옥수수 알갱이들을 쪼아 먹는다. 그리고는 다시 나뭇가지로 되돌아오고.

닭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반복적으로 먹이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보기 어려웠던 참새들이 최근 2-3년 전 부터 갑자기 많아졌다. 대개 10여 마리 이상 군집을 이루며 찾아 드는데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앙상해진 나무에 나뭇잎같은 운치를 보여준다.

 

장난기가 발동해 닭사료를 훔쳐(?)먹고 있는 참새를 향해 조심스레 접근해서는 순간적으로 출입문을 닫아 버렸더니 놀란 참새가 혼비백산하여 팔딱거리는 것이었다. 내가 닭장 안으로 들어서자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더니만 결국 좁은 철그물망을 뚫고 빠져나갔다. 내 입장에서는 잡거나 죽일 생각이 없었지만 녀석은 틀림없이 생사의 기로였을 것이다.

비록 참새일지라도 위기 의식을 느끼는 건 여타 동물과 다름이 없으리라. 그냥 '새대가리'가 아니었다. 본능일 수 있겠지만 염탐을 하고, 먹잇감을 구하고, 그리고 생존을 위한 탈출구를 찾는 모습에서 녀석들의 그런 일상을 나의 무력으로 흩트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졌다.

먹이를 구하기 힘든 겨울철, 특히 눈까지 내려 먹이를 찾을 수 없는 시기이고 보니 참새들은 주인의 급습같은 위험에 크게 놀랐으면서도 매일같이 내 집 닭장을 찾아오고 있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함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먹이를 주며 일부러 새들을 불러 모이기도 하는데...

나는 이후 모른 체하기로 했다.

 

사료통 주변의 작은 옥수수 알갱이들.  단거리용 망원렌즈를 장착했음에도 인기척에 쉽게 달아나는 바람에 참새가 먹이를 쪼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해 아쉽다.

 

지난봄에는 멧비둘기가 똑같은 형태를 보여 역시 장난기가 발동해 닭장 문을 급히 닫아 녀석을 체포할 수 있었다. 잡으려 하니 이리저리로 피하면서 탈출구를 찾았지만 녀석은 덩치가 커서 참새처럼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결국 제 풀에 꺾여 바닥에 주저앉는 것이었다. 

'여기는 닭장 안이고, 이것들은 내가 구입해서 닭들에게 주고 있는 사료이니 다시는 근접하지 않도록 하라'

그리 엄명하고 놓아 주었는데 녀석은 다음 날에도 또 다음 날에도 계속 날아드는 것이었다.

참새들이 지금처럼 계속 닭장으로 날아드는 걸 모면 나와 멧비둘기와의 사건을 어디서 전해 들었던 것일까. 놀라게는 해도 해치지는 않더라는...

그런데 떼로 몰려 다니는 물까치 녀석들까지 닭장 울타리 안으로 공습을 감행해 한바탕 요란을 피우고 가면

'아이코, 저놈들을 그냥- '

하는 저주성 증오심이 절로 생기는 것을 어찌하지 못한다. 20-30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기에 녀석들의 먹이를 취하는 행동은 가히 '공습' 그 자체일 만큼 위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달랑 4마리 남은 백봉오골계. 요즘 눈이 자주 내리고 또 쌓인 눈이 녹지 않아 대부분의 시간을 닭장 안에서만 보낸다. 몸집 큰 수탉 뒤에 있는 녀석이 지난 번 매에게 당한 녀석이다.

 

해서 경계의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단순한 사료 나눠먹기를 떠나 닭의 존재 그 자체를 노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2년 전 족제비에 의해 기르던 닭이 몰사를 당한 참혹한(?) 사례가 있었고, 또 지난여름 매의 급습 같은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 한 마리가 백봉오골계를 낚아채 하늘로 끌어올리려는 상황을 주방 유리창문을 통해 우연히 목격하게 되어 급히 달려 가 위기를 모면했던 경험이 있는데 당시 매가 닭의 무게 때문에 어떻게 하질 못하고 닭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기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 사건으로 털이 한 움큼 빠져나간 닭을 보면 얼마나 놀랐을까 싶어 지금도 측은 해 보인다.

 

오늘도 어김없이 참새들이 닭장 안을 염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앞의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녀석들을 더 이상 놀라게 하지 말자는 생각. 내 집에 찾아 온 것만으로도 고맙다 해야 맞을 것 같다.

하여 참새의 염탐은 모른체 하기로 했지만 혹 어떤 나쁜(?) 녀석들, 이를테면 단순한 사료가 아닌 생명을 노리는 족제비나 삵, 오소리 등이  내 집 닭장 안을 염탐하고 있지는 않을까 해서 가끔씩 주방 창밖으로 고개를 쑤욱 빼 살펴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주방 창문을 통해 본 닭장. 바로 앞의 병꽃나무 가지에 참새들이 자주 모여들어 닭장 안을 염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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