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293

청계 기르기

병아리 모습을 갓 벗어 난 3주 정도의 청계 9마리를 이웃집에서 얻어 기른 지 어느새 반년이 지났다. 9마리 가운데 암탉이 5마리쯤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3마리로 줄었다. 문제는 수탉. 달걀을 얻고자 함이니 수탉 6마리는 없어도 되었다. 기른 지 넉 달 정도가 지났어도 암수 구분을 할 수 없어 그동안 함께 길렀는데 이제는 확연히 구분이 되고 보니 수탉은 그야말로 계륵 같은 존재.   결국 벼슬과 육수가 두드러지고 깃털의 무늬가 돋보이는 이 청계 1마리만 남겨 두고 모두 정리하였다. 최근까지 함께 기르다 보니 얄미운 식객 노릇하는 것은 그만두더라도 서로 서열 싸움을 하느라 소란만 피우는 것이었다. 조금 쎄게 노는(?) 녀석이 상대의 벼슬이나 뒷목을 부리로 쪼거나 물면 꽥꽥거리며 그 순간 아수라장이..

내 집 이야기 2024.12.28

시월 끝 날 구절초를 보며

오늘 아침 기온은 8도. 바깥 날씨가 제법 차가 와져서 새벽에 일어 나 창문 열기를 주저한다. 거실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면  동트는 모습은 아직이고 대신 데크 앞의 하얀 모습에 눈길이 간다. 구절초.   내가 직접 심어 가꾼 게 아니다. 집 언덕에 피어있던 것이 어느새 퍼져 여기 작은 꽃밭을 가득 메웠다. 우선 청초하다는 느낌이어서 기분을 좋게 한다. 그리고 한참 들여다보며 여러 사념들에 사로 잡히게 되고. 시월 초부터 피기 시작한 꽃들이 거의 한 달째 같은 모습으로 피어 있다. 참 오래가는 꽃이다. 그러나 이 또한 통과의례를 벗어날 수 없으니 조금씩 시들어 가고 있어 아쉽다. 오늘이 시월의 끝날이라서 더욱.  여러 사념들 속에 문득 생각나는 노래들. 나는 시월의 마지막 밤에 뜻 모를 얘기만 남기고 헤어..

내 집 이야기 2024.10.31

둘레길의 맥문동

집과 연결된 미륵산 둘레길을 자주 걷는다. 가을 텃밭 관리로 며칠 뜸하다가 나섰더니 솔밭 오솔길 사이로 보랏빛 맥문동 꽃이 한창이다. 해마다 여는 서천군의 맥문동 축제가 지난 8월 하순에 끝났다는데 지금 여기에서 무리로 볼 수 있다니.  솔밭 밑으로 은은한 색으로 카펫을 깔아놓은 듯하다. 그렇게  많은 면적은 아니나 평소 이 둘레길을 찾는 몇 사람(?) 정도에게는 작은 환호를 안겨 주는 소중한 공간이 된다.  한약방을 하던 친구네 대문 옆 은행나무 밑에 자라고 있던 것을 어릴 때부터 봐 와서 낯설지 않은 식물. 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더욱 각인되어 있다. 내가 산자락에 집을 마련하고 아내와 함께 연못가에 처음 심었던 것이 이 맥문동이었다. 언덕에 흔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때 많은..

내 집 이야기 2024.10.03

벤츄레이터 교체

이런 걸 여기에서 팔까? 하면서도 면소재지 건재상회에 들러"정화조 바람개비...  " 했는데 곧바로 "벤츄레이터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매우 희소한 물건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지만 그 물건의 이름을 원어(Ventilator)로 표현해 주는 그 자체도 사실은 좀 놀라웠다. 얼마 전 변기 물탱크의 필 밸브(Fill valve)가 고장 나 철물점에 들러 내가 그 이름을 말했다가 뭘 달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고는 다시 말을 바꿔  "그 부레같이 생긴 것..    "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우리네 가옥이 현대식 구조로 바뀌면서 적지 않은 물건들이 처음 대하는 물건으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 이름들도 새로운 것이 많아졌다. AI 시대를 살..

내 집 이야기 2024.09.25

여름날의 석양

지난 여름날은 참으로 무더웠다. 노동력이 필요한 밖에서의 일은 거의 하지 못했다. 1주일 여를 더 지나야 평년 날씨가 될 것이라는데 이제 9월, 마음 안에 이미 가을이 들어섰다.숫자 상의 여름인 지난 6월부터 대문 밖에 나가 석양을 보았다. 저녁을 마친 후 한낮의 열기가 조금씩 가라앉는 해질 무렵에 집 주변을 거닐며 서녘의 노을을 볼 수 있어 좋았다.해는 그 자리에서 항상 같은 모습으로 졌지만 주위의 구름과 노을빛은 날마다 새로웠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그냥 무연히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라볼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차악 가라앉았다.그리고 남겨 두고 싶었다.가능한 같은 사이즈로 담았다. 똑같은 자리에서의 자연 현상 그대로.미처 담지 못한 날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여름날 3개월 동안의 석양을 ..

내 집 이야기 2024.09.01

닭장 확장

청계 중병아리 9마리가 새 식구로 들어오면서 기존의 닭장이 좀 좁아졌다. 많아 보인다. 이전에 20여 마리 성계를 어떻게 키웠나 싶다. 이 녀석들은 다른 품종들과는 달리 호기심이 많은 데가 호들갑을 떠는 스타일이어서 생동감이 있다. 약간의 거리를 이동해도 종종걸음 대신 날쌘돌이처럼 냅다 뛰어 다니는 모습이 우습다. 달리 표현하면 정신 사나울 정도로 녀석들이 좀 산만하다고나 할까.  그래도 아직 병아리 티를 벗지 않아 귀엽고 사랑스럽다. 암수 구분이 육안으로 구분되는 시기까지 키우면 과연 몇 마리가 암탉으로 될지 궁금. 기존의 닭장 옆으로 약간의 방사장이 있으나 허술하게 울타리를 둘러 허접하였다. 조금이라도 넓은 공간에서 활동하도록 나름 배려한 것이었으나 천정 그물이 없어 저녁 이후로는 족제비로부터의 피해..

내 집 이야기 2024.08.30

미스터리한 향기

저녁 후 마당을 거닐고 있었는데 은근한 향기가 느껴졌다. 시간 상으로는 7시쯤?뭐지? 그 향기는 꽃밭에 심어진 화초나 나무가 아닌 좀 더 먼 거리에 있는 존재에서 풍겨 전해오는 것 같았다. 마치 쥐똥나무나 때죽나무 그것처럼 약간의 자극이 느껴지는 향. 특별히 좋은 건 아니지만 은은함이 있어서 좋았다.그러나 주위를 둘러봐도 그 진원지를 찾아낼 수 없어 궁금. 비슷한 향의 목서는 아직 개화 시기가 아니어서 미스터리에 빠지다.집 언덕과 뒷산 쪽에서 건너오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만한 나무가 생각나지 않는다. 아카시나 밤, 자귀 꽃들은 이미 오래전에 졌고 보면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향기는 며칠 째 저녁 무렵부터 계속되었지만 실체를 알 수 없었다.엊그제는 유독 향이 강해서 약간 머리가 아플..

내 집 이야기 2024.08.29

다시 청계 입사

옆집에서 청계 병아리를 좀 가져가 기르란다. 부화기를 구입해 부화시켰는데 모두 직접 기르기에는 너무 많은 병아리들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장에서 중계 몇 마리를 살까 했는데 반가운 호의. 10마리를 주겠다길래 7마리 정도면 좋겠다 했는데 암수 구별을 할 수 없다며 9마리를 건네준다.  부화 후 3주 정도가 지난 병아리다. 암탉 5마리 정도면 알맞겠다 싶은데 몇 주 후 암수 구별이 되면 암탉 5마리만 기를 생각이다. 지금까지 7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얼마 전 토종닭 1마리가 무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 수탉 1마리를 제외하면 5마리가 알을 낳아주고 있다.문제는 지난봄에 구입한 청계 2마리 빼고는 노계화되어 이제 알을 잘 낳지 않는 데다가 한여름이고 보니 모두가 산란을 멈추고 있다는 것. 그래..

내 집 이야기 2024.08.14

자귀나무의 수난

장맛비에 자귀나무가 쓰러졌다. 비 잠시 그쳐 아침 일찍 마당을 거닐고 있는데 자귀나무 잎이 유난히 가까이 보였다. 밤새 접혀있던 잎이 아직 그대로여서 합환수(合歡樹)라는 그 의미를 떠올려 보며 반가워했다.  그런데 무심코 계단을 따라 언덕을 오르는데 이 자귀나무 가지가 앞을  턱 가로막고 있지 않는가.아이쿠! 가지가 부러져 내린 것이다. 가지 하나가 아니었다. 살펴보니 나무 전체가 쓰러졌다. 나무 본체의 중간 부분이 참혹하게 꺾여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그동안 빗물을 흠뻑 먹어 줄기와 잎이 무거워진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본체 중앙에 커다랗게 뚫렸던 새집 때문에 약해진 그 부분이 꺾여 나간 것이다.몇천 전 딱따구리가 찾아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둥지를 만들어 살다가 새끼를 길러 떠난 바 있는데 분명 ..

내 집 이야기 2024.07.09

해먹 설치

마당에 해먹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그 생각을 오래 하진 않았다. 집 앞마당에 그럴만한 나무도 없었고, 뒤 언덕 소나무 사이에 설치해 볼까 했었지만 약간 음습한 느낌이고 또 모기와 같은 벌레들 때문에 도무지 마땅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잊고 지냈는데, 얼마 전 어느 민박집 마당에 있던 해먹에 누워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시골에 터 잡고 내려와 산지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집마당의 나무들도 튼튼히 자라 주었으니 이제는 마당에 해먹을 매달아 보고 싶어진 것이다.(- 아니 그런데 벌써 '20여 년'이라고?)어쩔 것인가 세월은 그저 막힘없이 앞으로 앞으로만 가니.   검색해 보니 마음에 드는 게 나타났다. 모기장이 붙어있는 해먹이었다. 진보한 해먹이다. 값도 생각 밖에 쌌다. 택배..

내 집 이야기 2024.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