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농사 97

올 농사 마무리

나에게 '농사'라는 말은 호사스럽다. 이런 얼치기가 따로 없으니.어찌어찌하여 배추와 파, 갓을 수확하여 그런대로 김장을 했지만 무의 경우는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밭에 남아있던 무 잔챙이들을 거둬들여 무 구덩이에 보관하는 것으로 한 해 텃밭 농사를 마무리하다. 사실 진즉 뽑아 처리하려 했지만 크기가 너무 작아 하루라도 더 햇빛에 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12월에 들어섰고 밤사이 영하 기온으로 떨어져 더 이상은 의미가 없겠다는 판단.  8월 중순 파종해서 무더위와 병충해를 견디고 어렵게 자란 무. 이 정도의 양으로 무 김치를 담그다. 무는 지난 8월 하순 적기에 파종했으나 유기농을 고집하는 바람에 싹이 나오는 족족 벌레의 먹이가 되어 남아나는 게 거의 없었다. 특히 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워 벌..

텃밭 농사 2024.12.06

뭡니까 이게

호박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분명 그렇게 따지듯 항의할 것이다.내가 호박에게 늘 갑으로 군림한 대가를 지금의 참담한(?) 결과로 돌려받고 있다. 심을 때 딱 한 번 거름을 준 것 말고는 이후 나 몰라라 했으니.올해 호박 농사를 망쳤다는 넋두리다.  해마다 모종을 구해 심었는데 올봄엔 지난해 수확했던 것 중에서 건강해 보이는 씨앗을 골라 적당한 간격으로 파종했었다. 생각대로 모두 싹이 잘 올라왔고 왕성히 자라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암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시일이 지나면 나오려니 했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어쩌다 작은 구슬 같은 것을 달고 나오는 암꽃순을 보면 그리 반가웠고.  그러나 다시 그 자리에 가 보면 아기 주먹만큼 커져 있어야 할 호박이 사라지고 없었다. 한두 개가 그러려니 하고 다른 ..

텃밭 농사 2024.10.30

"일을 만들어요 -" 마늘종 수확

괜히 일거리를 만들어 낸 것 같아 스스로 내뱉는 소리다. 작년까지는 마늘종을 가위로 잘라 내버렸는데 올해는 재배 면적을 조금 늘었는 데다 작황이 좋아 형편이 달라졌다. 그렇지 않으면 좀 편히 쉴 텐데 또 일 만들어서 고생이라는.그냥 버리는 게 아까워 할 수 없이 모두 뽑아 반찬 하기로.  고추 따듯 그냥 툭툭 따면 되겠지만 문제는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살살 잘 잡아당겨야 줄기 속의 연한 부분까지 잘 뽑힌다. 작업하면서 왜 군대 생각이 나는지. 총기를 만질 때면 교관은 언제나 무엇 만지듯 아주 조심 조심 다루라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했나? 교관과 눈 마주치면 아주 살살하면서도 돌아서면 언제 그랬느냐였다. 그러나 이 마늘종은 총기도 아니고 여기가 군대도 아니지 않은가  대충..

텃밭 농사 2024.05.16

마늘밭 월동 관리

며칠 전 최저 기온이 영하 2도까지 떨어지면서 성큼 겨울로 접어든 느낌이다. 호박과 생강잎이 일시에 고스러졌고 칸나와 백일홍 꽃도 일시에 그리 되어 더욱 체감하게 된다. 지금 텃밭에는 배추와 무, 쪽파, 갓 등의 김장 채소들은 그런대로 잘 자라고 있다. 이들은 곧 수확하게 되겠지만 심겨 있는 그대로 겨울을 나야 할 마늘은 보온을 위해 신경을 써야 했다. 보온 관리라고 하는 게 나에겐 특별한 것이 아닌 낙엽으로 덮어 주는 것으로 끝내는 거다. 해마다 그리 해 왔지만 경험해 보니 낙엽을 이용하는 게 효과적인 것 같았다. 낙엽을 이용하게 되면 많은 양의 낙엽의 처리 문제가 해결되면서 동시에 마늘밭 보온에도 효과를 볼 수 있으니 일양득인 셈이었다. 보온뿐만 아니라 낙엽을 덮어 두면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하는 제..

텃밭 농사 2023.11.15

토란 캐기

토란 잎과 연잎은 어린 닐의 추억을 불러온다. 넓은 잎에 물을 부으면 또르르- 굴러 예쁜 물방울이 되어 가운데로 모였다. 잎 양 끝을 두 손으로 잡아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고... 그리고 비가 내리지 않는데도 그냥 줄기를 꺾어서 우산처럼 쓰고 다니기도 하면서. 그 어린 날의 추억엔 토란이 습지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질토인 내 땅에서 재배할 생각은 아예 하질 않았었고. 그러던 어느 날 아랫집에서 토란을 좀 심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내 집에는 습지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랬더니 아니란다. 그런 인연으로 내 집 텃밭식구가 되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 해째 심고 가꿨다. 다행히 내 텃밭에서 잘 자라 주었고. 이제 수확기, 밑거름을 했더니 그 수고만큼 줄기와 잎이 커져 구근이 좀 ..

텃밭 농사 2023.10.19

가을 파종

연례행사처럼 계속되는 일이라서 특별할 것도 없다. 다만 해마다 재배 면적이 줄어든다는 것. 그런데 그 규모를 줄인다는 것이 나이 듦과 상관관계인 것 같아 자못 씁쓸하다. 한 때는 전화 주고받기에 정신이 없었고 만나는 일도 시간을 쪼개야 했지만 이젠 필요에 의해 내가 나서지 않으면 접촉의 기회가 거의 없어졌다. 시골에 외따로 살고 있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큰 이유라고 생각되지만 그래서 내가 가꿔서 주고 싶은 사람이 비례적으로 줄어들고 있는지도. 또 하나는 체력 감퇴에서 오는 노동력의 한계, 이를테면 쇠스랑 같은 농기구로 땅을 파고 고르는 일이 예전과 같을 수가 없다. 대개는 나눠먹는다는 것으로 텃밭농사를 미학적으로 포장하는 경우를 많이 접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남에게 주려면 가능한 대로 좋은 것으로만 선..

텃밭 농사 2023.09.06

가을농사 준비

유례없는 폭염이 지나가고 입추도 지났다. 곧 처서이니 지금의 더위는 오는 가을을 앙탈한다는 느낌. 아직 햇볕이 따가우나 일할만하다. 장마 또한 유례없이 길어 그동안 방관했더니 텃밭에 풀들이 무성하여 심난했으나 일단 시작하기로. 이미 뿌리가 깊어 작업하기 쉽지 않았지만 모두 걷어 내다. 그동안 낙엽과 함께 섞어서 묵혀두었던 닭똥을 거름으로 사용하기로 하다. 밭에 뿌리기 전에 다시 한번 잘 섞어주고. 지금까지는 외부에서 구입한 계분과 포장퇴비만을 사용했었으나 올가을엔 내가 만든 거름만을 사용해 보기로. 그동안의 경험으로는 계분이 가장 효과가 좋은 것 같았다. 한 삽 한 삽... 배추와 무, 마늘을 심을 밭에 고루 뿌려 주다. 아궁이에 많이 쌓여있던 재들도 퍼 내어 밭에 섞어 주다. 주변에서 토양살충제를 권하..

텃밭 농사 2023.08.19

토란 수확

토란을 심겠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어린 날의 추억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토란잎을 보면 이슬방울들 모여 움푹 들어 간 토란 잎 한가운데 영롱한 물방울로 담겨 있었다. 잎을 기울이면 영롱한 물방울은 옆으로 또르르... 반대쪽으로 기울이면 다시 옆으로 또르르... 봄날 시장에서 구근을 5천원 어치 구입해서 심었는데 지인이 심어보라고 또 구근을 주는 바람에 제법 많은(?) 면적에 심었다. 무럭무럭 잘 커 주었다. 아내는 토란을 볼 때마다 토란국보다는 줄기를 말려 육개장 같은 데 넣어 먹으면 좋은데... 하며 은근히 그런 날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하여 굵은 것을 위주로 베어 말려 보기로. 육개장 먹을 때 입안에서 씹히는 그 독특한 맛을 아는지라 일하는 동안 계속 군침이 돌고, 우리 가족이 먹기에는 너..

텃밭 농사 2022.11.03

다시 찾아 온 봄

지난겨울은 유난히 길었던 것 같다. 겨우내 했던 일이라곤 뒷산에서 땔감 마련해 온 게 전부였을 정도로 거의 매일 움츠리고 지낸 편이다. 계절이 운행은 어김없고, 다시 봄이 찾아들었음이 유난히 각별하다. 그 각별함의 사유란 아무래도 나이 탓 아닌가 싶다. 어쩌다 친분 있던 사람들의 부고가 불쑥 날아들어 오면 어쩔 수 없이 '죽음'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나도 이미 '노인'의 반열에 들어서 있다는 것에서 생사불이(生死不二)의 이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누구나처럼 마음이 젊다 생각하기에 지금도 밖의 새로운 직장에서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겠다 하면서도 그러나 그것도 결국 욕심 아닌가 싶어 진즉 은퇴했으니 내 하고 싶은 것 하며 조용히 지내자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고는 다시 찾아든 봄에 농기구를 잡..

텃밭 농사 2022.03.14

한 겨울의 돼지감자

밭으로 일군 후 처음에는 감자를 조금 심었으나 땅이 워낙 척박해 수확이랄 게 없었다. 그 후 그냥 방치하다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것 같은 돼지감자를 심어보기로 했다. 시장에서 두어 주먹 사다가 적당히 심었다. 싹이 돋고 어느 정도 자랐으나 꽃이 피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늦가을에 몇 군데 파 보니 생각대로 구근이 없었다. 역시 땅 때문이려니 했다. 이듬해에도 꽃이 몇 개 피었을 뿐 성장이 좋지 않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시 두 해가 지나고, 겨울이라서 특별히 해야 할 밭일도 없고 보니 혹시나 하고 땅을 파 본다. 그런데 이게 웬 인일가. 제법 굵은 돼지감자 알이 쏟아지지 않는가. 제멋대로 생겨 뚱딴지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여기 저기에서 손으로 줍는 재미가 쏠쏠했다. 버려둔 땅에서 자라준 게 고마웠다..

텃밭 농사 2022.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