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에 하루 해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지내는 편인데 오늘 아침은 문득 가림산성에 가고 싶은 충동이 일다. 얼마 전 내 집을 방문했던 지인에게서 사랑나무 얘기를 들은 이유가 컸지만 잠시 자료를 뒤적여 보니 이 '가림산성'이 마음에 꽂히는 것이었다.
부여를 찾아가면 그저 부소산이나 박물관 정도가 전부였는데 '가림산성'이라고?
집에서 차로 달리면 40-5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부여군 임천면. 가뭄 때문에 거의 물이 보이지 않는 임천천에 잠시 내려 저 멀리의 가림산을 바라본다. 높지 않은 산이다. 백제 동성왕 때 이곳의 성주였던 백가라는 이가 축조했다는데 당시 이곳의 지명이 가림군(加林郡)이었다고.
이 돌계단을 오르고 나면 수령 4백 년 정도의 큰 느티나무가 있다. 이른바 사랑나무로 불리는데 나무의 가지 하나가 하트 모양으로 휘어져 있어 이를 데칼코마니처럼 합성하면 하트 나무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부터는 많이들 찾아 와 이 아래에서 즐겨 사진을 찍는 모양이다. 이장소가 그간 여러 편의 드라마로 소개된 바 있어 더욱 그리 되었는데 산 아래쪽에는 이런저런 카페들이 많이 생겨났단다. MZ세대들의 취향에 잘 맞는 모양. 하지만 자칫 '꼰대' 소리 듣게 될지도 모를 나로서는 사실 여기에 별반 관심이 없다. 묵묵히 정상까지 올라 본다.
정상부는 사방의 조망을 위해서인지 나무들을 제거하여 평지로 만들었다. 3백 미터 정도의 낮은 산이지만 비산비야의 주변 특성 때문인지 멀리로 내 집이 있는 미륵산과 강경, 논산 등 일대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전략적으로도 적합한 장소였을 것이라는 짐작.
나당연합군에 의해 치욕적으로 철저히 망해버린 백제, 이후 이 산성 등을 중심으로 도침, 흑치상지 등이 백제부흥운동을 펼치게 되지만 결국 무위로 끝나고 만다.
정상부 바로 아래에 태사(太師) 유금필의 사당과 비각이 있다.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의 공을 세운 그의 덕행을 기리는 사당이다. 안내판을 읽다가 '후백제를 정벌하고...'라는 문장에 유난히 가슴이 억눌리는 느낌. 유금필은 당시 이곳 주변에 터를 잡고 살았던 백성들을 전쟁의 시달림과 가난으로부터 구제하여 칭송이 높았다고 전한다. 하여 그들이 여기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왔다는데 유금필의 뛰어 난 공과와 그런 덕행을 기리는 것에 이의가 없다. 패배를 모르는 용감하고 훌륭한 장수였고.
이후 무수한 세월이 흘러 시공간을 뛰어넘은 지금, 과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였으며 옛 백제의 영광 회복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후백제의 땅이 바로 여기였다는 점을 생각하니 여기 이 땅에 세워 져 있는 안내판에 '후백제를 정벌하고...'라고 적혀 져 있는 글귀가 나에게 묘한 아이러니를 불러 일으킨다.
산성을 내려오는 길, 나당연합군에 의해 희생당한 민병들을 위해 세운 '충혼사'라는 사당은 퇴색한 채로 한쪽 켠에 무연히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저 가림산 사랑나무만을 확인하고는 어느 위치가 좋은지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움직여 가면서 인증 샷을 만들기에 바쁜 것 같았다.
- 2022. 6.2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