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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끝의 노고단 행

소나무 01 2023. 8. 26. 12:11

계산해 보니 55년 만이다. 지난 1968년, 고2 여름방학을 맞아 맘 맞는 친구들과 함께 무전여행을 나섰고 섬진강 백사장에서의 텐트 숙식 후 둘째 날의 행선지는 지리산 노고단이었다. 군용 텐트를 비롯한 그 무거운 짐들을 지거나 들고 화엄사 쪽에서 노고단으로 올랐다. 그 어렵고 힘든 난코스를 거의 패잔병 같은 신세로 참으로 기어오르듯 하여 도착했던 곳.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의 노고단은 발아래의 구름과 여기저기 노란 원추리들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그 모든 피곤을 잊게 했었다.

 

성삼재에서 내려 다 본 구례 산동면 온천마을 방향

 

 

그곳에 다시 가 보자는 친구의 제의에 따라 지난 홍도 흑산도 여행 이후  선택한 목적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매우 수월했다.  차를 타고 성삼재까지 오른 후 그곳에서 도보로 노고단을 향하는 가벼운 산행 계획. 성삼재가 이미 1,102m이고 노고단이 1,507m이니 1시간 30분 여 걸으면 충분한 산행 거리였다.

공원 측에 사전 예약을 해두고 날을 기다려 왔었다. 24일은 비 예보가 있었지만 세 사람의 의미 있는 동행이니 우중산행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한편으로 비가 비껴가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도착 바로 전에 차 안에서 문자를 받다. 해당 지역의 폭우 경보로 예약을 취소하며 당연히 산행도 불가하다는 것.

지금 시대에 에보가 어긋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많이 섭섭했지만 그러나 중도 포기하지 않기로 하였다. 모처럼 추억을 한 번 따라가 보자는 여행이었으므로.

어떻든 결국은 노고단은 초입인 성삼재휴게소에서 저 멀리 구름에 가린 채 살짝살짝 드러나는 모습만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으로 만족 할 수 밖에 없었다.

 

 

고 2 때의 여행 시절 지리산 노고단에서의  운무를 배경으로.

 

 

학창 시절 당시의 일행은 6명이었지만 지금까지 끈끈하게 결속되어 있는 친구는 지금의 우리 3명. 기억을 되살려 내기 위해 긴 세월 묵혀있던 앨범을 꺼내 살펴보니 우선은 가슴이 매우 저며 온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 참으로 오랜만에 앨범 속 모습들에 빠져들었지만 그 가슴 저밈이 싫어 바로 제자리에 꽂아 두다.

아, 그 때 그랬었구나... 하는 것으로만.

 

 

성삼재 주차장에서의 노고단 원경. 폭우 때문에 돌아서야만 했던 아쉬움.

 

 

우중의 성삼재휴게소에서.

 

 

뭇사람들을 상대할 텐데도 포근할 정도의 친절과 미소로 점심을 마련해 주던 휴게소 식당 아줌마 덕분에 따듯한 점심을 마치고 성삼재를 내려서다.

이후 우중에 천은사, 운조루와 곡전재, 섬진강 길을 따라 화개에 도착.

봄날의 벚꽃길이 아니니 한산하고, 인근 피아골 등의 계곡 피서도 끝난 여름 끝이고 보니 역시 조용하고 차분한 편이었다. 더구나 우리가 주말이 아닌 평일을 택했으니.

 

 

멀리 우측 건물이 온천 숙소. 그 앞으로 화개천이 흐르고 녹차 밭이 있어 그런대로 경관이 좋았다.

 

 

우리들의 여행과 나이 두 가지를 충족시켜 주는 것 중의 또 다른 한 가지는 따듯한 물에 몸 담그는 것. 하여 숙박지는 일부러 그런 곳을 물색했었다. 쌍계사 입구에 위치한 숙소는 '온천'이라는 이름을 앞에 단 적절한 크기의 대중 입욕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저녁과 아침으로 몸을 풀며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그동안 떨어져 지내며 못다 한 이야기, 그리고 미지의 땅으로 이후 멀리, 오래  떠나게 되는 두 친구의 여행 얘기로 빗소리는 물론 숙소 앞 세찬 계곡 몰소리도 함께 잊게 만들었다.

 

 

노고단을 멀리서만 일별하고 그냥 마음 안에 담고 왔듯이 가능한 대로 우리 과거에 회귀하지 말자고, 이젠 아니라고 단언하지 말며 우리 계속 무언가 꿈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어 가 보자는 서로의 격려.

그러자면 건강 필수다.

 

                                                                                          - 2023. 8.26(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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