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이타적으로 산다는 것

소나무 01 2023. 12. 5. 11:06

친지의 혼사에 가느라 예전 서울에서 다니던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하게 되다. 아침 미사 시간에 맞춰 성당 입구에 들어서는데 그 앞에서 봉사하는 한 자매님이 "오랜만에 오셨네요" 하며 인사를 건넨다.

얼떨결에  "아, 네 - "하다.

바로 돌아서서는 테이블에 놓여있는 주보를 챙기며 잠시 생각해 봤지만 나를 알아보는 이가 누구인지 짐작이 안갔다. 오랜만에 왔다했으니 분명 나를 알고 있을텐데.

발걸음을 돌려 그 자매분 앞에 몇 발자국 다가서서

"그런데 저를 아세요?"하고 물었다.

"그럼요. 제 이웃에 사시는데, 저어기 ..."

"아, 그런가요?. 오랜만에 왔어요. 제가 지금 시골에 있어서요."

"네, 알고 있어요."

지금 시골에서 보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 그냥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누군가?...... 더 물어볼 걸 그랬나? 더 물어보면 더 결례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봉사자 자매 분은 한복을 차려입은 데다 마스크에 안경까지 착용하고 있어서 그런 외모와 목소리만으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 후 한 자리 건너 옆에 앉은 아내에게 조용히 물었다.

"입구에서 인사를 받았는데 누구신지 알아?"

"언덕에 사는 그분 아니야. 우산 씌워 줬다는- "

그 말에 의자에서 곧바로 일어났다. 다시 입구 쪽으로 가 그 자매 분에 다가 가 인사를 건넸다.

"몰라 뵈어서 죄송해요. 마스크에 안경을 쓰셔서... 우산 챙겨 주셔서 늘 고마워했는데... 감사합니다"

"아이고, 아니에요..."

 

사실 조금 전 성당으로 오는 길에 그만그만한 오래된 연립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고갯마루 한 곳을 지나면서 이 자매님을 생각했었다. 지금도 잘 계시나 싶었고 내가 경제적으로 큰 여유라도 있어 멋진 집이라도 사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도.

십 년도 훨씬 지난 아주 오래전이었다. 새벽 기도를 위해 성당으로 향했고 주위는 아직 어두웠다. 그 자매가 사는 집 근처를 지나는데 비가 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집에서 나설 때는 아니었는데 불과 4- 5분 사이에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큰 빗줄기도 아니어서 그냥 비를 맞고 가리라며 그냥 걸었다. 그런데 십 여 발짝 앞에서 우산을 쓰고 가던 여인이 갑자기 뒤돌아서 황급히 뛰어오더니만 그녀의 집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뭘 잊고 나온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잠시 그 여인이 부리나케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만 우산을 불쑥 내밀었다. 깜짝 놀랐다.

그 여인은 내가 비를 맞고 성당으로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순간 가까운 집으로 달려가 내가 쓸 우산을 따로 챙겨 온 것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그렇게 해서 그곳에서 다시 4- 5분 거리에 있는 성당까지 비를 맞지 않고 갈 수 있었다. 미사 시간 내내  가슴이 따듯했다. 서로 같은 성당에 다니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그런 배려심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인지... 

 

돌아오는 길, 아내에게 오래 전의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며 내게 경제적 여유가 많았으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실현 불가능한(?) 얘기를 가볍게 건넸다. 아내는 다만 피식 웃을 뿐.

그 우산은 당시 아내를 통해 돌려주도록 했었지만 그 자매님이 누구인지 이름도 몰랐다.

"임 oo  글라라"라고 아내가 알려 준다.

그 고마운 마음 씀씀이를 어찌 돈으로 계상할 수 있을까만 걸어오면서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던 안도현의 시 구절을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겨울인데도 춥지 않은 아침이었다.

 

 

                                                                                                                      - 2023.12.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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