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또 한번의 수난(?)

소나무 01 2024. 1. 25. 22:00

기르던 토종닭 한 마리가 이번에 또 매에게 당했다. 좁은 닭장 안에만 가둬 기르는 게 안쓰러워 조그만 방사장을 만들고 닭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통행문을 만들어 반쯤 열어둔 게 화근이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났지만 그동안 아무렇지 않았었다. 장시간 외출하는 경우가 잦았는데도 탈이 없어 매에 대한 염려를 놓아버렸었다. 평소 지켜보면 닭은 닭대로 하늘에서의 이상징후가 나타났다 싶으면 쏜살같이 닭장 안으로 달려가 피하곤 했다. 지난해 당한 바 있는 백봉오골계로 인해 학습이 되어있겠거니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어제 오후 또다시 매의 급습을 받은 것이다.

 

사고를 당한 토종닭(위쪽 검은 꼬리). 녀석들은 1주일 간격으로 내 집으로 와 다정한 친구로 지냈는데 그만 매에게 불행을 당했다.

 

어제 오후, 뭔가 먹여야겠다 싶어 마당에서 풀을 뜯어 닭장으로 갔더니 세상에 토종닭 1마리가 벌러덩 뒤집어진 채로 참혹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전율했고 한낮에 나타난 족제비 짓이려니 싶었다. 사고 장소가 그물망으로 둘러싸인 닭장 안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펴보니 웬걸 가까이에 있는 소나무에 매 한 마리가 높이 앉아 내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한참 먹이 활동을 하던 녀석이 인기척에 놀라 일단 현장을 피해 그곳에서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것이었다.

"아니, 저런 괘씸한 놈이! - "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곁에 산탄총이라도 있었으면 여지없이 즉결처분했을 텐데 그저 바라보고만 있자 하니 속이 탔다. 

녀석은 태연하게 자리를 지키다가 슬며시 날아갔다. 그러다가는 얼마 후 다시 되돌아와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가. 주인이  사라지면 다시 내려와 포식하겠다는 것일 테다. 

"아휴, 저 놈을 그냥 - " 

 

 

동료 1마리를 잃은 채 밖으로 나와 먹이를 먹고 있다. 녀석들은 "새대가리"로 비하되어 표현되는 것처럼 곧바로 평정을 되찾는다.

 

혹시나 하여 패널을 둘러 놓은 닭장 안쪽을 살펴보니 다른 6마리는 공포스러운 표정으로 잔뜩 움츠린 채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얼마나 놀랐을까 싶다. 한 마리 희생으로만 그쳐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해 이런 일을 당했기에 나름 경계했음에도 그렇다고 날마다 파수꾼처럼 지킬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로서는 전적으로 닭들의 대응과 행동요령에 맡겨버린 셈이다.

그동안 마당을 오가며 두어 번 매를 목격한 바 있었지만 설마 하면서 신경을 쓰지 않았던 터라 결국은 방심했던 나의 잘못이 크다. 횡사한 닭에게는 참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현장에서 급히 당겨찍은 문제의 현행범 매 

 

그런데 이번에는 지난 해 방사장의 경우와는 다르게 닭장 안에서 당한 것이어서 안쓰러운 마음이 크다. 매란 놈이 방사장과 통하는 문을 통과해서 닭장 안까지 침입할 줄이야. 

한편 생각하면 눈 내리는 한 겨울이고 보니 매에게는 먹이 사냥이 그만큼 절박하고 필사적이었을 것이라는 동정적인 생각도 해본다. 매의 입장으로 보면 당당한 전과를 누린 것 아닌가. 생명이 있는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이 평등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매를 탓할 것만도 못된다. 다만 자연의 세계 그 자체가 아니고 내가 일정한 목적으로 집 안에서 보호하며 기르고 있는 존재를 해쳤다는 점에서 녀석의 존재와 행동이 몹시도 미운 것이다. 

 

 

닭장이 집 뒤란에 있는데도 매는 인가 깊숙이 날아들었고 닭장 안에까지 침투하는 맹조류의 성향을 보였다.

   

졸지에 목숨을 잃은 닭을 뒷산에 묻어주면서 이제 닭 사육도 그만 집어치워 버릴까 하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들어지다. 

알을 얻겠다는 단순한 욕심에서 사육을 시작했고 누군가 귀한 이 오면 남의 경우처럼 한 두 마리 잡아 밥상에 올리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어느 순간 반려동물인 것처럼 인식이 되면서부터는 관점이 좀 바뀌었다. 잡아서 식탁에 올리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어져 버렸고 거기에다 가게에서 사 오는 포대 사료 외에 먹이와 물관리, 청소와 배설물 처리 등의 잔 일들이 자꾸 늘어나는 것도 꽤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어떻든 아침저녁으로 살피며 나름 정성을 쏟으며 함께 지내고 있는데 막상 이렇게 황당하게 죽어나가는 현실에 부딪치니 은근히 부아가 날 수밖에. 

비단 이번의 매로 인한 피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다시 이런 황망스러움을 겪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어서 일면 시골 생활의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먹이를 갖고갈 때마다 주인을 쳐다보던 갈색 눈망울이 잠자리에 들어서도 자꾸 어른거렸다. 측은하고 가엾다. 

 

                                                                                       - 2024. 1.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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