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외경이다. 이 추운 겨울에도 푸룻 한 새싹이 돋아 나다니. 시골 산자락에 내려와 살기 전까지는 한 겨울 땅바닥에 어떠한 풀도 살지 못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차가운 날씨에도 죽지 않고 용케도 살아나는 풀들이 있었다. 한겨울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초록의 모습을 보노라면 참 대단한 "잡초"라는 생각. 그러다 하나씩 하나씩 점차 그 풀이름과 특성을 알아가면서 월년초(越年草)로서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1월 중순, 지금 마당에는 점나도나물이 사방에서 경쟁적으로 돋아나고 있다. 황새냉이나 수영 같은 풀들도 많지만 이 점나도나물은 숫자면에서 압도적이다. 번식력이 워낙 좋은 터라 아예 씨를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완전히 제거하겠노라고 지난봄에 애를 썼지만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다. 잔디밭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농약이라도 그냥 확 뿌려버려야겠다는 충동을 느낄 때가 없지 않았지만 녀석들은 대개 서너 달 정도의 생존 주기가 끝나면 자연적으로 소멸되었던 터라 모른 체했었다.
그런데 점나도나물 같은 경우는 "나물"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키우고 있는 닭에게 좋은 사료감이 되고 있어 그걸 알고부터는 내 집 마당에서 자라주고 있는 것에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잔디밭에 잡초를 제거하는 노동으로서가 아니라 포대사료 비용을 절감시켜 주고 있다는 점에서 즐거운 운동인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 제초제 생각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끈끈이대나물의 어린 새싹(사진 왼쪽 큰 잎). 사진 오른쪽의 작은 잎은 점나도나물 싹이다.
오늘도 적당히 자란 이 풀을 뽑아내고 있는데 바로 옆으로 또 다른 풀이 눈에 띄는 것이었다. 언뜻 보아 비슷한 모습이지만 뭔가 달랐다. 어라? 이건 작년 봄에 봤던 건데...
자세히 보니 이건 끈끈이대나물 새싹이다. 아니 이 녀석은 내가 이태 전부터 씨 뿌려 꽃을 봐왔던 그 예쁜 화초 아닌가. 그런데 이 싹이 이 한 겨울에 돋아나다니. 시선을 돌리니 주변으로 제법 많은 숫자가 보인다.
아, 그렇구나. 이 녀석은 가을에 씨를 떨어트리면 스스로 알아서 주변에 퍼지는구나. 그리고 이렇게 한 겨울에 싹이 돋는구나.
군데군데의 끈끈이대나물 새싹이 점나도나물과 비슷한 자태로 섞여 자라고 있어 실수로 같이 뽑혀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이 새싹들을 보면서 나는 이미 여름날의 연분홍 꽃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성정기에 줄기 마디에서 점액질이 나오는지라 끈끈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고 또 어린것은 나물로 먹을 수 있어 끝에 나물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실상은 어느 화초 못지않게 않게 예쁜 꽃을 피우는 식물인데도 말이다.
지난 해 여름(6월)에 마당 작은 꽃밭에서 분홍의 꽃을 피운 끈끈이대나물.
이제 이 녀석의 속성을 알았으니 올해부턴 가을에 씨를 받지 않고 스스로 잘 퍼져 나가도록 관리해 볼 셈이다. 그래서 단순한 잡초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화초로 가꿔보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오늘은 지금 해가 중천에 있는데도 영하 7도다. 지금 내 집 마당의 이 녀석들은 매화 같은 과실나무의 춘화(春化) 현상 같은 것을 겪고 있으려니 그저 이 겨울 잘 견뎌내고 올여름 더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내 주기를.
- 2024. 1.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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