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호미의 주된 용도는 잔디밭의 잡초를 제거하는 것이고 시기에 따라 감자나 옥수 등의 파종 그리고 모종의 이식이다. 그런 일들로 어느새 십 수년이 흘렀고 보니 호미 끝이 참 많이도 닳았다. 쇠붙이 끝이 둥그렇게 무디어진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많이도 땅을 팠다는 생각. 어떤 때는 손목이 아플 정도로.
쇠만 닳은 게 아니다. 나무 손잡이가 갈라져 호미 꼬챙이가 빠져나가는 바람에 철사로 동여 매고 갈라진 틈새에 나무 쐐기도 박아 넣거나 본드 칠도 해가면서 사용해야 했다. 새로 하나 살까 하면서도 아직도 쓸만하다 싶어 미뤄 가면서. 무엇보다도 내 손에 익숙해져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한계에 이른 것 같다. 몸체와 손잡이가 헐거워져서 자주 따로 놀기 시작한다. 더 이상의 손질은 궁색하다 싶어 다시 하나 장만하기로.
면소재지 철물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으나 장날을 택해 가까운 여산으로 가다. 이곳 미륵산 자락에 집 짓고 살던 초기에 가끔 들러 낫도 사고 괭이자루도 사고 그랬었다.
오랜만에 찾은 여산 장은 의외로 썰렁. 대형마트가 생기고 인구도 줄어드니 쇠락할 수밖에 없겠지. 오전 10시 인데도 사람이 없다. 처음 호미를 구입했던 가게를 찾아가다.
여기에서 2천 원을 주고 샀는데 그걸 16년 넘게 썼으니 이런 식이면 흔히 하는 말로 이 가게 망해야 맞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장터를 지켜주고 있음이 고맙고 고맙다.
그런데 예전엔 호미가 여러 개 있어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데 얼른 보니 겨우 댓 개 정도. 그나마 무디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이어서 그냥 돌아서 오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냥 호미도 사고 다른 무엇 하나도 샀어야 했는데 생각이 짧았다.
결국 자주 가는 삼례 장에 가서 구입했는데 값을 물으니 2,500원 이란다. 깜짝 놀랐다. 안 오른 게 없으니 모르긴 몰라도 4천 원 이상은 하리라 싶었다. 16년이나 지났는데 5백 원 밖에 오르지 않다니. 더구나 기계로 찍어 만든 것도 아니고 대장간에서 수작업으로 만든 건데... 농사에 요긴하게 쓰는 도구인데도 커피 한 잔 값도 안되다니. 나 같은 노랑이가 있어 대장간도 점차 사라지게 만드는 것 아닌가.
며칠 전 TV에서 광양 매화마을의 홍쌍리 님 허리가 많이 굽은 것을 보고 이 장면에서도 깜짝 놀랐다. 아, 세월이 그리 흐르다니. 오늘의 매화마을을 만드느라 오죽이나 노동력을 쏟았을까 싶었다.
그녀가 장롱 속에서 보자기 하나를 꺼내 와 헤질대로 해진 장갑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놀랐다. 나무 가꾸고 돌담을 쌓느라 그리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에게는 값진 삶의 보물이었다. 그저 '아낀다'는 개념보다는 사용에 불편함이 없을 때까지 사용해 왔다는 것 때문에 숙연해졌다.
호미 얘기하면서 내가 그렇다는 것처럼 보일까 봐 스스로 닭살 돋는다. 경제 사회를 위해서 적절한 소비도 필요할 테니 나처럼 너무 지나치면 개념 없는 노랑이로 치부될 수 있으리라.
새로 구입한 호미로 모종을 옮겨 심으며 나는 다만 내 분수를 지키고 있을 따름이라고 말한다면 혹 교만이 되는 것은 아닐지.
- 2024. 4. 4(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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