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카톡 알림이 깨운다. 예상대로 친구의 문자 메시지. 지금 미국에 마악 도착했다는.
친구 K는 미국에서 목회 일을 하고 있으면서 고국에 잠시 나왔다가 돌아갔다.
친구는 언론사의 특파원이 되어 세계를 누비는 것이 꿈이었는데 어찌하다가 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미국에 정착하게 된다.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오랜 세월 사목 활동을 하다가 몇 해 전 은퇴하고는 현재 아리조나 주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계속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어떻게 노후를 보낼까 숙고하다가 소외 지역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위해 봉사하며 사는 것이 의미 있는 노후라고 생각했다고. 그런 친구가 존경스럽다.
그는 이번에 참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고국 땅에 왔다. 일주일 여 짧게 머물며 주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고,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의 막역했던 친구들과도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서울에 거주하는 친구의 주선으로 근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나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 맛있는 음식과 나들이를 즐기다.
너무 오랜만이고 언제 다시 기회가 있으랴 싶어 아내들도 함께하여 모두 8명이 기쁘고 행복한 시간을 갖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 모두들 주름진 얼굴과 흰머리가 되었지만 아직 하나같이 동심으로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
그리고 오늘 새벽에 받은 친구의 문자 때문에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은 한 가족과 진배없는 우리들의 기념사진을 남기고.
(잠시 고민했다. 이런 사진들을 공개하는 게 합당한가? 나의 애초 취지대로 남에게 보여주는 그것보다 내 삶의 기록을 우선한다는 이유로 다른 가정들을 무시하기로. 친구들도 이해하리라)
유일하게 남아있는 우리 어린시절 한 장의 사진. 초등학교 6학년 서울 창경원 수학여행에서 찍었다. 우리 4명은 모두 같은 반이었다.
(전체 63명 중에 그래도 어떻든 형편이 되는 친구들만 참여할 수 있었는데 여행 경비가 500원이었던 시절)
사진 중의 친구 K
친구 K는 도시 외곽의 철도 건널목 바로 옆에 살았다. 그곳 주변의 인가라고는 친구 집이 유일했고. 그의 어머니는 멀리 외딴집까지 아들 친구들이 찾아왔다고 반기며 맛있는 먹거리를 내줬고 때론 닭도 잡아 먹여 주기도 했다.
그를 포함해 친구 넷은 냇가에서 미역도 감고 낚시도 했으며 그리고 삐비도 뽑아 먹고 개구리와 우렁도 잡으면서 그야말로 자연 그 안에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우물 가 커다란 상수리 나무에 붙어있는 둥게(풍뎅이)를 잡아 목을 비틀어 제자리 돌리기를 하거나 철로에 못을 깔아 쇠칼을 만들기도 했던 짖꿋은 행동도 우리들의 재미난 놀잇감이었다.
우리 나이 들어서도 우리 함께 모여 살자 다짐했건만 그러나 그 시절 그 맹세(?)는 다 사라져 버리고.
결국 우리네도 평범한 소시민이 되어 그저 앞만 보고 살아왔던 셈. 나이 들어 이렇게라도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음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떠나기 전 그에게 물었다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은데' 미국 생활 정리하고 환국할 생각이 없냐고.
곧바로 건너온 대답은, 들어와서는 살 수가 없다는. 말하자면 생활 기반이 아무것도 없어 불가능하다는.
그러면서 말을 돌려 너희들이 기회 만들어 미국의 내 집에 찾아오라 한다.
친구가 새벽에 보낸 문자 안에는 "앞으로 한국에 다시 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게 내 머리를 한 방 쳤다. 순간적으로 엄습했던 서글픔. 시간이나 건강보다는 경제적인 문제가 절대적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삶이 그대를 속이는가. ?? "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 이게 인생인가.
그 광활한 아메리카인데도 가장 쓸모없는 땅에 인디언 그들을 몰아 넣었다고 가슴 아파하던 친구. 그래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헌신하겠다고.
그리고 척박한 집 마당에 깨를 심었더니 깻잎이 자라났다며 좋아하던 친구.
- 그와 그가 사랑하는 그의 아내에게 부디 신의 가호가 있기를.
-2024.10.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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