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금마땅에 살면서 이곳엔 어떤 인물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던 차에
어느 날 소세양이라는 인물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이조 연산군 때 과거에 급제하여 이후 중종, 명종 조에 이르기까지 판서, 대제학 우찬성 등의 관직에 이르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하고 명문장가로도 널리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그것 말고도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황진이와 애틋한 사랑을 나눴다는 것이다. 소세양이 후에 낙향하여 미륵산자락에서 기거할 때 개성에 있던 황진이와 서로를 그리워 하던 시를 주고받았다고 하는데 황진이가 보낸 시가 가수 이선희가 부른 '알고싶어요'라는 노래의 가사에 담겨있다고.
"달밝은 밤에 그대는 무슨 생각을 하나요.
잠이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하는 노래이다.
그러나 이 가사는 작사가로 유명한 양인자가 쓴 것이고 이 가사를 그 후에 소설가 이재운이 자신의 소설 속에 이른바 15세기 당시의 한시 풍으로 옮겼다는 것인데,
어떻든 황진이가 소세양에게 보낸 "夜思何"라는 시에는 멀리 떠나버린 소세양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이 절절히 베어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그런 절절한 그리움을 그려보며 익산 왕궁면 용화리에 있는 소세양의 묘소를 찾아 보다.
소세양의 묘소가 있는 용화리는 내집에서 지척이다. 저 뒤로 보이는 용화산 뒤편에 내집이 있으니.
소세양의 묘는 앞의 용화저수지가 바라보이는 야트막한 산의 진주 소(蘇)씨 문중산 한 쪽에 자리하고 있다.
묘소입구엔 그의 행적을 담은 신도비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다. 사후 명종 때(우측)와 최근에 후손들이 세운(좌측) 두 개의 비석이다.
소세양의 묘는 그의 부인의 묘와 함께 합장되어 있다.
황진이와의 사랑이야기는 그의 신도비에 단 한줄도 기록되어있지 않다. 기생 신분인 황진이와 큰 관직에 있던 그와의 교감이 당시 사회상으로 보면 유별스런 일이 아닐텐데도 누구에게나 볼 수있도록 한 그의 공적을 담은 비석에 그런 사연을 담을 수 없었으리라. 황진이가 아무리 명기라 한들...
더구나 여기엔 정경부인인 그의 부인 창령 조씨의 묘도 함께있지 않은가.
묘소 앞에 세워져있는 소세양의 시비의 시 가운데 일부.
"산가의 가을 흥취가 마냥 깊은데... "하며 세월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노년의 소외감과 외로움을 달래던 그의 모습을 그려 본다.
소세양은 부모의 묘소가 있는 용화리 숯골(炭谷)에서 만년을 보냈다.
소세양의 묘는 저 아래 남쪽의 용화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다. 황진이가 머문 곳은 북녘 개성 땅이었는데..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 믿나요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 "
달밤이면,
바람이 불면 그리운 진이의 모습이 저기 잔물결에 비추기나 하는 것일까...
- 2011.10.15(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