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해질 무렵에...

소나무 01 2011. 2. 17. 12:23

 

겨우내 서울 아파트에 머물면서 거의 두문불출이었다. 그동안 날이 유난히 추웠던 까닭도 있지만 꼭 필요한 만남 외에는 방에서 꼼짝하기가 싫었다. 그만큼 변화가 없는 생활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덩달아 블로그도 특별한 메모꺼리가 없어 그냥 쉬게 되고... 덕분에 평소보다 독서량이 많아졌다는 이로움은 있었다.  

 

굳이 한 둘의 변화를 찾자면 아침 저녁으로 조금 씩 걸었다는 것.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찬 기운 속에도 성당엘 갔다. 물론 차분한 마음으로 기원하고 싶은 게 있었다.

처음엔 움츠러들고 무거웠던 마음과 발길이 몇달 째 계속되면서 많이 가벼워졌다. 산동네에 사는지라 새벽마다 작은 산 하나를 오르내리는 셈이었는데 습관이 되다보니 체력적으로 단련이 되면서 어느 때 부턴가 평지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함께 마음도 많이 가벼워졌다. 

 

해가 질 무렵인 5시 반 쯤이면 다시 문밖으로 나서 바로 앞산으로 산책을 나선다.

눈은 이제 시야에서 거의 사라 졌고 낙엽더미에 덮혔던 오솔길은 푸석 푸석 먼지까지 인다. 발자욱을 옮길 때마다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있어 겨울 끝자락인데도 낙엽밟는 재미가 있다.

봄이 가까워질 때 까지 낙엽을 볼 수 있음이 참 운치가 있다 싶지만 생태적으로 보면 미생물의 활동이 그만큼 줄어들어 쉬이 썩질 않아 문제가 있다.

 

 

                                             숲 사이로 난 오솔길에 제법 수북히 쌓인 신갈나무 낙엽들.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다. 

 

해질 무렵의 산책길엔 새벽처럼 인적이 없는 편이다. 신갈나무와 아까시를 비롯한 상록수 일색인 작은 숲에는 나무들 마다 헐벗어 앙상하다. 초록색깔이 보이지 않는 삭막하고 스산한 길이지만 인적이 거의 없어 홀가분하다.

이것 저것 그저 혼자 조용히 생각하며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걷는다.

 

 

                                     내집 건너편 산쪽 남강고등학교 뒤의 산책로.

                                              이 시간 쯤에 이곳을 산책하다보면 지나치는 사람 한사람도 만날 수 없어 매우

                                              호젓하다거나 아니면 쓸쓸한 편이다. 이 길은 거의 아까시 일색이다.

 

산허리로 난 길을 따라 대충 20여 분 쯤 걷다 보면 저 쪽 하늘 서편으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대하게 된다. 다시한번 마음이 차악 가라 앉으면서 일시적으로 걸음이 멈춰진다.

차가운 공기속에서 발갛게 지는 해를 무연히 바라보며 하루를, 아니면 무엇이든 간에 지난 삶의 한 단상들을 돌아보게 된다. 

 

"어떠한 일일지라도 노동으로 얻어지는 기쁨과 보람에 견줄 수는 없다. 머리보다는 손을 움직여 마음을 다 바쳐 일할 때의 기쁨이란.....   "

 

오전까지 읽기를 끝낸 크로닌이 지은 4백 쪽 분량의 영화같은 소설 중  한 대목이 지워지지 않는다.

 

도시에 살면서 부담없이 산책할 수 있고 이런 모습과 매일 마주할 수 있음이 행복하다.

이제 곧 3월이 오면 나 다시 흙냄새 풍기는 고향으로 내려가리니...

 

 

                                   

저 쪽 인천 어디 쯤의 산등성이로 해가 떨어지고 있다.                         

                            저녁기운이 갑자기 차가워 졌다.                                                                                  

 

 

                                                                                                   - 2011. 2.17(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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