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은 지가 10년 도 훨씬 지났지만 워낙 토질이 좋지 않아 멈춰있는 듯 성장이 더뎠고 열매도 잘 열리지 않았다. 삽으로 20여 cm를 파면 바로 딱딱한 사암층이 나오는 그런 곳이었으니 그럴만 했다.
그런데도 주로 옆으로 뿌리를 내려 지난 해에는 그런대로 열매가 제법 매달렸으나 부실한 영양과 병충해 같은 원인 때문인지 씨알이 유독 작고 낙과가 많았다. 거기에 모조리 벌레가 먹어 볼품이 없었지만 성한 것으로만 골라 그나마 맛이라도 을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땅바닥에 떨어 진 사과가 아까워 방 안에서 보리라는 마음으로 몇 개 가져 왔다.
그런데 한 달 두 달이 지;나도록 처음의 싱싱하던 자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게 아닌가. 서너 달이 지나면서 윤기를 조금 씩 잃어가기 시작했지만 초록의 신선함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10여 개월. 오랫동안 초록의 모습이었던 것이 서서히 부패 현상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다른 과일이나 뿌리 열매같았으면 진즉 썪어 없어졌거나 싹이 나왔을 텐데 말이다.
근 1년을 거실에 두고 함께 지냈지만 결국 세월 앞에 무력해져 버린 안타까운 모습을 본다. 바로 옆의 제라늄처럼 예쁜 꽃을 피워 싱싱함을 간작하고 있었는데... 마치 나이들어 세상끝에 앉아 있는 노인의 피부처럼 수많은 주름이 생겼다.
지인을 한 사람 잃는 것 같은 씁쓸함이 있어 조침문같은 기록이라도 남겨두고 싶었다.
지난 여름날의 싱싱했던 사과.
인간사 꿈결이듯 모든 게 그저 한 순간, 지금의 사과는 곧 사라져 없어질 지라도
다시 봄이 찾아 왔으니 얼마 후면 사과나무에 새롭게 꽃이 피고 또다른 좀 더 탐스런 열매가 맺히리라.
- 2020. 3.1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