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내 집에 둥지 튼 녀석들

소나무 01 2020. 5. 9. 12:09


산자락에 사는 보람을 느낀다. 새들이 내 집에 둥지를 튼 까닭이다.

수 년 전 대문 밖 우체통에 박새가 알을 낳은 후 두번 째. 내가 자연과 함께 살고 있다면 아무래도 자만인 것 같고 새들의 활동 영역이 그만큼 좁아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집 주변에서 흔히 보는 어치는 까치나 물까치와 생김새가 같으나 옷색깔이 좀 예쁘거나 수수한 편이고 그 녀석들 처럼 떼로 몰려다니지 않고 한 두마리씩 날아 다닌다.

어느 날 아침, 창 밖의 어치 한 마리가 배롱나무 잔가지를 온 몸으로 물고 늘어지며 꺾으려는 것을 보고는 집을 지으려나 보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집 뒤란에 서있는 나무들에서도 열심히 잔가지를 꺾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입에 물고 집 벽체 한 쪽에 쌓아 둔 땔감더미 윗쪽으로 날아드는 것 아닌가. 집 주방이 코 앞이고 평소 내가 자주 오가는 곳인데 여기를 둥지로 택한 것이다.. 내 어깨 높이 정도 밖에 되지 않기에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둥지를 치워버리거나 알을 취할 수 가 있었다.

인간으로 부터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왜 이런 곳에 둥지를 만들었을까. 주변에 맹금류가 서식하는 것도 아닌데....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마도 비를 피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알 수가 없다.





어치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으나 집 주인인 나를 공격자로 의식하지 않겠다는 의미 하나가 우선 반갑고 고마웠다.

아마 수백번을 물고 날랐을 텐데 어느 사이에 둥지가 에쁘게 완성되어 있었다.



며칠 후 어치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둥지 안을 살펴 보니 알이 하나 보인다. 드디어 산란을 시작한 것이다. 한 두 개는 더 낳지 않을까 싶어 다시 며칠 을 기다렸는데 역시나 알을 하나 더 낳았다.. 그리고는 틀림없이 부부일 것으로 판단되는 어치 두 마리가 둥지를 수시로 오간다. 둘이 교대로 알을 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내 식견으로는 이 녀석들의 암수도 구별할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나고, 녀석들이 둥지를 잠시 비운 사이 다시 거울을 비춰 들여다 보니 어느 새 알이 7개가 되었다. 아이쿠, 이렇게  많이 낳은 건 좋지만 나중에 먹이를 어떻게 해결하려는지...



모성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가까이 다가 가도 약간의 경계를 할 뿐 꿈쩍도 하지 않는다. 부화해서 둥지를 떠날 때까지는 놀라지 않도록 오히려 내가 조심할 수 밖에 없다. 아내 때문에 황토방에 군불을 때느라 자주 나무더미를 들썩이는 장소인데 어쩔 수 없이 작업량을 줄이고 소음 발생 요인도 차단해야 할 형편이다. 내 집에 찾아 온 손님이니 잘 대접해야 하지 않겠는다. 

부화할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 보기로.    



또 한 녀석은 딱따구리. 이 녀석은 깊은 산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데 평소의 경험으로 보면 자주 인가 쪽에 날아드는 새다. 주 목표는 고사목 벌레잡이다.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도 고사목에서의 공영음이 발생하기 때문이 아니가 싶다.

집 바로 옆의 자귀나무를 택해 중간 부분에 구멍을 뚫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 자귀나무가 고사한 것도 아닌데 이 나무를 둥지로 택한 것은 아무래도 목질이 부드럽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주 작은 부리 하나로 저리 큰 구멍을 내었으니 어찌 그리할 수 있는 것이지 경이롭기만 하다.


둥지는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높이인데다 나에게 촬영할 수 있는 특수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바라만 보며 며칠을 지내다. 그러던 어느 날 새끼 한 마리가 목을 내밀어 바깥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 게 아닌가. 먹이를 물고 올 어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둥지 밖 세상이 어떠한지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다행히 나무는 제 몸 안의 큰 상처(?)와 관계없이 변함없이 새 순이 돋고 있다. 언제 쯤 날개짓을 하고 둥지 밖으로 나설까. 아무튼 이 녀석들이 산자락을 택해 살아가는 나에게 적잖은 기쁨을 주고 있음이 그저 반가을 따름이다.



                                                                                   - 2020. 5.9(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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