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다시 찾은 화암사

소나무 01 2020. 10. 20. 16:12

 벌써 거의 20 여 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전라북도 안에 있는 주요 산들을 찾아 혼자 조용히 산행해 보기로 마음먹고는 실행에 옮겼을 때 였으니까. 주변 숲이 정겨운 호젓한 산길을 따라 초입 주차장에서 천천히 20 여 분 오르면 외부와 완전 단절된 것 같은 곳에 절집이 숨겨져 있었다.

 절의 규모가 크면 참 고색창연하다는 감탄이 나올 수 있겠는데 그보다는 '퇴락 '이라는 말이 합당할 것 같은, 이를테면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온 어느 뼈대있는 집안의 종가처럼 여겨져 그 때문에 친근감이 있었다. 우람한 일주문이나 사천왕대신 우화루와 요사채 사이로 붙여 만든 아주 평범한 출입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대면한 화엄사의 첫 인상은 그랬다.

 

 20 여 년이 지났지만 그 때의 느낌이 거의 그대로여서 반가웠다. 건물 자체와 주변 환경에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져 내방객이 많아져서 인지 가파른 경사로에 인조 계단을 설치한 것과 절 뒤쪽으로 차로가 개설된 것 말고는.

 화암사의 백미는 국보 316호로  지정되어 있는 극락전의 하앙식 구조물이다. 쉽게 표현해 처마를 받치고 있는 목재를 하나 더 사용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처마를 더 길게 늘여 빼어 처마 자체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만든 것인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건축양식이다.

 

 

정면 가운데 건물이 극락전. 퇴색할대로 퇴색한 단청때문에 권위적인 면모가 느껴지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으나 그러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극락전의 하앙식 구조물. 서까래 안쪽으로 용의 머리 장식이 보이는 곳에 좌우로 길게 부재를 사용하여 지붕을 떠 받쳐 처마를 늘여 뺐다. 기둥 위로 지붕을 떠 받치는 공포도 2중으로 하여 아름다움을 더한다,

 

 

 어떻든 처음 내가 찾았을 때에는 국보로 대접받지 못한 상태였는데 늦게라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그렇지만 건물 자체의 단청과 테두리 없는 편액의 글씨 등 눈여겨 봐야 할 곳이 참 많은 소중한 목조물인데도 아직 필요한 곳에 것은 보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들이 아쉽다. 

 건축연대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어 그 역시 안타깝지만 정유재란 때 이 극락전만 빼고 모두 불탔다 하니 유서깊은 고찰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렇게 깊은 산 속에 숨겨져 있는 절집이 어떻게 왜적에 발견돼 불타게 되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치 정감록의 십승지지의 한 군데 같은 느낌이 강한데.

   

 

 극락전 옆으로의 적묵당 건물 기둥이 어느 빈한한 농가의 나무기둥인 양 땜질되듯 초라하게 보수되어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초라함보다는 흉뮬스럽다고나 할까.

 

 

극락전과 마주하고 있는 우화루에는 그 이름처럼 언제 쯤이나 꽃비가 내려 화사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른지. 낡을대로 낡아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과 함께 대책없이 퇴락해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허허롭다.

 

                                                              - 2020.10, 6(화)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산성을 돌아보다  (2) 2023.03.04
지난 겨울 추억 하나  (2) 2023.02.06
섬 기행  (0) 2019.12.30
패하고도 승리한 인물  (0) 2019.10.24
일상 탈출  (0) 2019.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