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흘려보다가 문득 신선이 꽂힌 사진 몇 장. 다른 여러 만남들보다 친구들과 함께 남쪽바다 여행을 한 모습들. 이건 블로그에 저장해 둘 필요가 있겠다 싶어 노트북을 꺼내다.
그동안의 어쩌다 내 집에서 함께 만나 반가움을 나누곤 했지만 어느 날 여수와 고흥 쪽을 찾아 가기로 마음을 모았다. 사실 그동안 코로나 여파로 사람들 많은 밖으로 나선 다는 게 쉽지는 않았으니.
그의 최신 차량으로 운전을 맡아 준 친구가 자산공원에 올라 오동도를
배경으로. '은퇴는 없다'라는 것을 보여 준 그의 지난 이력이 자랑스럽다.
이용하면 가는 길이 쉬울텐데 현지에서의 이동이 불편할 것 같아 친구의 승용자로 결정. 최근 허리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 때문에 걱정스러움이 없지 않았으나 여차하면 서로 교대 운전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내심. 그러나 모두가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고 보니 쉬운 게 아니다. 보험 문제도 그렇고. 어떻든 친구의 능숙한 운전과 오래 기다려 받았다는 새 차의 편리한 기능들 때문에 피로감을 덜 수 있었다.
소위 오션뷰가 좋았던 한 숙소 바닷가에서. 자산공원과 돌산도 사이를 연결하는 거북선대교의 야경이 좋았다.
우리 이제 '잘 먹고 잘 쓰며 살자'라는 그런 좀 구차스러움은 아니고 그래도 모처럼 바닷가 왔으니 좋은 음식 먹어보자는 뜻에서 가장 특별한
메뉴 중의 하나를 선택해 저녁 식사.
어린 시절을 보낸 여수는 언제나 마음의 고향이 된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빌딩과 새로운 길이 많이 생겨났어도 나에겐 여전히 정감이 살아 있다. 하지만 그건 나의 경우.
친구들과 어떻게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는지가 중요할 텐데 결국 우리는 속인일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드니 잘 먹고 잘 자는 게 우선이다라는 것. 이를테면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선소를 찾아 어떤 대상에 대한 접근 방식을 조금이라도 새롭게 해 보자는 생각은 결국 머릿속에만 맴 들고.
거금도 오천항. 겨울이라선지 적막할 정도로 조용(차분)했다.
돌산대교를 건너 몇 군데. 기념 샷을 남기는 것으로 여수 방문을 마무리하고 다시 북상하여 해안도로를 따라 고흥행. 12월 하순에 접어드는 추운 겨울 날, 어젠 화창한 날씨가 도와주더니 고흥 여행길엔 잔뜩 흐리다. 파랗게 보여야 할 바다가 온통 잿빛이어서 도무지 우리를 유혹하지 않는다. 조발도를 지나고 낭도, 둔병도, 적금도... 섬과 섬 사이에 새로 세워진 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어설픈 만족감을 느끼다. 차에서 내리기 싫으니 사진도 없다.
고흥에서 소록도, 거금대교를 지나 거금도 아래쪽 오천항에서 겨우 기념 샷 하나. 되돌아 나오면서
"야, 저기 역도산 김일기념관 있는데 가 볼까?" 물론 차 안에서 하는 말이다.
"야, 그냥 가자 - "
아, 우리가 아니 내가 정말 늙었나 보다. 우주선 발사대도 유자밭도 암묵적으로 그냥 지나쳤다. 뭔가 보고 느껴보자고 떠나 왔는데 무엇보다 차에서 내리는 게 귀찮다. 어쩌다 이리 됐을고.
차가 잠시 멈춘 곳은 도시 어디에나 널려있는 달콤한 아이스크림 가게였을 정도.
그래도 성과는 하나 있었다. 다음 여행지를 흑산도로 정한 것. 그 때는 완연한 봄 날일테니 센 바닷바람만 아니면 괜찮을 거야. 정약전의 자산어보 탄생지이니 그땐 유배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공유하면서 기록으로 좀 남겨봐야지. 김훈의 "흑산"같은 소설은 쓰지 못하더라도.
- 2023. 2.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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