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지역의 유적지 서핑 중 백제군사박물관이 크게 들어오다. 집에서 40여 분 거리의 논산시 부곡면에 있는데 아직 모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계백장군의 유적이 있다는 것이 마음을 끌어 당기다.
몇 달 전 흥수관이라 이름 지어진 부여땅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은 일이 있었고, 얼마 전 경주에세 화랑의 무예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러나 계백은 아니었다.
백제 3충신하면 흥수, 성충, 계백이라 배웠지만 계백은 죽음을 각오하고 임전에 앞서 그의 가족을 그의 손으로 생과 이별케 한 사람, 전투에서의 패배를 예견하고 적에게 붙잡혀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으로 특별히 각인된다.
결사항전, 5천 군사로 5만 앞에 4번을 싸워 이겼으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백제는 나당 연합에게 철저히 망했지만 그가 있었기에 패망한 백제의 마지막에 숭고함이 있다. 역사의 기록이란 게 패자에게는 한없이 가혹하지만 계백 그는 그래서 후대에도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죽었지만 살아있는 사람.
저 앞으로 탑정호가 보이는 수락산 자락에 그의 조각상이 서있다.
서로 다른 계백 인물상.
그의 용맹스러움을 세밀하게 표현한 석조각에는 그의 결연한 의지를 얼굴에서 읽을 수 있으나 그의 위패릏 모신 충정사의 초상화는 어쩐지 나약함이 보여 안쓰럽다. 고증할 길이 없겠으나 서로 같게 표현할 수는 없을까.
돌아오는 길, 더 높은 곳을 오르지 못하고 평지에서 바라본 들녘이 잠잠하다. 황산벌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는 수락산 주변 어디에선가 앞장 서서 용맹을 떨쳤을 것이다. 660년 8월 그 뜨거운 여름날에.
- 2019.10.2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