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설중치(雪中梔)

소나무 01 2021. 1. 11. 18:21

梔(치)는 치자나무를 뜻한다. 치자나무는 상록수다. 눈 속에서도 초록의 기품이 자못 의연한데 초록 그 안의 빨간 열매 또한 은근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여느 해 같으면 늦가을에 열매가 모두 익었을 텐데 지난 해에는 개화 시기도 늦었고 따라서 열매도 한 겨울이 되어서야 빨갛게 모양을 갖추었다. 지난봄에 찾아든 추위 때문이었을까.

 

 

심은 지 10년도 훨씬 지났지만 척박한 사질토에서도 그런대로 잘 자라주어 주인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해마다 열매를 거두어 잘 간수했다가 우리 식구에게는 물론 지인들이 찾아오면 즐겨 치자밥을 지어 내놓았는데 노란 색깔이 참 보기 좋았다. 아직은 지난해의 치자가 남아있어 마당에 좀 더 두고 눈으로 감상하는 호사를 누려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까치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 놈의 물까치 녀석들은 20여 마리 안팎으로 떼로 몰려 다니며 먹이 활동을 하는지라  미리 손을 쓰지 않으면 온통 제 세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다른 새가 그런다면 나눠먹겠다는 마음으로 모른 체 할 수도 있건만 이 녀석들은 토마토, 옥수수, 감과 사과, 호랑가시와 피라칸사 열매 등등 주인의 몫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가히 초토화시키는 몹시도 얄미운 놈들이다. 점차 먹이가 없어져 가는 계절이고 보니 녀석들은 치자 열매도 반갑다는 듯 즐겨 파 먹어 대기 시작했다.

하여 결국은 지금 쯤에서 수확하기로.

 

 

나무 하나에서 이 만큼을 따 눈밭에 내려 놓고는 기념사진.

그리고 방 안에 들여와 잎이 파란 레몬 나무 밑에 신문지를 깔아 널다. 빨간 껍질들의 빛깔이 참 곱다는 생각. 잘 말려서 올해도 누구에겐 가의 밥상을 위해 요긴하게 써 볼 참이다.

 

 

여름에 피었던 치자꽃. 사전에는 치자꽃에서 재스민 향기가 난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나로서는 동의할 수 없다. 치자꽃 향기가 훨씬 은은하고 좋으므로. 치자꽃에서는 치자꽃 향기가 날 따름이다.

 

 

 

봄에 심었던 목화도 치자처럼 열매가 매우 늦었다. 날씨 탓이라기보다는 얼치기 농사꾼의 무지함 때문일 것이다. 열매의 새하얀 솜뭉치를 볼 수 없겠구나 싶었는데 목화 몇 그루도 한 겨울이 되어서야 빈약하나마 어렵게 어렵게 하얀 속살을 보여 주었다. 목화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 그 모습이 좋아 지인들에게도 카톡을 띠우다.    

 

 

                                                                                                             - 2021.1.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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