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대장 닭의 추락

소나무 01 2022. 2. 13. 17:49

 사료를 주고 닭장을 나서려는데 몸 집이 큰 우두머리 수탉이 앞을 막고 있었다. 비켜나라고 발을 그 앞으로 뻗었더니 녀석이 대뜸 덤벼드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녀석을 공격할 것으로 여긴 모양이었다.

"허, 이놈 봐라"

비켜서라며 위협을 가하는 형태로 발로 땅을 한 번 차니 이 녀석이 험악한 자세로 재차 덤벼든다. 순간 놀라고 당황스러워 발로 살짝 걷어찼더니 계속 무서운 기세로 덤벼드는 것이었다. 곧바로 요절내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근처에 있던 막대기로 몇 대 살짝 쥐어박았더니 그제야 몸을 피한다. 그냥 후려치고 싶었으나 더 이상은 녀석들에게 막대기를 쓰지 않기로 한 나 스스로와의 약속이 부끄러워질 것 같아서 차마 그럴 수 가없었다.

"아니, 괘씸하기 그지 없는 놈. 날마다 열심히 먹이를 챙겨주고, 잠자리 따듯하게 챙겨주고 있는데 감히 주인에게 달려들어? 이 배은망덕한 놈. 내 이 놈을 그냥 - "

결국은 내가 물러 선 셈이다. 어차피 단순한 동물 아닌가. 그렇지만 쉽게 화가 풀리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다가 오지는 못할지라도 살짝 피해 줬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이 녀석은 확실히 닭대가리인가 싶었다. 그러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니 녀석이 수장으로서의 권위를 지키려는 행동이었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닭들의 우두머리로서 의 체면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휘하 닭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인에게 여지없이 몇 대 얻어맞았으니 자신의 처지가 우습게 되어버린 것이다.

 

일은 그 다음 날에 벌어졌다. 3마리의 암탉을 거느리고 있는 백봉오골계가 당돌하게 봉기한 것이다. 평소 영악하고 성질 사나운 모양새를 보이는 이 녀석이 대장 닭에게 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몸짓으로 봐서 자신보다 3배 이상 크게 보이는 레그 혼계 대장 닭에 도전한 것이다. 실내 유리창문으로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는데 서로 갈기를 세우고 공격 자세를 취하며 싸웠다. 작은 체구의 오골계 수탉이 날쌘돌이처럼 행동하며 치고 빠졌고 절대 몰러서지 않았다. 그러기를 10 여 분. 두 녀석이 눈에 보이지 않는 닭장으로 그라운드를 옮기는 바람에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지만 그러다 서로 제풀에 꺾여 그만두겠지 했다. 그러기를 다시 10여 분, 녀석들이 닭장 밖으로 나오는 낌새가 없어 혹시나 하여 방문을 나서 닭 장안을 들여다보니...

 

세상에. 두 녀석의 안면 쪽이 피투성이가 된 것이었다. 부리로 쪼고 발톱으로 할퀴어 벼슬과 육수에 상처를 낸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 11마리의 닭을 거느리고 있었던 대장 닭이 당연히 오골계 닭을 깔아뭉겠거니 짐작했는데 승리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오골계는 주인이 나타나자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닭장 밖으로 나와 그네들의 무리 속에 합류했는데, 대장 닭은 닭장 안 컴컴한 곳에 숨어들어 수모와 참패의 분을 삭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하던지. 대장 닭으로서의 권위가 깡그리 무너져버린 모습 그 자체.

 

 

전승자가 된 오골계 수탉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유유히 방사장을 돌아다녔으며 대장 닭은 종일토록 닭장 구석에 쳐 박혀 있었다. 마치 나의 패배를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초라한 형세로. 

오골계는 확실히 영악했다. 대장 닭이 주인으로부터 전 날 수모(?)를 당한 모습을 보고 이 때다 싶어 저돌적으로 공세를 취했던 것 같다. 그것은 수탉 2마리의 서열 싸움이기도 했다. 정작 암탉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둘이 싸울 때도 무표정인 체 관심 밖인 모습이었지만 수탉들에게는 최고의 자리를 위한 피 튀기는 몸싸움이었던 것이다. 

 

 

그 후 하루가 지나고,

대장 닭은 슬며시 무리 속에 합류하였지만 힘이 없어 보였다. 리더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듯 행동 하나하나가 소극적이며 저자세가 되었다. 가끔 씩 따로 떨어져 쓸쓸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전 날의 수모를 만회하겠다는 듯 오골계 수탉과 마주치면 다시 공격적 행태를 취하기도 했지만 그저 힘 빠진 공허한 몸짓으로 보일 뿐이었다. 한 마디로 날개가 꺾였다. 

그런 가운데 이곳저곳 바삐 움직여 다니는 백봉오골계 수탉은 나름 의기양양해 하지만 아직 감춰져있는 대장 닭의 힘을 알고있다는 듯 대장 닭 그 앞을 피해 다니거나 은근히 몸을 사리는 영악한 모습을 보인다. 평소에도 주인의 눈치를 너무 살피는지라 아무래도 녀석에겐 정이 덜하다. 

 

교훈이랄 것도 없지만 잘 났다 자만하거나 교만에 빠지지 말고, 자칫 방심하다가 수렁에 빠질 수 있으니 늘 스스로 닦고 경계하는 마음을 잊지 않아야 될 것이라는...

기회가 되는대로 알게 모르게 대장 닭의 권위와 체면을 조금씩 살려줘야 할까 보다.  

 

                                                                                                        - 2022. 2.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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