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하여 기르고 있던 수탉 중 2마리만 남겨 놓고 모두 처분했다고 지난 글에 그랬다. 그래서 그 후로 좀 홀가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또 다른 문제가 생겨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레그혼 계의 대장 닭 때문. 녀석이 나름 보스 역할을 하며 암탉들을 보호하는 것은 좋으나 제 주인까지 경계하거나 공격하는 것에 인내하기 쉽지 않았다.
이 녀석은 대장 닭답게 몸집이 크면서 벼슬과 육수, 부리 등이 예사롭지 않아 위엄을 느끼게 한다. 내가 사료를 주거나 둥지에 알을 꺼내려고 닭장 안으로 들어서면 딴청을 부리는 듯하면서도 주인인 나에게도 매서운 시선을 보내며 경계하는 것이었다. 암탉들에게 무슨 해꼬쟁이라도 할까 봐서다. 녀석이 어떻게 하나 보자며 옆에 있는 암탉을 살짝 건드리면 꾹꾹 꾹- 하는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내게로 쫓아온다. 이때 내가 그냥 모른 체하고 슬그머니 나오면 아무런 일 없겠으나 녀석의 위협적 행동이 괘씸하여 발로 살짝 건드리면 곧바로 달려든다. 그것도 갈기를 세우고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공격해 오는지라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내가 쫒아내려 대응하면 녀석은 다시 거세게 공격해 온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물러서면 나를 우습게 볼까 봐 격하게 발을 휘두르게 되는데 녀석은 억울하다는 듯 그제야 뒤로 물러선다. 그런데 승복하는 모양새가 아니라 수하의 닭들 앞에서 수모를 당해 분하다는 듯 일정 거리에서 계속 나를 노려본다.
그게 녀석의 본능이거니 하면서도 매일 몇 차례 씩 닭장을 드나들 때마다 그러하니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혹 내 집 닭만 그러나 싶어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게 역시 수탉의 본능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내버려 둘 수 없지 않은가.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내가 이런 경우를 당하면 얼마나 놀랄까. 그렇지 않아도 수탉이 무섭다며 아예 닭장 출입을 하지 않는 아내다.
그래, 보스니까 그럴 수 있지. 암탉들을 잘 지켜 줘야지. 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도 현재 내가 기르고 있는 공간에서는 암탉들에게 위협이 될만한 일이 없는지라 사실 녀석의 그런 보호본능은 필요하지 않다. 내가 앞으로 유정란으로 병아리를 만들어 낼 일이 없으므로 녀석은 더욱 필요하지 않다. 다만 이왕 닭을 키우고 있으니 수탉이라는 상징적 존재감을 인정할 따름이다. 그게 아니라면 좀 과하게 표현해서 녀석은 먹이만 축내며 그 육중한 체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새벽을 깨우며 하루의 시작을 알려 주고 있기에 시골에 사는 소소한 정서를 만들어 줌이 오히려 녀석의 존재감이 크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그러나 그것도 성계가 된 후에는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울어재끼는 바람에 소란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없지 않다. 주로 옆 집의 수탉과 교신하느라 수시로 목청을 뽑아 대지만 내가 녀석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화가 난다는 듯 내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칠 때도 많다. 그놈 참, 감정은 있어가지고.
하지만 녀석에 대한 미운 감정은 미상불 내가 훨씬 더 크다 할 것이다. 수시로 이루어지는 암탉들과의 교미 때문에 더욱 그렇다. 녀석이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그 육중한 몸으로 암탉 등에 올라타는 바람에 암탉들의 등이 죄다 까져서는 맨살이 훤히 드러나 버렸다. 보기에도 흉하지만 그리 당하는(?) 암탉들은 얼마나 고역스러울까 싶다. 그 역시 본능적인 모습이라지만 생살이 드러난 암탉들의 처지가 여간 측은하지가 않는 것이었다. 적응력이 생겨 깃털이 새로 생기려니 했는데 그런 행위가 쉬지않고 반복되는지라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암탉들은 맨살이 많이 들어 난 채로 그 추운 겨울을 났다.
그렇게 수탉에 대한 내 감정이 쌓여갈 때 드디어 사단이 났다. 날이 좋아 닭장 울타리 밖에 만든 밭두둑을 따라 더덕 구근을 심고 있는데 예의 그 대장 닭이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나의 동선을 계속 따라오며 경계와 위협적인 행동을 해대는 것이었다. 꾸국 꾸국- 하는 저만의 독특한 소리를 내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연신 땅을 긁어대면서. 마치 당신에게 평소 유감이 많은데 어디 한 번 해볼 거냐라는 듯. 이를테면 주인에게 시비를 걸며 도전장을 내미는 듯한 태도. 저리 비켜나라고 제지해도 멈추질 않는다. 순간 작업하던 호미를 내팽개치고는 그대로 닭장 안으로 들어가 녀석을 단숨에 제압해 버리다.
그다음은 생략.
녀석을 거의 1년 가까이 키웠고 보니 미운 정도 정 아니었나 싶어 한 번쯤 되돌아본다. 내가 호미로 작업하던 모습이 녀석에겐 위협하는 것으로 비췄던 것일까?...
그만 생각하자. 녀석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겠다고 줄곧 뇌까려 왔으니 이제 녀석과의 인연을 훌훌 털어버리기로.
그리고 지난 글 이후 더 이상은 물을 끓이지 않기로(?) 다짐한 터라 집과 멀리 떨어진 언덕 한쪽에 깊이 묻어 주다. 달랑 한 마리 남은 백봉 오골계 수탉이 그 빈자리를 잘 메꿔주겠거니...
남아 있는 암탉들이 어딘가 쓸쓸해 보였지만 며칠 지나면 울안의 닭도, 나도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 2022. 3.3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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