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감과 밤

소나무 01 2022. 11. 5. 09:40

내가 살 터를 구입하면서 맨 먼저 심은 나무가 감나무였다. 어느새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전주에 있는 한 종묘장에서 대봉감 5주를 구입해 심었는데 그 무렵 살구, 사과, 배, 자두, 호두, 밤 등 여러 과실나무 묘목을 함께 심었지만 가장 성장이 좋은 것은 감과 밤이었다. 사질토의 척박한 땅 때문이다. 

다른 과수들은 성장이 매우 더디고 열매가 거의 없어 봄철 꽃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감과 밤은 굳이 거름을 하지 않아도 가을이면 제법 실한 열매가 맺혔다.

 

집 언덕에 토지의 여유가 좀 있어 밤나무 10 여 그루를 심었는데 지금은 대 여섯 그루에서 밤송이가 많이 달린다. 그대로 수확하면 상당한 양이될 텐데 그 '상당한'의 상당량이 벌레가 먹어 절반 정도만 거두어 먹는 정도. 게으르기도 하려니와 건강한 밤을 먹겠다는 마음에 농약살포는 생각지도 않았다.

지내다 보니 주변에 재래종 밤이 몇 그루 더 있었다. 심은 개량종 밤에 비해 크기가 작았지만 맛은 이게 훨씬 뛰어 나 사실 이것을 주워 먹는 기쁨이 더 크다. 사람들은 보다 큰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지인과 나눠먹을 때는 볼품없어 보이는 건 내놓지 않는 편이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벌레들이 침입해 있는 경우가 많아 건네는 입장에서 꺼릴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밤 따는 재미를 느껴보겠다는 것 때문에 장대를 이용해 의도적으로 밤을 털었으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연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워서 수확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수년 째 그리하고 있다. 밤송이 하나 하나 일일이 까야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이런 작은 바스켓으로 여러 개 주을 수 있었다.

 

 

감은 절로 자라 주먹만 한 열매를 선물해 주는 게 고마웠다. 해마다 이런 고마움을 주인에게 주려니 했는데 오산이었다.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서 몇 년이 지나자 수확량이 크게 감소했다. 감꼭지병이라는 병충해 때문이었다. 여름철이면 그동안 맺혔던 실하게 보이던 작은 열매들이 엄청난(?) 양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마다 농약 살포가 절실히 게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냥 주는 대로 먹기로 했고, 그런데도 나눠 먹을 수 있을 만큼 제법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었다. (내가 애써 '나눔'을 얘기하고 있지만 잘 자라 소중하게 맺혀 준 과실이다 보니 선뜻 실행하기가 쉽지 않은 속마음을 감출 수 없다) 

 

 

암튼 감과 밤, 두 나무가 가을에 내게 주는 기쁨이 크다. 감과 밤, 좋은 어감에 서로 형제 같기도 해서 이 비슷한 어감의 어원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내 검색 능력으론 알 수가 없다.

가을이 올 때마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자주 머릿속에 맴돌지만 속인인 나에겐 '감과 밤나무 옆에서'가 더 생각날 만큼 기다려 왔던 가을. 

아니, 그런데 내일모레가 벌써 입동(立冬)이라니...

 

                                                                                                                   - 2022.11. 5(토)

'내 집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란타나 추억  (2) 2023.01.05
산란계의 마지막 알  (2) 2022.12.02
도토리 줍기  (0) 2022.10.19
호박꽃 단상  (0) 2022.08.02
웬 영지버섯?  (2) 2022.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