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안에 오래된 토토리 나무가 몇 그루 있다. 해갈이 하는지 지난해엔 도토리가 거의 열리지 않았는데 올핸 땅바닥에 지천으로 떨어진다.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할 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해가 거듭되면서 그냥 방치하는 게 아깝다 싶었다.
텃밭을 가꾸며 먹거리를 만들어 먹는 즐거움이 있지만 거기엔 반드시 상응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채소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꾸준히 보살피면서 적당한 노동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도토리의 경우는 순전히 공짜다. 울 안에 이런 나무가 있다니,,, 주울 때마다 나무에 고마워한다. 다만 주어서 그냥 먹을 수 없고 껍질을 까고, 분쇄하고 그리고 수없이 쳐대서 물과 함께 가라앉혔다가 다시 끓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그러나 그 자체가 별미를 만들어 먹는 예사롭지 않은 수고다.
갈참, 졸참, 신갈... 등 참나무과의 여러 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는 크기가 제 각각인데 그중 제일 크고 실하게 보이는 것은 상수리나무의 열매다. 상수리 열매는 밤처럼 유난히 색깔이 짙다. 밤보다 크기가 작지만 그래서 작은 밤일처럼 여겨지기도 해 아니 줏을 수 없다. 산짐승들의 먹이여야 하니 산에서 도토리를 줍지 말랐지만 내 집의 경우는 예외다. 인근 산속에 그런 나무들이 많아서 인지 내 집엔 요즘 청설모나 다람쥐들도 찾아오지 않는다.
날마다 한 바가지 정도 씩 줍지만 그렇지 않고 그대로 놔 두면 봄에 싹을 틔워 언덕바지를 덮어버리는 바람에 제거해 주어야만 하는 당위성도 있다.
도토리 줍기가 끝이 났다. 날마다 줍다 보니 이 만큼 쌓였다. 건조 중인 도토리를 내려다보며 문득 들어지는 생각은 이것들을 줍기 위해 내가 얼마나 허리를 숙였겠느냐 하는 생각. 허리운동도 그렇지만 모든 먹거리에 허리를 굽히는 겸손함으로 대해야 한다는 깨우침을 준다.
이제는 껍질을 까서 묵을 만들어야 하는데 몇 해 전 방앗간에 가니 분쇄비용이 매우 비싼 편이었다. 차라리 묵 안 먹겠다 싶을 정도로. 그래서 포대 자루에 넣어 돌바닥에 내리 쳐대며 까는 방법을 택했는데 이거 힘들기는 하나 촥- 촥- 하며 내리 꽂히는 소리에 세상 번민이 사라지는 통쾌함이 있어 재미가 난다. 여기에 나름 운동도 되는 것이어서 방앗간보다 오히려 낫다는 합리화의 명분을 만들어 낼 수 있어 좋았다.
이런 방법으로 조금 씩 깐 후에 믹서기에 갈아 앙금을 만들어서는 묵을 만들어 먹는다. 맛있는 건 당연. 선택받은 자(?)만 경험하게 되는 산자락 생활의 즐거움이다.
- 2022.10.1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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