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호박꽃 단상

소나무 01 2022. 8. 2. 12:28

흔한 꽃이 호박꽃이요 꽃 자체의 펑퍼짐한 자태로 인해 호박꽃도 꽃이냐고 비아냥 거린다. 특히 특정 여성을 겨냥하여 그리 호칭함은 일종의 모욕적인 발언으로 들린다.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평소 호박꽃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호박을 얻기 위해 심어 가꾼다는 생각뿐 호박꽃에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며칠 비 내리고 날이 더워 줄곧 집 안에 머물면서는 다시 쳐다 보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올라갈 땐 안 보이던 꽃이 내려올 땐 보이더라는 시구와 같이.

 

아침 일찍 창밖을 보니 호박꽃이 샛노랗게 피어 눈에 빨려 들어온다. 하루에도 수 십개 피는 것 같은데 나팔꽃 그것처럼 아침 일찍 피었다가 오전 중에 시들어 버리니 평소 내 시선을 끌지 못했던 것일까? 

오늘 아침은 한참을 쳐다 보면서 어린 날의 추억을 떠 올리게 된다. 주로 수꽃을 따다가는 꽃잎을 떼어 내고 이렇게 촛등처럼 만들어 갖고 놀았다. 노란 수술대는 붓 대용의 천연물감이었다. 손톱에 칠하면 노랗게 물이 들어 보기 좋았지만 그러나 이것의 주 용도는 잠자리 잡기였다.

잠자리 숫컷을 잡으려면 또 다른 수컷이 필요했다. 조심조심 다가 가 한 손으로 움켜 잡을 수도 있었지만 쉽지가  않다. 그래서 미리 잡아 놓은 수컷의 긴 꼬리에 이 수술대를 문지르면 노랗게 물들면서 희한할 정도로 똑같은 암컷으로 변했다. 그 리고는 그 잠자리의 다리를 실로 묶어 막대기 끝에 달아 매서는 "건다 - 건다-   "하는 주술 같은 주문을 내뱉으며 막대기를 휘두르면 근처의 수컷이 암컷으로 오인하고 달라붙었다. 잠자리 녀석도 그 모양새가 구분되지 않는 모야이었다. 

내친김에.

철사를 둥그렇게 휘어 잠자리채를 만들어서는 온 동네 거미줄을 걷어 수십 겹의 끈끈이 채를 만들었다. 잠자리 날개가 여기에 달라붙으면 아무리 파드득거려도 벗어나질 못했다. 아주 끈적끈적한 양질의 실을 얻기 위해 왕거미 꽁무니에서 강제로 실을 뽑기도 했다. 거미가 간혹 굵은 줄기의 실을 뭉태기로 쏟아 낼 때 느끼는 희열이란.

 

 

어제 피었다가 진 암꽃. 암술은 수술과는 다른 묘한 형태를 갖고 있다. 암꽃은 수꽃과 달리 한 줄기에서 겨우 한 두 개 필 정도라서 대개는 수꽃만 따서 놀았다. 지금은 호박꽃 딸 일이 없다. 어떤 이들은 모양을 낸 음식으로 활용하기도 하던데 나에겐 그런 재주가 없다. 단지 호박이 필요할 따름이다. 그것도 한 겨울 호박죽으로 만들어 먹을 늙은 호박으로.

 

 

몇 개 피지 않은 암꽃들이 제대로 수정이 되었거나 별 탈없이 잘 자라주면 좋을텐데 올해의 경우도 결실이 좋지 않은 편이다. 지난해에는 겨우 3개 정도를 얻을 수 있어 아쉬웠는데 올핸 조금 부지런을 피운 탓인지 그래도 여닐곱 개가 보인다. 거름을  나름 푸짐히 한 편이다. 다시 어릴 때 기억을 소환하자면 사람들은 호박을 심기 전에 큰 구덩이에다 인분을 상당량 쏟아부었다. 호박은 거름을 많이 줘야 한다면서. 그 모두 모두 옛날 얘기가 되어 버렸다.

이제 세월을 붙잡고 싶은 나이가 되었음에도 나는 어느 새 빨리 겨울이 돌아와 내 식탁 앞에 놓인 달콤한 호박죽을 생각하는 개념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2022. 8.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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