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은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는데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얼마 전 산란계 사육을 끝내고는 또다시 기르고 싶다는 욕심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어떻든 그동안 기르던 산란계들이 더 이상은 알을 낳지 않아 정리했다. 먹이를 들고 가면 우르르 쫓아 나와 반기곤 했는데 이제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좀 허탈하다.
정확히 지난해 5월 12일 레그혼으로 여겨지는 병아리 20마리를 들여와 키우기 시작했는데 3개월 반쯤 지나고부터 알을 낳기 시작하면서 양계의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대개는 한 겨울에 알을 낳지 않는다고 하던데 내가 기르던 닭들은 하루에 한 개, 또는 이틀에 한 개씩 꾸준히 낳아 줘 나와 식구들의 건강을 챙겨주었고 여유가 있어 더러는 이웃, 지인들과도 나눠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달걀을 만들어 주던 때로 부터 1년 2개월 정도가 되는 지난 10월, 닭들은 더 이상은 알을 낳지 않았다. 남아있던 5마리가 어쩌다 한 번 씩 한 두 개 낳기도 했지만 그저 사료만 먹고 제 몸집만 키우는 모양새였다. 닭의 수명이 10년 넘는다는데 겨우 1년 만에 알 낳기를 멈추다니... 그래서 결국 위 사진이 마지막 달걀이 되었다.
자료를 살펴보니 산란계는 대체로 1년 정도 알을 낳고 더 이상은 낳지 않는다고. 때문에 대개는 시장으로 싼 값에 팔려 가 길거리의 통닭구이 신세가 된다는 것이었다. 산란계로서의 역할이 끝나 '폐계'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이 녀석들을 꽤 공들여 키워 가며 즐거워 했는데 그러던 중 수탉의 수효가 많아 몇 마리 처리했고 암탉 몇 마리가 사고사(?)를 당하는 등 최종적으로는 5마리가 남았었다. 알을 낳지 않는 폐계라 할지라도 식용으로 처리하면 될 일 아닌가 싶지만 초기에 서너 마리를 직접 잡아보니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궁리 끝에 혹 주위에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라고 이웃집에 얘길 했더니 며칠 후 모두 체포(?)되어 갔다. 정이 들었던지라 아무래도 짠하고 서운했다. 좋아하는 풀 끊임없이 베어 먹이고 행여 포식자에게 당할까 봐 날마다 보호망과 문단속 열심히 했는데...
하지만 냉정해 지기로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백봉오골계 4마리. 이 녀석들은 산란계들과 같은 시기에 키웠지만 아직도 이틀에 한 개 씩은 알을 낳아 주고 있어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몸집이 작아서 알도 작은 편이지만 꾸준히 알을 낳으며 주인을 위해주고 있다는 것 때문에 적은 수효지만 계속 사육하기로. 사료에 좀 더 신경 쓰고 겨울 추위에 물이 얼지 않도록 하는 등 나름 애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 녀석들은 영악할 정도로 눈치가 빨라 정이 좀 덜하지만 건강하게 크고 있다. 사료를 적게 먹고 분변 양도 적어 예전보다는 일거리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보고 있다. 내년 봄엔 달걀 수효의 기대치가 높은 산란계보다 품이 적게 들어 여유롭게 키워볼 수 있는 이 백봉오골계 병아리만 댓 마리 구입해서 키워볼까 하는.
- 1년 반 남짓 함께했던 산란계들이여 고마웠다.
2022.12. 2(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