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둘레길 산책

소나무 01 2023. 1. 7. 12:30

원래 집터를 구하면서 배산임수를 생각했었지만 집 뒤편으로 난 산자락 오솔길을 따라 소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평소에도 자주 산책에 나서는 편이지만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거의 매일같이 둘레길을 걷는다. 대략 왕복 3-4Km 정도의 거리가 된다.

 

집 뒤로 난 나만의(?) 오솔길을 4백 미터 정도 걸으면 본격 미륵산 둘레길 입구에 이른다. 좌로는 미륵사지가 있는 곳이고 우로는 뜬바위와 구룡마을 대나무 숲 또는 사자암으로 갈 수 있는 길,

대개는 미륵사지 방향으로 몸을 꺾는다. 가면서 시원한 지하수를 마실 수 있고 가까이에서 미륵사지 석탑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둘레길은 대개 소나무와 참나무 또는 아까시와 단풍나무일 뿐이어서 수종이 매우 단조롭지만 호젓해서 좋다. 한 두한두 군데 신우대 숲을 지나면 호젓한 기분이 배가 된다. 대나무 가지로 만든 것을 지팡이 삼아 오후 4시 이후의 시간을 택해 걷게 되면 오솔길을 걷는 사람은 오직 나 혼자. 어쩌다 한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을 뿐 그만큼 누구의 방해 없이 혼자만의 오롯한 사색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음이 기쁘고 간혹 고라니나 오소리를 마주치면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그냥 자유롭게, 편하게 걸을 뿐이다. 때문에 간혹 두 손을 휘저으며 빠른 걸음으로 걷는 이를 보면 그게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어딘가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고.

 

 

중간에 쉴 수 있는 벤취가 있지만 한 번도 앉아 본 일이 없다. 그것이 하나의 습관, 아님 나의 생체리듬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난 두세 시간의 산행을 하는 경우라도 앉아서 쉬어 본 경우가 없다. 쉬어도 잠시 두 다리로 멈춰 설뿐.

 

 

겨울의 둘레길은 주변은 온통 낙엽 일색일 뿐 꽃과 나뭇잎을 볼 수가 없음이 아쉽다. 비산비야 지역에 솟아있는 산이어서인지 깊은 계곡이 없어 시원스러운 물줄기를 대할 수 없음이 또한 아쉽고 어딘가 좀 삭막하기는 느낌도 없지 않으나 고사목을 쪼는 딱따구리 소리와 댓바람 소리 그리고 흙담길... 그런 것들로 그 서운함을 상쇄한다.   

 

 

내가 적당한 산책 코스로서의 목적지로 정한 둘레길 끝에는 미륵사지가 있다. 대개는 멀리서 무연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한참을 멈춰서 있다가 돌아선다. 그 때마다 늘 머릿속에 떠도는 것은 "망해도 철저히 망한 백제..."라는 나름대로의 회한.  그래서 이곳을 반환점으로 되돌아설 때의 마음은 언제나 허허롭다. 그렇다면 쓸쓸한 산책길? 아니다.

혼자만의 차분한 침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행복 아닌지.

 

 

어쩌다 한 번 씩 찾아가는 둘레길 반대편 쪽에 있는 뜬 바위.

 

                                                                                                                     - 2023. 1.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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