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는 어떤 형태로든 갈 기회가 몇 번 있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았다. 아마 사람 많은 관광지라는 것 때문일 것 같기도 한데 비금도 임자도 우이도 등 인근 서해 도서와 멀리 거문도 추자도 등의 섬들을 이미 찾아봤던 터라 특별히 유인력이 떨어졌을 수도 있을 듯.
지난번 여수 고흥 여행길에서 "다음에는 홍도행으로 하자"는 친구의 제의에 지난 5월 말 다녀오다.
홍도항에 내려 기념 촬영. 뒤로 우리를 싣고 온 쾌속선이 보인다.
진득한 여행길이고자 했으나 사는 게 뭔지 그냥 쉽게 1박 2일 여정으로 정했다. 최근에 다녀온 한 선배가 자신은 2박 3일이었지만 아마 1박 2일이면 적당하지 않겠느냐고 권하는 터에 그리 결정한 까닭도 있다. 그것도 목포에 있는 한 여행업체에 의뢰해 수월하게 다녀오는 것으로 했는데 왕복 여객선과 현지 음식점, 숙소, 유람선 등의 예약에 신경이 많이 쓰일 것 같아서다. 단순함만을 원하는 나이 탓일 수도 있다.
평일 오후 1시에 출발한 여객선은 도초도와 흑산도를 거쳐 2시간 30분 만에 홍도에 도착. 우선 선착장에서 기념사진 한 방. 날씨가 좋은 편이어서 롤링이나 피칭 없이 안락하게 갈 수 있었으나 쾌속선이라는 이유 때문에 객실 안에만 머물러야 했던 답답함, 거기에 객실 유리창(투명 아크릴 창이기도 하다) 마저 불순물이 많아 끼어 바다 조망을 방해하는 바람에 짜증이 좀 나기도 한.
하얗게 개화한 다정큼나무
산책로에서 바라본 홍도 선착장 전경
섬 오른쪽 능선으로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한쪽 부분이나마 섬 풍광을 조망. 시원스럽고 아름답다. 돈 나무 다정큼나무 등 상록수들이 많아 남쪽 해안가라는 것을 실감한다. 구실잣밤 나무로 부르는 나무들의 온통 하얗게 개화하여 독특한 향내가 가득하다.
인조 잔디가 깔린 홍도분교. 주변은 거의 숙박 시설과 음식점이다.
섬 왼쪽 편의 산책로를 따라 계속 오르면 섬에서 가장 높은 깃대봉(367m)에 오르게 되는데 시간 관계상 포기해야 함이 자못 서운했고.
아래로 보이는 유일의 평지엔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 6학년에 재학 중인 3명의 어린이가 내년에 졸업하게 되면 폐교가 된다는데 그 이후의 드넓은 평지 면적(?)의 학교 용도가 궁금해진다. 작금의 출산율도 그렇지만 자녀 교육만은 뭍으로 보내는 게 섬 주민들의 소원인지라 여타 섬의 형편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제 섬 자체가 관광지여서 청소년수련원 같은 것으로 바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지나 소유 주체인 교육청을 떠나 좀 더 큰 그림의 훌륭한 관광 시설이 들어서기를 바라는 마음.
섬에서의 연료 문제는 중요할 것이다. 전기 사용이 가능하고 생활용수는 해수를 담수화 시켜 불편함 없이 사용하고 있었으나 가스는 모두 뭍에서 운반되어 온다. 안전을 위해서인지 포대에 담긴 가스통이 조금 애처로워 보인다.
오르막 길뿐인 상가 지역을 벗어나면 원주민이 예전 모습으로 거주하는 집들이 몇 채 보인다.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라도 무언가 채소를 심어 가꾸고 있다. 이들은 성수기 하루에도 수백 명씩 쏟아져 들어오는 관광객과 이들을 맞이하는 수많은 요식업소와 위락시설의 물결 속에 포위되어 있을 텐데도 이 섬에 뼈를 묻은 조상 묘를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석양에 비친 섬이 붉게 보인다 하여 홍도(红島)라 이름 했다는데 노을 지는 모습을 몽돌해변 위에서 지켜보다. 아름답다는 감탄과 함께 많은 것들을 생각게 한다.
다음 날 아침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듯한 60여 명의 관광객이 유람선에 오르다. 저 멀리 오키나와를 지나는 태풍의 영향인지 날이 흐리지만 운항에는 영향이 없을 듯.
홍도 비경의 백미는 역시 해안의 기암괴석이다. 홍도 주변에 20 여 개의 바위섬들이 있다는데 그 자체가 빼어 난 경관을 자랑한다. 섬이라고 하면 어느 곳이나 파도가 있고 바위와 암벽이 있을 테지만 역시 관광 1번지 답게 그 형태들이 압권이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홍도 홍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다. 그 때문에 2시간 정도의 유람선 관광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들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순간순간 셧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흑산항 일부
상리재 고갯길
귀로에 흑산도에 들러 버스 편으로 섬을 일주하다. 2천 명 정도가 거주하는 섬에 일주도로를 만드느라 무려 27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는데 버스는 1시간 30분 만에 한 바퀴를 돌았다. 구비 구비 마치 구렁이 같은 험한 길의 상나리재를 올라 흑산도 주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상라봉 입구에서 한 번 내려 쉬었을 뿐 줄곧 버스 안에서의 관광이었다.
"안전벨트 잘 매시요잉. 핸들을 한 번에 못 꺾응게 후진했다가 가기도 하요. 여그가 면허시험장이다요"
"쩌그 있는 돌팍 좀 보시오. 보이요? 머까치 생겼소?" 등등 완전 전라도 토속어를 구사하는 버스 기사의 해설 입담이 더해져 흥미 넘치는 일주 관광이었다.
... ...
그러나 사실 나의 속마음은 조선 순조 때의 신유사화 때문에 17년 동안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자산어보를 집필한 정약전의 행적을 좀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는데 모두 접어야 했다. 과거 읽은 김훈의 소설 "흑산"으로 자족.
언제일지 알 수 없는 그저 막연하기만 한 "다음 기회"라는 관광여행 아닌 탐사를 생각하면서.
- 2023. 6. 2(금)
* 이번 여행은 깨복장이 친구 둘과 한 친구의 아내 등 모두 4명이 동행한 모처럼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4명 모두는 학창 시절부터 모두 한 동네에 살던 진한 인연을 갖고 있는데 그 의미를 살리지 못해 아쉽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불찰.
선착장을 걷고 있는 아래 사진 한 장을 더하면서 부부로 동행한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필드에서, 장기 해외 생활에서 더 행복한 모습으로 지내길,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정 중 내 생일이 끼어 있어 KTX에서의 축하 케이크, 현지에서의 과분한 음식 등의 이벤트에 감사 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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