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 꽃 좀 봐!"
산길에 동행하던 일행 중 한 사람이 반가워하며 무슨 꽃인지 궁금해한다. 무심코 걷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와- 그렇게 반가울 수가.
그런데 꽃 이름이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줘야 하는데. 엘리지? 아니다 그건 가수 이미자를 두고 하는 하는 말이고. 그 비스무리한 건데... 골똘히 생각하니 기억이 살아났다. 꽃 모양이 독특한 데다 이름도 특이해서 머리에 입력된 상태가 좋았던 모양이다. 얼레지다.
"그 꽃 얼레지라는 꽃입니다"
우쭐대며 잘난 체 했는데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휴대전화로 꽃 검색을 시도한다. 좋은 세상이다.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대면 곧바로 이름을 알려주니.
"-맞네요"
꽃잎이 뒤로 제껴져 있고 땅 표면을 덮고 있는 넓은 잎 두 장에는 얼룩무늬가 있다. 얼레지라는 꽃. 얼레지라는 이름도 순우리말이다. 근 20여 년 만에 다시 보는 꽃이다. 그때 우리 야생화에 반해 디카와 접사렌즈를 구입해서는 사진작가 흉내를 내보고 싶어졌다. 야생화를 좋아했던 직장 동료는 장비 구입을 알선해 주면서 맨 처음 출사 장소로 경기도에 있는 H산을 선택하도록 했었다. 거기에 가면 얼레지라는 꽃이 참 많다고. 과연 그랬다. 몇 포기 떠 와서 집에서 가꿔보고 싶을 정도로 내 눈엔 신비롭고 아름답게 비쳤었다.
야생화를 찍는 사진 전문가들이 나같은 심보를 갖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자생 지역을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그런데 여기 와 보니 그곳에서 처럼 얼레지가 지천이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여기라 함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산간지대를 말한다. 과거 가을 단풍 철에만 이곳에 찾아왔던 터라 이 아름다운 봄꽃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가까운 지인이든 어느 매체든 하나같이 가을 철의 호젓한 산책(산행) 장소로만 전해 주었지 이 봄꽃 얘기를 전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반가움이 더 컸는지 모른다.
야생화 보호 차원에서 생각 해보면 나도 가능한대로 입 무겁게 해야 되는 것 아닌지.
좀 더 친근해 지고 싶어서 검색창을 열어보니 진귀한 사실 몇 가지를 새롭게 알게 된다. 얼레지는 대개의 화초처럼 씨가 떨어져 이듬해 꽃을 피우는 게 아니라 심어져 꽃대가 나올 때까지 7-8년의 세월이 걸린다는 것이다. 예사롭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귀한 대접 받음이 마땅한 듯. 곤충에서는 매미가 그렇다는데...
꽃 앞에 오래 머무르고 싶어 되돌아 나오는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1년 후를 약속하면 떠나오다. 언뜻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연보라의 수수한 색상에 수줍은 듯 고개를 아래로 숙인 자태가 산골 색시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누구인지 꽃말을 짖꿎게 붙여놨다. "바람난 여인"이라니.
그래 올해도 바람을 피우거라. 치마 속에 씨앗 모아서는 바람 바람 봄바람 타고 좀 더 멀리멀리 퍼져 나가 새살림 차리거라. 그런다고 손가락질하는 이 아무도 없으리니.
- 2023. 3.31(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