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닭이 드디어 일을 낳다. 초란이다. 그동안의 오골계는 흰색 위주의 알을 낳았었는데 이번의 토종닭 초란은 닭의 생김새를 닮아 누런 색깔이어서 건강해 보인다. 영양 성분은 오골계를 제외한 일반 닭의 흰색과 누런색의 달걀이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누런색에 익숙해져서 인지 토종닭의 알을 보면서 비로소 달걀같이 인식하게 되는 아이러니. "익숙해진다"는 것이 참 좋으면서도 무섭다.
이 달걀을 얻기까지 대략 15주 정도 걸린 것 같다. 넉 달 정도 기다린 보람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2마리가 어찌 한날한시에 알을 낳을 수 있을까. 산란동시라 -, 나에겐 줄탁동시보다 더 의미가 있는 용어가 된 셈이다.
우중에 사료를 주기 위해 닭장 문을 열었더니 이 2마리가 둥지 하나 싹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알을 낳는구나 싶어 기쁘고 반가웠다. 행여 산란에 방해가 될까 봐 모른 채 하며 조심스레 뒤돌아서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다시 가 보니 산란이 끝났는지 2마리 모두 닭장 안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래 수고했다!"
녀석들을 제치고 둥지 안을 들여다보니 예상대로 알을 낳아 놓았다. 정상적인 크기보다 약간 작은 편이었지만 튼실해 보였다. 손에 와닿는 촉감은 두 개의 알 모두 유난히 따뜻하고.
"그래 수고했어! 잘 먹을 께!"
녀석에게 또 한 번 고마움을 표현하고 수거해 나오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계속 맴돈다. 부화장에서 틀림없이 같은 날에 태어났겠지만 서로의 성장과정에서 분명 차이가 있을 텐데도 같은 날 동시에 초란을 낳다니.
주령 5주가 되었을 때의 토종닭
돌이켜 보면 우여곡절이 좀 있었다. 시장에서 4주가 된 1마리만 사서 닭장에 넣었다가 전입 선임 격인 오골계들의 배척으로 외톨이 신세를 만들어 준 꼴이 되어 버렸다. 구석에서 꼼짝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오골계들이 텃세를 부리며 부리며 먹이를 함께 먹지 못하도록 그때마다 부리로 쪼아대는 바람에 식음전폐 상태. 그 때문에 먹이를 따로 챙겨줘야 했다. 내가 없으면 녀석들이 따로 준 먹이까지 빼앗아 먹는 바람에 얼마동안은 내가 보초를 서줘야 할 형편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다시 같은 주령의 1마리를 더 구입해 와 친구를 만들어 줬더니 조금씩 기를 편다. 서로 힘이 되는지 늘 붙어 다녔다. 하지만 그럼에도 먹이 앞에는 둘 다 근접을 못하는 것이었다.
결국 사료통에 사료를 여유 있게 부어놓기로 했다. 1년 반 선배 격인 오골계들이 1차로 식사를 즐기며 배를 채우고 그곳을 떠난 다음에야 전입 졸병인 토종닭들이 눈치를 보며 그런대로 여유 있게 남겨 놓은 사료를 먹는다. 몸집은 토종닭이 제일 커졌으면서도 알을 낳기 시작한 지금에도 토종닭들은 눈칫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평소에는 서로 잘 어울려 지내는 듯싶으면서도 일단 식사 때가 되면 오골계들이 여지없이 성깔을 부린다. 그래 그게 너희들 본능이려니...
위 7마리가 내가 키우고 있는 닭의 전부다. 꼬리가 긴 백봉오골계 수탉 1마리는 해코지를 하지 않으면서 품종 관계없이
암탉 모두를 너그럽게 거느리는 편인데 백봉오골계, 특히 검정 오골계 2마리는 먹는 것에 대해서는 양보 없이 토종닭을 쪼아댄다.
가만히 살펴보고 있으면 토종닭 두 녀석들도 이젠 눈치가 빨라져서 치고 빠지는 전법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먹이를 주면 눈치껏 달려와 나를 보디가드 삼아 후다닥 급히 먹어대고, 그러다가 뒤늦게 접근해 온 오골계들에게 쫓겨난다. 그리고는 다시 눈치를 살피면서 슬그머니 다가 가 빠르게 먹어대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안타깝지만 녀석들에게 별도의 공간을 확보해 주지 않는 한 그게 녀석들의 생존전략이려니 할 수밖에.
그래도 서로의 서열을 인정하며 알은 같은 둥지에서 잘 낳아주고 있으니 주인으로서는 그것만으로도 그저 감사와 만족.
- 2023. 7.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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