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녀석을 볼 때마다 많이 밉고 짜증 난다. '파대가리'라는 이름도 누군가가 그런 비슷한 기분 때문에 그렇게 개무시(?)하는 마음으로 이름 붙이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그렇지 '대가리'라는 이름을 붙이다니.
내 집 잔디밭에 왕성하게 퍼져있는 풀이 이 파대가리라는 풀이다. 게으른 데다 방심하는 사이에 너무 많이 퍼져 일일이 뽑을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렇다고 나름 친환경을 생각한다는 주제에 농약을 확 뿌려댈 수도 없으니 참 진퇴양난이다.
오래전 한 농사꾼이 쓴 '잡초란 없다'라는 책이 화제가 됐었지만 따지고 보면 잡초라고 표현하는 풀 하나하나가 약초라는 것이어서 하찮게 여기지 말아라는 의미일 텐데 현실이 어디 그런가.
찾아보니 파대가리 이 녀석도 감기나 두통 등에 좋다는 약초란다. 그러나 혹 내가 감기가 들었다 치면 약국을 찾아가서 효과 좋다는 무슨 물약 하나 사 마시고 말지 이 녀석을 한 번 달여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해서 나에겐 볼 때마다 속상하고 화가 나는 그저 미운털 박힌 잡초일 뿐이다. 다만 녀석의 체면을 생각해서 잡초라는 용어를 빼고 그냥 풀이라고 예우하는 것일 뿐.
문제는 이 녀석이 내 집 잔디밭에 잠시 기생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되살아나 퍼지고 있는 다년초라는 사실이다. 거기에다 대단한 번식력을 가져서 해가 갈수록 자꾸 옆으로 번지며 세력을 키우고 있다.
지금 결실기라서 서로 경쟁적으로 콩알만 한 크기의 그 '대가리'들을 정신없이 올려대고 있다. 파꽃처럼 둥글게 생겼는데 그래서 파대가리라 한 모양이다. 미적으로는 미운 게 아니지만 그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내게 미운털이 박힌 것이다.
씨가 떨어지면 더욱 퍼질 거 같아 잔디 깎기나 예초기로 사정없이 밀어버리고 있지만 사나흘 지나면 나를 비웃듯 다시 '대가리'를 만들어 올려댄다. 종족 보존을 위한 본능이다.
예초기로 3번을 잘라 냈는데도 다시 둥그런 씨주머니를 만들어 올렸다. 멀리서 보면 잔디처럼 눈속임을 한다.
"허, 이 녀석 봐라"
내가 질 수 없어 다시 기계로 밀어 내 버리면 며칠 후 여지없이 또 그 '대가리'를 만들어 올린다. 녀석 입장에서는 사지가 다 잘려 나간 처지인데도 다만 쌀알만큼의 크기일지라도 기어이 씨주머니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녀석 처지에서는 살아남아 종족을 퍼트리기 위한 가히 필사적인 처절한 몸부림인 것이었다. 한 순간 갑자기 불쌍하게 보여 동정심이 일기도 하지만 잔디밭을 지켜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또다시 녀석의 목을 사정없이 잘라내야 하는 투사가 되어야 한다.
내리 3번 씩이나 같은 행동을 반복해도 이 녀석들은 다시 대가리를 만들어 내기를 거듭하며 끈질기게 저항한다.
그다음엔?
그다음에는 나도 모른다. 생각건대 기온이 뚝뚝 떨어지면서 결국 생식 기능을 잃게 되지 않을까? 파랗던 잔디밭이 일순 누렇게 변하게 되면서 이후 나는 파대가리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된다.
대개 잡초의 이미지를 '끈질긴 생명력'으로 표현한다. 나는 녀석보다 끈질기지 못하다. 그래서 구태어 승패를 가른다면 나는 패자가 된다. 올봄에도 이 녀석은 추운 겨울을 넘기고 기어이 살아남았듯이 내년에도 집 잔디밭 여기저기에 고개를 내밀 것이다. 이 징헌(지겨운?) 놈들.
사실은 잡초밭인데도 잔디를 참 잘 가꾸었다고 가끔 듣기 민망한 오해를 받는다. 그래도 시원해 보여 좋긴 하다고 해야할지..
내 집을 방문하는 이가 좀 거리를 둔 위치에서 푸르는 평지를 보며
"와 -, 잔디밭 잘 가꿔 놓으셨네요!'
하며 감탄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좀 더 가까이 오시라고 이끌면서 응답한다.
"보이시죠? 이건 잔디밭이 아니고 잡초밭입니다!"
내 집 잔디밭엔 봄부터 점나도나물을 시작으로 제비꽃, 개망초. 민들레, 질경이, 세포아, 바랭이, 방동사니들이 줄기차게 자라난다. 개망초와 민들레, 질경이 같은 것은 추려서 제거하기가 비교적 쉬운 편이나 다른 것들은 나만의 일손으로는 절대 불가항력이다. 하니 잔디밥이 아니라 잡초밭이라 지칭함이 정말로 맞다.
어쩔 것인가. 그냥 함께 살아야지.
결국은 게으름의 합리회지만 녀석은 나에게 공존의 삶을 가르쳐 준 것으로 패자부활전 없이 종결.
- 2023. 9.21(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