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원등산을 찾았더니...

소나무 01 2023. 7. 30. 11:41

산행 장소를 탐색하다가 원등산(遠燈山, 713m)을 알게 되다. 완주군 소양면에 있다. 떠나기 전 두 사람 정도의 산행기 정도를 봤었는데 등산로를 개척하며 산행을 했던 것인지 길이 없어 주민들의 희미한 흔적들을 살펴가며 올랐다는...

 

 

어떻든 최소한의 등산로는 있겠지 싶어 일단 초입인 완주 소양면 해월리로 출발. 성요셉병원 뒤로 등산로가 있다 하여 찾았더니 전혀 분위기가 아니다. 어느 한 곳에도 안내 표지판도 흔적도 없다. 아주 오래전 등산로인가 싶어 좁은 길을 한 참 올라갔다가 길이 끊겨있어 난감해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위에 물을 사람도 없어 포기하다. 

"성요셉병원이 여기에 있었구나!"

지난해 내가 다니는 성당에 모금하러 왔던 수녀님 3분이 떠올랐다. 모두 함께 미사를 드리는데 수녀 한 분이 찬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얼마나 간절한 기원인가 싶었다. 의지할 곳이 없는 노인을 위한 요양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어려움이 많다며 신자들의 도움을 청했고 그 호소에 나름 정성을 보탰다. 소외된 곳에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그분들을 보면 늘 존경스럽고 한편으로 자신이 부끄러울 뿐.

진입로의 한 공용표지판에는 성요셉병원이라 표기되어 있었지만 건물에는 "성요셉동산양로원"이라고 붙어있다. 수녀원과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건물 외관과 주변이 참 깨끗하다는 생각 았는데 평화가 늘 이들과 함께 하기를! 

 

 

차를 돌려 나오며 좀 더 아래 쪽 '원등사입구'라는 곳으로. '원등'이란 이름은 근처에서 이 표지판이 전부였다. 이곳으로 가면 사찰도 만날 수 있고 산 정상에도 갈 수 있겠지. 전봇대 뒤로 보이는 산이 원등산. 자료엔 1시간 정도 시멘트 포장길을 걸어야 한다고 했는데... 오늘 폭염 특보라는데 달궈진 시멘트 길의 열기를 생각하니 좀 심난하다.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가야지.

 

 

초입에 닿자 저 앞으로 차량 통행을 통제하는 차단기가 보인다. 사찰 관계자 아니면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는 얘기다. 청결을 위해 애완견 출입도 통제한다는 안내판도 있는데 초행인 나에겐 암튼 조심히 출입하라는 경고판으로 여겨졌다. 청정도량인가 싶다.

 

 

시멘트 포장도로는 다행히 숲 속으로 나있어 나무그늘에 의지할 수 있었다. 산세가 깊어서인지 걷는 왼쪽 편으로 저 아래 계곡의 물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와 시원스럽다. 간간히 작은 폭포들도 보여 열기를 잊게 한다. 

그런데 이런 포장도로를 따라서 1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총림과 유사할 정도의 큰 규모의 사찰이 아니라면 입구의 최소 구간만 포장이 필요했을 것이고 나머지는 그냥 평범한 산길이면 되었을 텐데 깊은 산속 길을 굳이 시멘트로 덮어야 했나 라는 생각 때문이다. 산림청이 관리하는 국유림인데 시멘트 임도는 사찰 측에서 했으며 함께 관리하고 있다는 안내판이 있다.

아마도 재력 있는 어느 불심 깊은 신자가 포장 사업을 시주형태로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볼 따름이다. 

 

 

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쉬엄 쉬엄, 터벅터벅... 그런 표현이 적합할 듯싶다. 대략 2Km 정도의 거리를 1시간 10분 정도를 걸어 올라왔나 보다. 11시가 조금 넘었다.

사찰은 적막감이 들 정도로 조용하다. 다만 개 한 마리가 찾아든 외지인에게 쉼 없이 짖어댄다. 자연 상태의 암벽을 어느 정도 뚫어 조성한 듯한 동굴 형태의 약사암과 담장의 기와 장식이 이채롭다. 

 

 

 

그리고 앞 쪽으로 저 멀리 전주 북편의 아파트 군이 탁 트인채로 시야에 들어온다. 모악산 정상부도 희미하게 보인다. 여기의 불빛이 멀리 비쳤을까? 그래서 원등(遠燈)이란 이름이 붙었단다. 신라 문성왕 때 보조국사가 지었다는데 원래 이름은 청량산(淸涼山) 청량사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의 목적지는 원등산 정상. 사찰 바로 뒤로 정상이 보이는데 등산로가 보이지 않는다. 잘 들여다보면 사람이 다닌 흔적을 발견할 수 있겠다 싶어 두어 차례 유심히 살폈는데도 길이 없다. 한 부속건물 옆으로 희미한 흔적이 보였으나 그나마 나무와 나무사이를 전선으로 연결하여 진입을 차단하고 있다. 그 뒤로는 베어 내서 어지럽게 널려 놓은 산죽들. 어느 정도 눈으로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흔적이 보이면 정상까지의 산행을 시도해 보려 했으나 더 이상은 불가능.

평소 산행인이 없어서인지 아예 산행인을 차단하겠다는 의도 때문인지 알 길이 없다.

"조금만 올라가면 되는데..." 

인적이 전혀없는 사찰을 걸어 내려오며 몇 번이나 뒤돌아 보면서 많이 허탈해했다. 언젠가 다시 원등산 정상을 찾고 싶을 때면 그땐 건너편 위봉산 쪽에서 능선을 타고 와야 될 것이라는. 

 

 

 

                                                            산행 중 처음 대한 '은꿩의 다리' 꽃

 

돌아 내려오는 길, 오래전 봉화 청량사의 주지 스님이 차 한 잔을 권하며 들려줬던 말씀이 맴돌았다.

"미(美)가 뭔지 아십니까? 미는 양(羊)이 크다(大)는 의밉니다. 양은 종교적으로 희생 아닌가요? 희생이 크면 그만큼 아름답다는 것이지요."

 

                                                                                       - 2023. 7.29(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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