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와 뜬봉은 느낌 그대로 우리말이다. 데미는 더미에서 파생됐는데 더미는 봉우리를 뜻하는 전라도 쪽 말이다. 뜬봉의 뜬은 뜨다는 의미이고 곧 봉(봉황)이 떠 올랐다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해 샘(泉)에 붙여진 말인데 데미샘은 섬진강의 시원이 되는 샘이고, 뜬봉은 금강의 시원이 되는 샘 이름이다.
섬진과 금강의 본류는 과거 여러 기회로 찾아가는 일이 잦은 편이었으나 그 발원지를 찾아 본 일은 없었다. 내 사는 곳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으니 이제 언젠가 가 보리라 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다. 사실은 근처에 가는 일이 몇 차례 있었음에도 마음먹고 산행을 해야 했기에 포기했던 곳.
백두대간에서 갈라 진 금남호남정맥의 거의 한 구역에 존재하고 있는 샘이다. 같은 지역인데 차로의 방향이 다르다해서 따로따로 두 번의 산행을 하는 게 부담으로 느껴져 두 곳을 한 날에 오르기로 하다.
데미샘 가는 진안 백운면 쪽은 등산을 하거나 지인을 만나거나 하는 이유로 나름 익숙한 도로다. 좀 서둘러 본다 했음에도 9시간 반 경에 데미 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
입구부터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어 마음이 가벼웠다. 최근의 잦은 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산이 깊어 물이 끊이지 않으리라는 생각. 등산로가 잘 닦여져 있다고 하는 게 맞을까? 이곳의 관광지화를 도모하고 있는 지자체의 계획을 읽을 수 있었다. 최근까지 비교적 험한(?) 곳의 산행을 했던 탓인지 여긴 그냥 산책길 같다는 느낌으로 1.2Km를 40여 분 걸었다.
눈앞으로 쉼터로 보이는 정자가 하나 보였고 그 옆으로 섬진강 발원지라는 입석.
샘이니 물이 솟아 올라와야 할 텐데 역시 비 때문인지 샘에 담겨있는 물 말고도 그 위쪽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보인다. 마치 시원지가 여기가 아니라 상류가 위쪽으로 더 있다는 듯.
샘에 오면 당연히 물을 떠 받아 마시고 싶은 것. 그런데 옆 안내표지판에는 "물은 마실 수 있으나 그것은 알아서 판다 하라"는 듯한 애매한 문구. 하도 흉흉한 세상이니 위생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조심하라는 경구로 보였다. 이런 식이라면 조만간 도처의 샘터에서 표주박이 사라질 판 아닌지.
손바닥으로 한 줌 퍼 올려 갈증을 달래다.
여기에서 700여 m를 더 걸어 오르면 "천상데미"라 이름 붙여진 산 정상(1,080m)이지만 다음 행선지를 위해 8부 능선쯤인 여기에서 돌아서기로 하다. 다시 뜬봉샘을 가야하니 마음이 급하다.
장수읍에서 수분마을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저 멀리로 뜬봉샘이 있는 신무산이 보인다.
수분마을 전경. 마을 옆 고갯길에 비가 내려 북쪽으로 흐르는 것은 금강이 되고 남쪽으로 흐르면 섬진강이 된다 해서 그리 이름 붙여졌다.
하지만 데미샘이 발견되면서 부터(1986년)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고 수분공소에서 만난 김 안드레아 형제 분이 일러준다. 천주교 수분공소는 1920년대의 한옥 건축물로 국가등록문화재다.
장수읍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 저 멀리 신무산(896.8m)이 차창 밖으로 들어온다. 그 아래에 금강의 발원지가 되는 뜬봉샘이 있다.
초입인 수분리(水分里)에는 뜬봉샘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생태공원에서부터 1.3Km를 걸어 오르는 뜬봉샘 입구까지는 거의 데크길이었다. 몇 가지 조각이나 물레방아, 연못, 자생동식물 해설판 같은 것들이 군데 군데 설치되어 있었지만 글쎄 내 눈으로는 유치원 원아들의 생태학습을 위한 것으로만 보여 아쉽다. 주로 계단길로 이어지는 데크길은 그 아래와 옆이 작은 계곡이어서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오를 수 있어 좋았으나 인공의 틀에서만 움직이게 만든 것 같아 아무래도 답답하다.
이제는 저 위 바로 앞에서 끝나겠지, 그리고 이후부턴 자연 그대로의 흙과 돌을 밟으며 산행을 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로 걸어 올랐으나 계속 이어지는 계단길. 좀 더 자연적인 모습으로 꾸며질 수는 없었을까.
갑자기 넓은 길이 나타난다. 뜬봉샘 초입까지 관리도로가 나 있는 것을 보고 이건 산행이 아니라 산책이구나 싶었다.
뜬봉샘 역시 마시지 않는 게 좋겠다는 표지판이 있었다. 개구리나 도롱뇽 같은 수생, 습지동물이 살기 때문이란다. 물은 맑았으나 이번에는 떠 마시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다. 샘 옆으로 또 하나의 조각품 등 여러 자연 부조화적인 모습에서 어떤 신비로움을 찾을 수 없다. 샘은 생명의 원천이랄 수도 있는데... 거의 계단길 만을 주시하며 쉬엄쉬엄 올라와서 인지 갈증도 없었다. 이곳에서 시작된 물이 긴 물줄기를 이루며 주변 들녘과 도시들을 풍요롭게 한다는 그런 정도의 느낌을 살려줄 수는 없을까.
뜬봉샘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산 정상에 오르기로. 500여 m 만 오르면 되니 부담이 덜하다. 그런데 마음 가벼운 것과는 달리 경사가 제법 심했다. 한 손으로 밧줄에 의지하며 조심스럽게 한걸음 한걸음.
신무산 정상. 북쪽으로는 나무에 가려 시야가 막혔고 남쪽 일부로만 저 멀리 산들의 능선이 보인다. 신이 춤을 추는 듯하다 하여 붙인 신무(神舞) 산인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런 형상일까? 이성계가 이 산에서 100일 기도를 드리는데 끔 속에서 용이 떠오른 모습을 봤고, 그곳을 찾아보니 꿈속의 용이 뜬 자리가 지금 저 아래의 뜬봉샘이었다는 것. 그렇다면 여기가 길지?
어디 보자. 기를 한 번 받아 보자. 하지만 속인의 눈으로 들여다 보고 있는데 춤추는 듯한 그런 비슷한 형체가 보일리 있겠는가. 오르면서 다만 짧은 공간을 오가며 팔딱거리는 어치 한 마리 봤을 뿐이다.
이성계가 백일기도 끝에 나라를 세워 왕이 되었다는 전설이 여기 뿐 만 아니라 곳곳에 남아 있으니 그냥 그러리라 여기면서 어떻든 의미 있는 산에서 잠시 머무르고 가는 작은 기쁨 하나 안고 하산하다.
뜬봉샘에서 신무산 정상으로 오르면서 처음 대한 뻐국나리 꽃. 꽃 수술이 올라 와 특이하고 뻐꾸기 가슴털이 이런 점박이여서 이름했다는데 이름처럼 예쁘다.
- 2023. 9. 2(토)
* 조금 무리한 일정 계획이 아닌가 싶었지만 근접한 곳에 있으니 둘러보리라 생각하여 장수 삼봉리 고분군을 찾다. 내비게이션으로 해결할 수가 없어 백화산 자락 한 집에 불쑥 찾아들어 위치를 물었더니 참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장수 땅에서 새롭게 발굴된 수많은 고분 유적 가운데 한 곳, 삼국시대 존재한 반파가야를 비롯한 고려시대까지의 여러 유물이 이곳에서 나왔다. 시간이 아쉽다. 좀 더 자세한 모습들은 후일 돌아보리라 생각하며 늦은 오후에 떠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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