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운장산 동봉

소나무 01 2023. 8. 6. 17:08

오래전 운장산 서봉에 올라 동봉 쪽으로 산행을 계속하려 했으나 심한 안개비로 인해 시야확보가 되지 않아 포기했던 일이 있다. 비슷한 높이지만 정상이 동봉이라서 더 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산을 이제야 오늘 다시 오르기로.

 

 

그 땐 최 단코스라서 피암목재(운장산휴게소)에서 출발했지만 이번에는 내처사동이란 곳에서 동봉을 오르기로. 진안군 주천면은 산이 많고 계곡이 많아 여름 피서철에 사람들이 참 많이도 찾는 곳이다. 바위와 숲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주자천을 따라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도로 양쪽으로 즐비하게 주차한 수많은 차량과 피서객들을 보다. 계곡을 군데군데 인위적으로 막아 작은 풀장을 만들었고 그곳에 몸을 담그며 더위를 식힌다. 그런데 저게 과연 계곡의 맑은 물일까 싶다. 

반면에 땀을 많이 흘려야 하는 산행하는 사람은 없으려니 생각하고 도착한 내처사동. 출발지의 넓은 주차장엔 딱 두 대의 차가 있을 뿐이었다. 휴일인데... 이건 예상보다 더 했다.

10시. 집에서 1시간 15분 정도 걸려 왔다.

멀리 높은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해오는 것 같다. 운장산 줄기일 뿐 저곳이 지금 오르고자 하는 동봉이 아닌 듯.

 

 

초입에 이르렀으나 조금 헷갈린다. 이곳이 등산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무성한 풀들로 덮였다. 평소 이 코스의 산행인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생각해 보니 사람들은 서봉 쪽의 산 허리에 만들어 놓은 운장산 휴게소 쪽에서 산행을 하는 모양이었다. 

 

 

풀숲을 2백 m쯤 헤치고 걸어서야 작은 계곡을 가르는 다리가 나오고 그곳을 지나서야 비로소 길이 보인다.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다행이다. 여기에서 2.5Km를 걸어 올라야 한다. 올라야 하니 산은 당연히 경사가 졌고 조금은 가파르다 싶었지만 언제나처럼  그저 쉬엄쉬엄 올라 가는 것으로.

500m쯤을 올랐을 때 멀리 뒤 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인기척이 그리웠는데 그래서 반갑다. 젊은 남녀 두 사람은 전문산악인 듯 곧바로 나를 따라잡았고 또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 20대의 저 젊은 체력이 참 부럽구나. 오직 혼자만의 산행일 줄 알았는데 어떻든 같은 산행인을 만날 수 있어서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1시간 정도를 묵묵히 올라와서야 비로소 오른쪽으로 시야가 터진다. 저 멀리 대둔산이 보이고 달포 전에 올랐던 천등산도 보인다. 올라오기까지 길 양쪽으로는 줄곧 산죽 행렬이었다. 가끔 병풍 같은 바위들이 있었지만 주로 산죽만 보고 걸어야 했다. 

가파른 계단도 있었고 때론 밧줄을 이용해야 했지만 험난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기가 운장산 정상. 1,133m다.  구름이 길게 가리는 때가 많아 운장(雲長)이란 이름이 붙었나 보다. 그만큼 높다는 의미도 있을 테고. 

정상부는 몹시 좁아 표지석 하나만 겨우 세워져 있을 정도. 남서쪽 방향 한편으로만 시야가 터져 저 아래로 능선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오른편으로 운장산의 또 다른 봉인 운장대(중봉)가 바로 앞으로 다가와 있다. 여기서 600m 정도의 15분 거리다.

오늘 목적지는 여기 동봉(삼장봉)이었으므로 굳이 더 가야 할까 싶었다. 현재 시간이 12시 20분인 데다 이젠 무리할 정도로 욕심껏 산행을 해서는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초입부터 2시간 넘게 꾸역꾸역 쉬지 않고 걸어 올라왔으면 됐다 싶었다.

 

 

운장산 동봉에서 바라 본 중봉(운장대, 왼편)과 서봉(칠성대, 오른편)

 

 

그런데 바로 앞인 데다 데크가 설치되어 있는 전망시설이 육안으로 보여 다시 걷기로. 중봉은 동봉보다 약간 낮아도 정상부가 넓은 데다 사방으로 시야가 터져 실질적으로 운장산의 정상 역할을 한다 하니 다시 욕심을 낸다. 올라오면서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을 했었지만 살면서 어떤 면으로든 욕심을 좀 줄여보자 마음 고쳐 잡았음에도 역시나 결국은 넋두리 같은 혼잣말이 되어 그래도 저기 운장대까지는 가야지 하면서 걷고있다. 산이 부르니 또 간다는 흔한 말에 종속되어 있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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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폭이 넓게 설계된 매우 긴(?) 나무 계단을 올라 중봉에 도착하다. 1,126m라는 표지석이 왠지 초라해 보이는 것은 그 위쪽으로 전망시설을 설치한 까닭이다. 

역시 생각대로 시야가 확 터졌다. 저 멀리 아스라이 지리산 천왕봉과 노고단등이 보인다. 하지만 요즘의 습한 날씨 때문인지 그저 윤곽 정도만 식별할 수 있을 뿐, 그래도 시원하고 아름답다. 겹겹이 연달아 흐르는 산의 능선들이 굳이 최순우가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서서 바라 본 소백산맥 산줄기가  아니더라도 가슴이 사무친다.

저 노고단은 이달 하순에 친구들과 찾아 가기로 해서 몇 번인가를 더 눈길을 주며 살펴본다. 

서봉 쪽에서 먼저 올라와 있던 젊은 연인이 자리를 뜨려 하던 참에 인증숏을 부탁. 건네 받은 젊은이 역시 가로 찍고 세로 찍고 하며 좋은 인심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오붓한 분위기를 해치는 것 같아 감사하다는 인사 외에는 아무런 말도 건네지 못하다. 말씨로 보아 남도에서 온 듯.

 

                                                 운장산에서 만난 기린초, 짚신나물, 노루오줌(위로 부터)

 

운장대에서 본 서봉(1,120m)

 

 

뒤 편으로 저기 서봉이 보인다. 저기도 불과 20여 분이면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옛날(?) 안개비 때문에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했던 미완의 숙제를 이제야 해소하다.

눈으로, 마음으로 사방의 산들을 한참 동안 살펴보다. 아마도 앞으로는 더 이상 여기에 올라서 있을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 사실 다시 산행을 시작한 계기도 날로 퇴화해 가는 근력, 폐활량... 그런 것들을 조금이나마 완화시켜 보자는 것 아니었는가. 그리고 아직도 몸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교만과 욕심을 청정한 숲 속에서 줄여가 보자고.

하여 가끔씩 인각사에 있는 일연스님의 열반송이 가슴깊이 꽂힐 때가 있다. '즐겁던 한 시절...'로 시작해서 '인간사 꿈결인 줄 내 이제 알았노라'라고 끝맺은 그 4 구절이. 

 

 

                                                                                             - 2023. 8. 5(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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