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행사처럼 계속되는 일이라서 특별할 것도 없다. 다만 해마다 재배 면적이 줄어든다는 것. 그런데 그 규모를 줄인다는 것이 나이 듦과 상관관계인 것 같아 자못 씁쓸하다. 한 때는 전화 주고받기에 정신이 없었고 만나는 일도 시간을 쪼개야 했지만 이젠 필요에 의해 내가 나서지 않으면 접촉의 기회가 거의 없어졌다. 시골에 외따로 살고 있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큰 이유라고 생각되지만 그래서 내가 가꿔서 주고 싶은 사람이 비례적으로 줄어들고 있는지도.
또 하나는 체력 감퇴에서 오는 노동력의 한계, 이를테면 쇠스랑 같은 농기구로 땅을 파고 고르는 일이 예전과 같을 수가 없다.
대개는 나눠먹는다는 것으로 텃밭농사를 미학적으로 포장하는 경우를 많이 접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남에게 주려면 가능한 대로 좋은 것으로만 선별해서 줘야 하는데 적은 양이고 보니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그저 찾아오는 이 있으면 그냥 정으로 주는 것 정도지만 그마저도 못생기고 부실해서 사실 건네기가 부끄럽다.
상추 모종을 열 개 정도 사다 심었다. 천 원. 면 소재지의 모종 가게에 가서 그만큼만 달라고 얘기하기가 좀 쑥스러웠지만 나처럼 요구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모양인지 그만큼씩만 떼어놓은 것이 몇 개 있어 다행이었다.
예전에는 씨앗을 뿌려 가꾸는 것이 맞지 누가 상추 모종을 사다 심는가 싶었는데 이젠 그 생각이 바뀌었다. 씨앗을 뿌리자면 아무래도 재배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나중에 버려지는 게 너무 많았다. 허실 없이 식탁에 끊이지 않고 조달이 되도록 시간차를 두고 조금씩 모종을 심어 가꾸는 게 훨씬 현명한 방법임을 체득하게 된 것.
배추와 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주된 소비 채소이기에 양이 좀 많아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수확 해서 김장을 하고 나면 다음 김장을 할 때까지 충분히 먹고도 많이 남았다. 그래서 그때마다 버리는 게 아까워 '묵은지 닭볶음탕'같은 식당 메뉴를 생각하며 그렇게 해 먹으면 좋을 텐데 하면서도 제철에 즐길 수 있는 다른 채소 종류의 먹거리들이 생겨나는 바람에 외면하게 된다.
배추는 연작을 피해 두 군데에 조금 씩 나눠 심었는데 한 쪽은 그런대로 잘 자라고 있지만 다른 한 쪽은 벌레 피해를 많이 입은 편이다.
그래서 올핸 배추 딱 10 포기만 심자는 아내의 말에 '참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추켜 세웠지만 그래도 좀 여유가 있어야 될 것이라는 스스로의 판단과 병충해 피해를 생각해서 1줄에 6개가 심어져 있는 것으로 모종 3줄을 샀다. 모두 24개에 이것은 2천 원.
주변에서 토양살충제를 권했지만 그냥 심었다. 그런데 밑동을 싹둑 잘라버리는 벌레 때문에 이미 5개를 잃었고 정도가 덜한 3개 정도가 위태 위태했다. 올해는 정도가 더 심한 편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어제 8개를 추가 구입해 보식했는데 오늘 아침 확인해 보니 1개가 또 잘려 나갔다.
"네 이놈들을 그냥 -"
기분이 몹시 상했지만 어쩔 것인가. 신고식을 치렀으니 이제 더 이상의 피해는 없겠지 하며 애써 속상함을 달랜다.
무는 지난해 같은 장소에 3번을 파종했었다. 폭우로 씨앗이 쓸려 내려간 데다가 발아한 것 마저 상당수를 벌레들이 싹둑싹둑 잘라 버려 많이 속상해했었다.
올해는?
구입했던 씨앗의 양이 많아 냉장고에 3년간 보관했던 것을 꺼내 심었다. 발아가 잘 되려는지 걱정스러웠지만 천년 된 연 씨도 발아되었다지 않은가. 하지만 발아가 되드라도 방아깨비와 메뚜기가 많아 걱정스러웠다. 결국은 파종 후 한냉사를 씌우기로. 16년 전 맨땅에 채소 파종하며 처음 사용해 보았던 그물망을 다시 꺼내 씌운 것이다.
다행히 발아가 모두 잘 되었고 그 후 일주일 정도가 지났지만 건강히 자라주고 있다.
무는 30개 정도만 잘 키워 보기로.
나머지는 그야말로 손바닥만큼의 밭에 조금씩 심었다. 아욱, 갓, 쑥갓, 청겨자 그리고 얼갈이배추... 이것들도 모두 묵은 씨앗들이었고 쪽파는 봄에 캐어 보관해 둔 것을 다시 심었는데 모두 잘 발아하여 자라고 있다. 이 달 하순 경에 월동용 시금치 씨앗과 마늘을 심는 것으로 가을 파종을 마무리할 작정이다.
오늘은 얼마큼 자랐을까? 하며 매일 들여다보는 것으로 좋은 계절 가을을 맞고 있다. 솎아 주고 벌레도 잡아 주고 거름도 주면서 잘 가꿔볼 생각이다. 그게 이 산자락에 사는 기쁨이고 즐거움이려니.
- 2023. 9. 6(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