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 잎과 연잎은 어린 닐의 추억을 불러온다. 넓은 잎에 물을 부으면 또르르- 굴러 예쁜 물방울이 되어 가운데로 모였다. 잎 양 끝을 두 손으로 잡아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고... 그리고 비가 내리지 않는데도 그냥 줄기를 꺾어서 우산처럼 쓰고 다니기도 하면서.
그 어린 날의 추억엔 토란이 습지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질토인 내 땅에서 재배할 생각은 아예 하질 않았었고.
그러던 어느 날 아랫집에서 토란을 좀 심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내 집에는 습지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랬더니 아니란다.
그런 인연으로 내 집 텃밭식구가 되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 해째 심고 가꿨다. 다행히 내 텃밭에서 잘 자라 주었고.
이제 수확기, 밑거름을 했더니 그 수고만큼 줄기와 잎이 커져 구근이 좀 달렸을 것이라는 기대로 삽을 넣어 봤다. 털어 보니 그런대로 구근이 맺혀있어 나름 보람이 있고. 그래 이 만큼이면 되었다.
줄기는 진즉 베어 사나흘 볕에 말렸다가 껍질을 벗겨 알맞은 크기로 잘라 다시 볕에 건조하고 있는 중이다. 이미 지난해의 시험 재배에서 껍질을 벗기는 방법을 익혔다(토란 줄기의 물기가 피부에 닿으면 가려움 증이 생겨 장갑을 끼고 해야 하는데 베어 낸 후 어느 정도 볕에 잘 말려야 쉽게 벗겨진다).
오래전 김해의 한 음식점에서 육개장을 먹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의 토란대 맛을 기억하고 있다. 구근은 못 먹더라도 토란대만큼은 맛있게 해서 먹어야겠다는 생각. 제법 많은 양이었는데 건조 과정에서 많이 줄어들어 좀 서운하기도.
줄기만 베어 내고 그동안 밭에 묵혀두었던 것을 오늘 세 뿌리만 캐 봤다. 토란국이라도 맛보고 싶어서. 작은 알의 껍질을 하나하나 깎아야 하기에 좀 번거롭고 귀찮기도 한 작업이지만 그 맛을 생각하면 그런 수고로움은 별 게 아니다.
알은 깎아 하루쯤 물에 담가 아린 기운을 빼내는 법도 익혀 뒀다.
이 모든 과장을 내가 끝내 놓고 이후 요리 과정은 아내에게 맡길 생각.
밭에 남겨진 것은 캐내어 보관하는 게 마땅치 않아 그냥 그대로 한 달쯤 두려 했는데 살펴보니 구근에 잔뿌리가 많이 생겼다. 며칠 후 마저 캐서 창고에 보관할 생각. 저온 저장고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건 내 처지엔 호사스럽다. 이것저것 수확해 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 양이라서.
- 2023.10.19(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