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차마 뽑아낼 수 없는 풀

소나무 01 2023. 11. 4. 12:16

농사짓는 이나 전원주택에 사는 이나 제초작업 때문에 올해도 수고가 많았으리라. 내 경우도 마찬가지. 잔디밭도 그렇지만 텃밭이나 꽃밭에 자라는 풀들을 수시로 제거해야 번거로움이 계속되었다. 

바랭이, 방동사니, 세포아, 점나도나물, 질경이, 민들레, 여뀌, 소리쟁이, 환삼덩굴, 도깨비바늘, 돼지풀, 자리공... 수도 없이 많다.

그 가운데 까마중이 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다른 풀들과 달리 좀 예외성을 가진다.

 

 

집 마당 아무 곳에서나 자라는 번식력 좋은 풀이지만 뒤란 언덕에 심어놓은 메리골드 틈바구나에서도 자라고 있다. 어린잎이나 줄기 등의 풀 형태를 보고 진즉 까마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체하며 그냥 내버려 두었다. 순전히 어릴 때의 추억 그 때문이다.

 

 

 

내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곳 중의 한 곳은 여수. 바다가 보이는 집 주변에는 이 까마중이 많았다.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이 새까맣게 익은 열매를 따먹으며 놀았다. 그렇게 허기가 진 것은 아니었지만 마땅한 간식거리가 없었던 그 시절 이 열매는 달고 맛있는 참 좋은 군것질거리였다.

먹고 나면 입안과 손가락이 보라색으로 짙게 물들었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땡갈" 따 먹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불렸던 이름이 맞는지 기억이 사라져 버렸지만 지금의 표준말 이름이 까마중이다.

 

 

그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몇 해 전 한 번, 그것도 딱 한 개 따 먹어 본 일이 있지만 지금의 입맛 때문에 그것으로 멈추게 했다. 그래서 그냥 쳐다보는 것으로만 만족하면서 해마다 우리 울 안에서 함께 지내게 될 수 있음에 고마워하기도 한다.

이 까마중의 열매가 까맣게 익어갈 때면 볼 때마다 함께 놀던 옆 집 영찬이와 함께 노란 바나나를 떠올리게 된다.

내 실수로 형들의 운동 기구였던 역기 돌(역기 봉에 끼워 연습하던 시멘트덩어리)을 영찬이의 발목에 떨어트려 병원 신세를 지게 만들었고 내 엄마는 내 집 막둥이가 그렇게 했다는 죄의식 때문에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병문안을 가야만 했다.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본 일이 없는 그 귀하디 귀한 바나나를 사들고 말이다. 그렇게 먹고 싶어 하던 바나나였는데.

그 시절 가장 큰 소망이 그 바나나를 먹어보는 것과 하늘에 오가는 비행기를 한 번 타보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들 때문에 이 까마중을 다른 잡초처럼 차마 뽑아낼 수가 없다. 꽃말도 동심이란다.

그 영찬이는 지금 어느 하늘아래 살고 있는지 그 시절 친구의 얼굴이 까마중 꽃에 투영되면서 오늘 유난히도 그 얼굴이 보고 싶다. 

 

                                                                                                        - 2023.11.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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