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송풍기 샀대요

소나무 01 2023. 12. 5. 09:50

택배 차량이 배송 때문에 내 집에 오면 대부분 집 마당까지 들어온다. 그런데 혹시 모르니 지금 대문 앞에 나가 보라는 아내의 말. 아들이 송풍기를 주문했다는 것. 김장 때문에 도와준다고 제 엄마랑 찾아온 아들 녀석이 내가 낙엽 쓰는 것을 보고는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왠 또 쓸데없는 것을 샀다는 거야. 마당 쓸 일이 얼마나 된다고- "

"그러게요"

아내는 아들 녀석의 속 깊은 마음을 대견해하는 눈치다. 녀석이 빗자루를 들고 한 번 쓸어 보니 잔디 같은 풀 때문에 그러는지 잘 인쓸어지더란다. 아버지의 노동력을 덜어주려는 고마운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지 송풍기까지 써야 하는가 싶었다.

 

박스 포장으로 도착한 송풍기를 무심한 듯 그냥 쳐다만 봤더니 녀석이 제 엄마 일 도와주는 것을 마치고 직접 뜯어서 시험 가동을 해본다.

모른 체 집 안 창밖으로 살짝 쳐다보고 있으니 길거리에서 봤던 것처럼 왜앵-하는 큰 바람소리를 내며 낙엽들을 일순간에 한쪽으로 날린다. 아주 깨끗하게.

(그것 참 좋긴 좋네. 그렇지만 나뭇잎이 여기저기 좀 남아 있어야 운치가 있는 것 아닌가?)

 

 

녀석이 떠나간 후 이번에는 내가 송풍기를 들어 대문 앞으로 나섰다. 집 앞으로는 매일 낙엽이 쌓였다. 하지만 매일 빗질을 하는 게 귀찮아 그대로 두고 있었다. 늦가을의 서정적인 모습인 것처럼 포장하며 게으름을 감추고 있었지만 지나가는 이웃이나 방문객이 봤다면 참 게으른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그랬을 것이다.

순식간에 치워졌다. 마음속의 먼지까지 날려버리는 것처럼 아주 시원하게.

(녀석, 참 괜찮은 선물 해주고 갔네-)

 

 

기존 사용하고 있는 예초기와 톱과 함께 서로 호환이 되는 같은 충전용 리튬배터리를 사용하는 제품이라서 부담이 덜한 이점이 있다. 참 편해진 세상.

그래도 적당한 노동이 있는 게 좋겠고 또한 스르륵 스르륵 빗질하는 소리라도 들어야 시골 사는 재미일 것 같아  대나무 빗자루 하나 다시 만들어 같이 쓸 셈이다. 그동안 사용했던 것이 낡아 진즉 대나무 잔가지를 모아 두고 있었다.

 

                                                            - 2023.12.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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