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도에 갔다 오다. 인천 연안 부두에서 배로 1시간 50분. 원래 계획했던 곳은 덕적에서 1시간 여를 더 가야 하는 굴업도였으나 기상 여건 때문에 불발. 간밤에 내렸던 비가 그치고 쾌청한 날씨였으나 풍속이 제법 심했다. 1,800여 명이 사는 덕적까지는 대형 여객선이 다녀 문제가 없었으나 덕적도에서 좀 더 먼바다로 나가야 하는 굴업도에는 5 가구뿐인데 여기로 운항되던 소형 여객선이 결항된 것.
덕적에서 굴업까지 배편이 뜨지 못한다는 것을 선박회사로부터 아침 일찍 문자를 받고 '대략 난감'이었으나 이왕 준비한 섬 여행이었으니 덕적도로 만족하자고 의견을 모으다. 덕적도를 돌아보려면 차량을 이용하는 게 바람직한 것 같아 강화에서 온 친구의 차를 부랴부랴 카페리에 선적.
예정대로 라면 8:30 출발 쾌속선이었고 1시간 10분 소요였으나 차도선은 9:10에 1시간 50분 소요였다.
배는 인천대교 밑을 통과하여 일로 덕적도로.
자월도라는 큰 섬을 곁으로 지나니 저 앞으로 덕적도가 보인다. 약간의 파도가 일고 있을 뿐 참 좋은 날씨라는 생각이어서 덕적도에서 굴업도까지 11:20 배가 예정대로 출항할 수 있기를 기대했으나 역시나 결항. 안전사고의 우려 때문일 것이다. 먼바다 쪽의 해상 날씨는 예측이 어렵고 과거 대형 해상 사고가 있었으니.
몇 척의 선박들이 정박해 있고 그 뒤로 연도교가 보인다. 덕적도와 소야도를 잇는 다리다. 인천에서 떠나온 배는 왼쪽으로 보이는 소야도에 먼저 입항하고 다시 오른쪽의 덕적도로 배를 댔다는데 연도교가 생기면서부터 덕적도 진리 선착장으로 직항한다고.
들어서는 진리 선착장 주변이 의외로 한적하고 차분한 분위기. 평일이라서 여행객이 적은 탓도 있겠지만 선착장 주변으로 상가나 주택이 밀집되어 있지 않아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것 같았다. 공용버스와 택시가 있었으나 자유스러움을 원했기에 차를 갖고 오기 잘했다는 생각.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으로 이 섬을 찾았기에 안내판 앞에서 한참을 머무르다. 뭔가 좀 색다르게 어필하는 곳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일단 다리를 건너 소야도로 가기로. 장군상이라는 기암괴석과 썰물 때 길이 열리는 소위 신비의 바닷길이 있다는 것에 1순위 탐방코스가 된 셈이다.
저 앞으로 사람 형상을 한 바위가 장군바위다. 과거 소정방이 신라군과 연합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다 이 섬에 잠시 머물러 전열을 재정비했다는데 그 때문인가? 소야도(蘇爺島)라는 이름도 소정벙과 관련이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보는 이에 따라 수행 길의 한 선사 모습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 같다.
소야도 주변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떠 있어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 내는데 가까이 있는 썰물때면 갓섬과 간뎃섬, 송곳여, 물푸레섬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이 열려 안내서에는 '모세의 기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조금 신기하게 여겨지는 자연현상으로 표현함이 맞을 것 같다.
나에게 재미있게 다가온 것은 오히려 이곳의 지명들. 위의 간뎃섬은 '가운데에 있는 섬'이 변화하여 그렇게 불렸을 것이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은데, 안내도를 들여다보면 이외에도 쑥개, 이개, 벗개, 으름실, 밧지름, 때뿌루 등의 진귀한(?) 우리말 지명이 등장한다. 면과 군의 관련 부서에 전화 문의해 보았으나 예상대로 공허한 답을 얻었을 뿐. 검색해 보니 이 고장 향토사학자의 문헌에 '개'는 지금의 만(灣)을 말하는 것이고 때뿌루는 보리수가 변화한 말이라 나오는데 자세한 유래가 궁금하다. AI 검색을 통해 좀 더 자세한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시원스러운 답을 찾지 못했다. 덕적의 입도에는 이미 고려시대부터의 기록이 등장하니 그때 사람들의 언어와 생활이 궁금하다. 나만 그런가? 섬의 안내판에 그런 설명도 함께였다면 좋으련만.
마침 썰물 때여서 드러난 길을 따라 섬과 섬을 걸어서 이동해 본다. 주변은 온통 굴밭이고 버려진 굴껍데기로 길이 새하얗다. 재미 삼아 바위에 붙은 굴을 한 번 까먹어 본다.
"오잉? 이렇게 맛있다니 - "
더 이상의 양념 추가가 필요 없는 아주 간이 잘 맞춰진 굴맛이다. 그야말로 자연산 굴맛. 그러고 보니 그동안의 내 입은 남해안 지방에서 대량으로 양식되는 그 알이 큰 양식굴의 맛에 길들여져 있었다. 친구들도 감탄한다. 모두 주민들의 소득원일 테니 그저 몇 개만 재미로 더.
낚시꾼 두 사람을 만났을 뿐 사방이 조용한 그야말로 천혜의 해안 같았다. 인근에 이곳에서 수확한 굴로 요리한 음식점이 있을 법도 한데 주위는 다만 한적할 뿐.
계획 상으로는 내일까지 섬에 머무르리라 생각했지만 여기 말고는 특별히 유혹하는 바가 없다는 판단으로 오후 3:30 배로 되돌아가기로 급선회하다. 다만 한 군데만 더. 저 북쪽 끝의 능동자갈마당'만 둘러보기로.
덕적도 능동자갈마당 해변의 낙타 형상 바위(낙타암)를 배경으로.함께 한 인생 동반의 친구들과.
지난해 우리 셋이서 홍도에서 봤던 몽돌 해변과 풍광이 비슷했다. 저 앞바다를 왼쪽으로 돌아가면 굴업도에 닿을 텐데 많이 아쉽다. 한때 핵 폐기물 처리 예정지로 떠들썩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백패킹의 명소로 알려졌을 정도로 많은 이가 선호하는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섬이라는데...
언제 다시 찾아 올 기회가 있을는지 기약이 없지만 오늘 한 나절 덕적도를 일별 하는 것으로 우리의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아쉽다는 말이 또 나온다.
- 2024. 5.2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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