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자귀나무의 수난

소나무 01 2024. 7. 9. 15:38

장맛비에 자귀나무가 쓰러졌다. 

비 잠시 그쳐 아침 일찍 마당을 거닐고 있는데 자귀나무 잎이 유난히 가까이 보였다. 밤새 접혀있던 잎이 아직 그대로여서 합환수(合歡樹)라는 그 의미를 떠올려 보며 반가워했다.

 

 

그런데 무심코 계단을 따라 언덕을 오르는데 이 자귀나무 가지가 앞을  턱 가로막고 있지 않는가.

아이쿠! 

가지가 부러져 내린 것이다. 가지 하나가 아니었다. 살펴보니 나무 전체가 쓰러졌다. 나무 본체의 중간 부분이 참혹하게 꺾여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그동안 빗물을 흠뻑 먹어 줄기와 잎이 무거워진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본체 중앙에 커다랗게 뚫렸던 새집 때문에 약해진 그 부분이 꺾여 나간 것이다.

몇천 전 딱따구리가 찾아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둥지를 만들어 살다가 새끼를 길러 떠난 바 있는데 분명 그때 파인 구멍 때문에 결단이 난 것이다. 그 구멍 주변의 껍질이 조금씩 파여 나가더니만 구멍이 점차 커졌고 밑둥 부분도 병세가 있는 듯  허약해지더니만 결국 이번 비바람에 부러져 버린 것. 

나무 가운데가 휑하니 비었는데도 몇 해 동안 변함없이 움 트고 꽃 피어 대견스러워했는데 이제 더 이상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으니 속이 많이 상한다.

 

 

                                              4년 전의 둥지 모습.

 

부리로 쪼아 구멍을 만들 정도면 아무래도 자귀나무의 목질이 약한 모양. 지난해에도 또 딱따구리가 찾아와 둥지를 만들려고 했으나 그땐 일찍 발견하여 대처할 수 있었다.  나무 쪼는 소리가 크게 들려  다가 가 보니 매우 빠른 속도로 구멍을 내고 있었다. 참 대단한 부리. 녀석들도 이제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듯 손뼉을 치며 쫓아 봐도 그저 모르는 채.

아니 여기 주인이 난데 무시하다니. 괘씸한 놈!

무허가 단속반처럼 막대기 하나 들고 밑동까지 쳐들어 가서야 미지 못한 듯 내빼는 것이었다.

자리를 뜨면 어느새 다시 찾아와 둥지 작업을 계속했지만 거듭 된 나의 나무 지키기에 결국은 녀석이 포기했었다. 그렇게 지킨 나무인데 쓰러지다니.

애초에 이 집을 짓고자 터를 잡을 때 언덕에 이 자귀나무가 있어 기꺼이 집터로 선택했었건만 그런 나보다 먼저 생명을 다하게 되다니. 오호애재라.

 

 

수난의 자귀나무 옆 또다른 자귀나무에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꽃이 이제 거의 다 져 이 또한 아쉽기만.

 

그러나 다행인 것은 번식력이 좋아 주위에 자식 나무를 몇 그루 남겨 놓았다는 것. 성장세가 좋아 그 옆의 한 그루는 이미 제 어미만큼 성장했고 다른 쪽의 나무들도 제법 자라 여기저기 꽃을 보였다. 퍼진 개체 수가 많아 일부는 제거했을 정도였다. 

 

휴재전화의 일기예보를 보니 창에 띠워져 있는 앞으로의 일주일이 온통 비다. 그것 참.

시골생활에  비는 어쩌면 불청객이다. 바깥일을 못하고 방에 갇혀 지내야 하니 아무래도 답답하고 울적하다. 그러하니 이제 비가 그만 내리고 장마가 끝나기를,

그리고 다 이상은 피해가 없기를. 

 

                                                                         - 2024. 7.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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