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해먹 설치

소나무 01 2024. 6. 28. 11:50

마당에 해먹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그 생각을 오래 하진 않았다. 집 앞마당에 그럴만한 나무도 없었고, 뒤 언덕 소나무 사이에 설치해 볼까 했었지만 약간 음습한 느낌이고 또 모기와 같은 벌레들 때문에 도무지 마땅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잊고 지냈는데, 얼마 전 어느 민박집 마당에 있던 해먹에 누워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시골에 터 잡고 내려와 산지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집마당의 나무들도 튼튼히 자라 주었으니 이제는 마당에 해먹을 매달아 보고 싶어진 것이다.

(- 아니 그런데 벌써 '20여 년'이라고?)

어쩔 것인가 세월은 그저 막힘없이 앞으로 앞으로만 가니.

  

 

검색해 보니 마음에 드는 게 나타났다. 모기장이 붙어있는 해먹이었다. 진보한 해먹이다. 값도 생각 밖에 쌌다. 택배비까지 합해도 3만 원대 초반. 없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도착한 것은 타올 한 두 개 정도가 들어갈 정도의 가벼운 비닐 주머니. 이렇게 존재감 없을까 하며 쉽게 망가지는 조악한 제품 일 것이라는 선입견. 그런데 막상 설치해 보니 그런대로 폼이 난다.

집 바로 앞의 산딸나무와 배롱나무 사이에 매달았는데 나무는 사람 무게를 충분히 견딜 수 있게 성장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잎도 무성하여 하늘을 가리면서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해먹이 너무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진 것 같아 이게 사람 무게를 견딜까 싶어 손으로 꾹꾹 누르며 아주 조심스럽게 앉아 봤는데 그야말로 짱짱하다. 광고대로 낙하산용 재질이라서 그런가? 200kg 이상 충분하다고.

 

 

무엇보다도 모기장이 달려 있다. 안에 들어 가 쟈크를 채우니 완전히 모기야 꼼짝 마라다.

오 -  좋은데!

누워서 눈 감으니 좌우로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거기에다 옆집 주방의 도마질 같은 소리도 아주 작게 섬세하게 들린다. 나무뿌리를 타고 들어오는 것일까. 전혀 새로운 경험.

한 10 여 분 누워 있었더니 가까운 새소리는 물론 멀리 사람 소리나 자동차 소음 같은 것이 평소 서서 들었던 상태와는 비교가 될 만큼 색다르게 감지된다.

- 아, 이게 잠만 자라고 하는 게 아니구나.

해먹의 새로운 발견.

낮잠이라도 취하려면 방에 들어가서 잘 것이지 번거롭게 해먹이 뭐람 했는데.

 

 

해먹을 걷어서 개면 앞에 보이는 작은 주머니 안에 모두 들어 가 사용과 보관이 용이한 편.

 

원래 해충이나 습기 방지를 위해 쓰였다는데 나에겐 단순히 휴식 외에 뭔가 새로운 쓰임새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불쑥 들어지다. 

다만 모기장으로 둘러 진 좁은 공간에 움츠린 상태로 누워있자니 마치 관 속에 들어와 죽음을 체험하는 듯한 묘한 감정이 일어 살짝 기분이 다운되기도. 나이 탓이려니.

- 그래, 들어 와 누워있을 때 미다 지내왔던 일들을 반성하고 반성하자.

아니, 그럴려고 산 것은 아닌데...

암튼 1차 시험해 봤으니 내일부터 좀 더 유용한 방법을 찾아봐야지. 우선 말이다. 오늘은 커피 잔을 망 밖에 두었지만 여기에 들어와 편하게 마실 수는 없나? 

내가 생각하는 게 사실 늘 그 모양이다.

 

                                                                                                        - 2024. 6.27(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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