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둘레길의 맥문동

소나무 01 2024. 10. 3. 17:45

집과 연결된 미륵산 둘레길을 자주 걷는다. 가을 텃밭 관리로 며칠 뜸하다가 나섰더니 솔밭 오솔길 사이로 보랏빛 맥문동 꽃이 한창이다. 해마다 여는 서천군의 맥문동 축제가 지난 8월 하순에 끝났다는데 지금 여기에서 무리로 볼 수 있다니.

 

 

솔밭 밑으로 은은한 색으로 카펫을 깔아놓은 듯하다. 그렇게  많은 면적은 아니나 평소 이 둘레길을 찾는 몇 사람(?) 정도에게는 작은 환호를 안겨 주는 소중한 공간이 된다.

 

 

한약방을 하던 친구네 대문 옆 은행나무 밑에 자라고 있던 것을 어릴 때부터 봐 와서 낯설지 않은 식물. 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더욱 각인되어 있다. 

내가 산자락에 집을 마련하고 아내와 함께 연못가에 처음 심었던 것이 이 맥문동이었다. 언덕에 흔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때 많은 잔뿌리 사이에 보리알 같은 알갱이가 여럿 매달려 있었고 생명력이 강인한 탓에 약간 허술하게 심어도 쉽게 뿌리를 내려 100% 살았다. 그래서 맥문동(麥門冬)이라 이름했을테지.  

 

 

후에 알게 되었지만 맥문동도 품종에 따라 그 모습이 약간씩 달랐다. 

지금 이 둘레길에 피어있는 맥문동은 키가 작은 내 집 마당의 것과 다르게 잎이 더 넓고 키가 더 크다. 변이종인 모양이다. 지금도 잎 가장자리에 노란 줄이 나 있어 제법 귀티가 나는데 새싹이 돋는 이른 봄에는 이 잎이 더욱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태로 돋아 눈길을 끈다. 난초 가르는 사람들이 매우 귀하게 여기는 중투라는 품종처럼 때론 난(蘭)같아 보이기도 한다. 

 

 

언제 무더위 가 있었냐는 듯 쌀쌀해진 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한다. 그렇게 밉던 햇빛이 정겹게 느껴진다. 간사스럽다.

이렇게 며칠 지나면 어느새 꽃이 지고 푸른 잎들만 남겨지겠지만 구절초와 국화가 기다려주고 있어 고맙다. 누구 표현대로 꽃은 이름과 늦음의 시기와 관계없이 자신의 때에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두르거나 늑장 부리지 않고. 

 

 

가을날, 오솔길을 소요하는 사람에게 이런저런 가을의 정취를 안겨주는 맥문동에게 감사하며.

 

               - 2024. 1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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