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구절초 공원과 종석산

소나무 01 2024. 10. 18. 16:57

가을 초입이면 구절초 축제가 열리는 정읍 산내면에 한 번 가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매년 지나치기만 하다가 올해 기회가 되었다. 지난 10. 13까지 앞서 열흘 동안의 해당 지역 축제는 그 기간 동안 꽃들이 완전 개화가 이뤄지지 않은 채 종료되었는데 막상 꽃들은 이제 만개가 된 것이다. 한 여름의 지루했던 무더위 탓이다.

지금 쯤 가면 차분히 볼 수 있겠다 싶어 16일 아침 집을 나서다.

 

 

현장에 9시 30분쯤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없다. 예상 밖이다. 개화 시기가 늦다는 소식 미리 알고 어느 정도는 찾아올 줄 알았는데. 주차장은 한가했고 매표소도 문을 닫았다. 자유 출입.

실기한 해당 지자체에서 최소한의 안내 시설만 운영하고 있었다. 그동안 심고 가꾸느라 대단한 공력이 들어갔을 테고 각종 행사와 먹거리 부스 등으로 구름 같은 인파를 기대했을 텐데 주최 측과 참여 업체들의 힘이 쏙 빠졌을 거라는 생각.  어떻든 나로서는 참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다.

대략 11시 정도까지 공원을 살펴보면 충분할 것 같았고 이후에는 맞은 편의 종석산으로의  산행을 마음먹다.

 

 

한 종류의 꽃이 야산 거의를 무더기로 덮고 있다 보니 시선의 감각이 쉽게 무뎌졌다. 사실 더불어 사람 구경하는 것도 볼거리인데 단순해져 보인다고나 할까. 저 앞으로 인공폭포 물소리뿐 사방이 고요하다.

화려하게 뽐내지 않은 수수한 자태들의 구절초 군집과 국화처럼 너무 진하지는 않은 은근한 꽃향에 기분은 많이 좋아졌다.

 

 

사전에 정보를 습득했던 능교로 향한다. 구절초가 만개한 야산을 휘감고 돌아 옥정호로 흘러가는 추령천을 따라가다 보면 오래된 시멘트 다리가 그 물길을 가로지른다. 영화 남부군의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영화 촬영지라는 것보다  오래전 읽었던 그 영화의 배경이 된 이태의 남부군이란 두 권의 소설(실화) 속 내용들이 떠올려져서 여기를 찾아오다. 이데올로기가 뭐라고, 동족끼리 총 겨누고 그 캄캄한 산속에서 상처를 치료받고 밤사이 동물처럼 이동하고 낙엽을 덮고 자고...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가슴 쓰린 여러 모습들이 그려진다.

 

1960년대에 지어진 다리인데도 마치 그 격전의 시기에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지다. 지금은 바로 그 위로 최신의 교량이 놓여 있어 참으로 격세지감. 그래서 능교는 다만 애처롭고 초췌해 보일 뿐.  

 

 

 

공원 어디 쪽엔가 "종석산 입구"라는 표지판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찾을 수 없었다. 다리 앞의 촌로에게 물으니 더 내려가면 올라가는 길이 있을 거란다. 그런데 옆에 있던 친구가

"아니여, 거기는 가다가 길이 끊어졌어. 저기 공원 쪽으로(내가 내려왔던) 올라가면 왼짝 편으로 집이 하나 있는디 그 옆으로 등산길이 보일 것이요. 글로 올라가시오. 근디 어디서 왔소?"

설명을 대충 들었으나 여기로 내려올 때 아무런 집도 없었고 등산로도 보이질 않았는데... 되물어도 이해가 안 되는 똑같은 설명. 그냥 그런가 보다며 짐작으로 받아들였다. 방향을 맞게 설명해 주는 것 같고 그래서 가면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여기가 종석산 입구. 촌로가 말했던 집이 작은 천막시설을 말한 것이었다. 작은 안내표지판 하나라도 길 옆에 있었다면 쉬이 찾았을 텐데 오래된 듯한 안내판은 사람들 눈에 전혀 띄지 않을 곳에 있었다.

 

 

다행히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보였고 하여 산책로 같은 그 길을 따라 오르다.

해발 539m의 종석산(鐘石山)은 계속 오르막이었다. 두어 곳에 나무 계단이 있었으나 계단 간격이 길어 불편. 그래도 사람 다니는 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 혼자만의 등산길에 반가웠다.

 

 

산행 중 처음 만난 구절초. 앞 산에서 씨앗이 날아왔는지 몇 포기가 자라고 있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 대하니 너른 밭이 된 공원에서 보다 여기 이 구절초가 훨씬 예쁘고 사랑스럽다. 발돋움하지 않고 함초롬히 피어있는 가을의 꽃. 

 

 

공원에서 1.1Km를 걸어왔고, 앞으로 정상까지 다시 1.1Km가 남았다고. 아무도 없는 산행인 대신에 또 일러주는 반가움.

 

 

여기가 정상인가? 봉화대 흔적 같은 돌들이 무더기로 널브러져 있고 나무 기둥 몸체에 리본이 달려있어 그런 가 보다 여기며 기념사진 한 장. 그런데 아래 이정표에서 1km 정도를 걸어온 게 맞나?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지도를 보니 좀 더 오르라는 표시.

 

 

좀 미심쩍다는 맘으로 걸으면서 긴 골짜기로 내려서고 다시 오르는데 조금씩 길이 희미해지더니만 결국 길이 끊겼다. 발길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가 없다. 혹시나 해서 우거진 풀들을 제치고 10여 m 전진해 보았지만 역시 아무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전문 산악인 아니면 다니지 않는 길이라는 듯. 그래 여기까지 1시간 10여 분 걸어오면서 다만 나 혼자였으니...

더 이상은 무리 다는 판단. 과거 다른 산행에서도 두세 번 이런 경우로 인해 되돌아 선 일이 있다. 정상까지 가면 넓은 옥정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쉽다.

서서히 낙엽이 지고 있었으나 아직은 무성한 나뭇잎들로 주변 조망이 전혀 되지 않는다.  그냥 마음 안으로만 아래쪽 푸른 호수를 그려보며 하산을 결정. 산중에서는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한다.

 

산은 오늘 그 많은 구절초를 만났으니 그것으로 족하지 않았느냐며 더 욕심부리지 말라 이르는 것 같았다.

500

               구절초공원 인공폭포 위 전망대에서 본 조경 시설. 상단 부분의 산이 종석산 줄기다.

     

                                                                      - 2024.10.1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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