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용화산에 오르면서

소나무 01 2024. 7. 14. 16:43

한동안 산행이 뜸했다. 텃밭과 화초, 나무 가꾸는 일에 시간과 손이 많이 갔다. 나름 짜인 바깥일에서 볕이 따가워지고 보니 잠시 쉬고 싶어졌다. 얼마 전 약간의 장마 피해가 있어 땀을 좀 쏟고 났더니 산에 가고 싶어졌다. 마음속으로는 사실 늘 산에 오르고 싶었지만.

 

 

내 집 동쪽 가까운 곳에 용화산이 있고 요즘의 아침 해는 늘 그곳에서 떠오른다.

날마다 대하는 산인데 며칠 전부터 길게 뻗은 능선이 자주 시건을 멈추게 했다. 이번에는 저기 보이는 오른쪽 방향에서 시작하여 완만하게 이어지고 있는 능선을 따라 한번 올라 봐야지... 했다.

9시가 지났는데도 운무가 걷히지 않아 정상에서의 시야 확보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서다.

 

 

마한박물관이 있는 곳에 입구가 있다. 예전에 그 앞 서동공원을 찾으면서 몇 번 눈여겨본 일이 있어 익숙해져 있는 곳이다. 같은 익산권의 미륵산에 비해 이곳으로는 평소 찾는 이가 적다는 생각이었는데 오늘 휴일인데도 예상대로 등산객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주차하고 산행 초입에 이르는 동안 서너 사람을 봤을 뿐이다. 내 성향대로 한적해서 좋다는 느낌.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산행금지 현수막. 며칠 전 이쪽 지역에 호우 예보와 함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관계로 사전 피해를 막기 위한 행정 당국의 조처였을 거라 여기지만 이후 날이 많이 좋아졌는데도 그대로 방치하고 있음이 아쉽다. 엊그제 미륵산 산행 초입에도 그대로였고, 사람들은 허리를 숙여 그 밑으로 지나다니는 모습을 봤다. 시작은 해 놓고 그다음은 나몰라며 방치하는 행정 당국의 비슷한 유형을 간혹 봐 온 터라 그 행태가 은근히 밉다. 나도 별 수 없이 고개 숙여 통과.   

 

 

이른바 명당 급에 속하는 지형인지 초입 좌우로 묘를 쓴 곳이 많았다. 한쪽은 생나무 울타리로 두른 데다 잔디를 잘 가꾸고 있어 가문의 전통과 힘이 어찌한가를 가늠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어느 쪽은 잡초가 무성. 평소의 벌초 작업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고 대개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일시에 작업을 하는 게 현실이지만 어떻든 묘가 분별되지 못할 정도로 풀이 무성한 곳을 접하다 보니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장례문화에 대한 생각이 들어지다. 

가볍게 산행하고 있으면서 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또래의 우스개 소리지만  앞으로의 '살 날이 짧아진'  나이 때문에 그런 모습들에 신경 쓰게 되는 것 아닌지.

좀 더 의미 있게 산다는 게 무엇일까. 다음 세대를 위한 나의 이후 행보는 어떤 것이어야 하나. 줄곧 이어지는 그런 사념들.  아직은 건강이 허락하고 있지만 오늘 같은 산행을 언제까지 무리 없이 지속할 수 있겠냐는 것 등등...

매사 긍정적으로 욕심 없이 그리고 담담하게 충실히 살자 하면서도 이제 결혼 청첩보다 상대적으로 많아진 부고장 앞에 자신이 순간 무너지기도 하고, 또 몇 개 단톡방에서 수시로 날아오는 압도적으로 많은 건강 관련 문자를 보면 아무래도 서글퍼진다. 누구나의 예외 없는 통과의례 과정인데도. 

따가운 햇볕을 차단시켜 줄 정도로 제법 빽빽하게 들어 찬 등산로를 걸으며 줄곧 생각이 이어지는 그런 생각들에 그저 묵묵히 걸을 뿐.  그 때문인지 오르내리는 산행객 얼굴을 슬쩍슬쩍 훔쳐보노라니 오늘따라 그런 인생 후반인 사람들이 많다. 도시 근교의 가벼운 산행 코스라 그러려니 하면서도.

 

 

정상이다. 342m의 산인데 2.6Km의 거리를 느릿느릿 1시간 여 걸어 올랐다. 같은 거리인 반대 편 아리랑 고개 쪽에서는 이곳까지 두 번 올라왔었다. 미륵산에서 넘어오는 그쪽 길보다는 오늘 택한 산행로가 여러 가지로 좋다는 판단. 무엇보다 나무들이 더 많고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다는 것. 처음의 경사로를 어느 정도 오르고 나면 계속해서 평탄한 능선을 타게 되니 큰 무리가 없다. 어떻든 내 집에서 멀리 이 용화산을 바라보며 '저 능선길은 걷고 싶다'는 생각을 오늘에서야 실행하다.

 

 

정상에서는 나무들 때문에 사방에 걸쳐 산아래 조망을 할 수없다.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오는 장소이고 보면 군사 시설이 있는 남쪽 방향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쪽은 적절한 방법으로 시야를 확보될 수 있게 했으면 좋으련만 이것도 행정 당국을 탓한다면 나는 그저 뒷전에서 구시렁대기만 하는 사람일까.

누군가의 묘 하나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어 생경스럽다. 언제였는지 알 수 없지만 헬기 신세를 진 것도 아닐 테고 여러 사람이 힘겹게 여기까지 운구해 왔을 텐데 극락왕생하시라고 모셔 온 그때의 후손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일까. 분명 하늘과 최대한 가까운 곳을 선택하여 지금의 산 이름처럼 용화(龍蕐)이든 아님 용화(龍化)이든 그 이상 이길 기원했을 텐데 현실의 무성히 잡초로 덮여있는 모습 앞에 다만 씁쓸한 마음.

 

 

내려서는 길, 딱 한 군데에서 더 저 멀리로 익산 시내가 희미하게 조망된다. 내가 가진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으로는 식별이 안될 정도로 시야가 이렇게 뿌옇다. 그래도 시가지를 한 눈으로 조망할 수 있는 산이 내 집 주위에 몇 개 존재하고 있음이 행복이다.

이대로 내려서면 모처럼 점심시간 안에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메뉴가 정해졌다. 텃밭에서 오이 하나 따서 오이국수로 배 채우고 나서 그리고는 잠시 오수를 즐기는 것.

 

다시 장마가 북상하여 다음 주 중반까지 계속 비라는 예보다. 그 이후에야 선대 묘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 2024. 7.13(토)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절초 공원과 종석산  (6) 2024.10.18
식장산 일별  (2) 2024.08.01
장암 마을에서 장군봉까지  (0) 2024.05.12
신록예찬과 노성산  (2) 2024.04.28
얼레지 꽃보러 불명산으로  (1) 2024.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