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가야 되는데... 이번에는 내가 기대어 사는 미륵산을 다른 코스로 올라 보기로.
내가 사는 곳의 반대편인 익산 낭산면 장암마을에서 정상까지의 산행 코스는 지금껏 한 번도 찾아본 일이 없었다.
내 집에서는 식사 시간 때마다 식탁에서 미륵산 정상을 바라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나 할까.
미륵산은 내 집 뒷산 개념이어서 아무 때고 쉽게 오를 수 있었고 집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40분 정도의 시간이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러려니 생각하고 출발.
저 위로 멀리 방송사와 통신사의 송신탑이 보인다. 생각보다 능선이 완만하고 길어서 여기에서는 1시간 이상은 족히 걸어야 될 것 같았다.
간밤의 비로 가까이에서는 매우 청명하고 신선해 보이는 날씨였지만 황사 때문에 외출하기에 그리 좋은 날은 아니라는 생각.
장암마을에서 위쪽의 심곡사 까지는 포장도로다. 며칠 후면 부처님 오신 날이라서 길가의 연등이 마음을 더 차분히 가라앉혀 주는 느낌. 심곡사까지는 몇 차례 오고 간 일이 있어 낯설지 않다.
심곡사(深谷寺) 이름대로 라면 깊은 산중 계곡에 위치해 있을 법 한데 평야지대의 조금 높은 산에 자리 잡은 사찰. 계곡은 없고 사찰 옆으로 작은 물줄기가 있을 따름이다. 그나마도 평소에는 물이 말라 있어 계곡이라는 존재의 의미가 없는 편이지만 간밤의 비 때문에 오늘은 작은 물소리라도 들려와 반갑다.
심곡사의 백미는 야외공연장이다. 떡목이었으면서도 명창의 경지에 올랐던 옆 망성면 출신 정정렬을 기리는 의미에서 '떡목공연장'이라 이름 붙여져 있는데 이곳에서 산사음악회가 열리곤 한다.
나도 언젠가 구경을 온 바가 있는데 사실 판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연하는 좋아하는 가수가 있어 그리 했었다는. 가수를 직접 대면하고 노래를 듣는 기쁨이 있어 좋았고 그날 가을밤의 분위기도 참 좋았었다.
그날 밤 구경꾼들 때문에 차를 이용할 수 없어 지금 올라왔던 길을 걸어 내려와 귀가했던 추억 같은 기억.
언젠가 등산로 입구를 봐 두었던 기억이 있는데 10여 분을 허비하는 동안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어느 곳에도 안내 표지판은 없고. 할 수 없이 경내로 들어 가 청소를 하고 있는 보살님에게 묻다. 친절하게 알려 주신다. 딱 한 마디로 물었는데 다섯 마디 여섯 마디로 돌아왔다. 사람이 고맙다.
겨우 찾았는데 사람들이 다닌 흔적은 있으나 국수나무를 비롯한 나뭇가지들이 길을 가려 심상치가 않다. 그래도 줄곧 길이 나 있어 안도하다.
1시간 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길었다. 그래서 산 앞에서는 건방 떨지 말고 겸손하라 했거늘. 멀리에서는 그냥 긴 능선 같았는데 정상에 이르는 동안 작은 봉우리를 두 개나 넘었다. 오는 동안 딱 한 사람 만났을 만큼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는 등산로였다. 반대쪽 남쪽 등산로 쪽은 오늘 휴일이라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르내렸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오늘 선택한 등산코스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호젓해서.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이 길로 다시 찾아오겠다는 생각을 해 보다.
잠시 잠시 서서 숨 돌리면서 쉬엄쉬엄 1시간 반 정도가 걸렸고. 나에겐 적당한 산행이었다는 느낌.
황사 때문에 멀리로는 시야가 매우 흐렸다. 이런 날에 산행을 했으니 지금 정상인 장군봉(430m)에 올랐다고 좋아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어서 내려가자고 서두른다.
여긴 가끔 올라오는 곳인데도 그래도 사진 한 장은 찍고 가야겠다고 표지석 가까이 앉아 리모컨 셔터를 누른다. 이럴 때 쓰라고 아들 녀석이 동전 만한 걸 하나 사 줬는데 편리하다.
요것 참 괜찮네- 하면서 모르는 척하는 제스처로 찰칵.
- 2024. 5.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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