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개방 소식을 접하고 한 번쯤 찾아 가 보고 싶었던 곳을 어제 둘러보게 되다. 지인의 갑작스러운 제의로 나를 포함한 일행 5명이 9인승을 소유한 또 다른 이의 승합차를 차고 오른 여행길.
처음 전해 들은 행선지는 말티재였다. 난 이미 과거에 둘러본 일이 있거니와 지난봄에도 속리산을 다녀온 일이 있어 사실 끌리지는 않았다. 더구나 며칠 전 대전에 가면서 탔던 그 고속도로 위를 지금 또 달리고 있지 않는가. 그러다 보니 가는 곳에 대한 것보다 승합차 내부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에 더 관심이.
우선 예전에 내가 탔던 7인승 승합차와의 비슷한 승차감이 좋았다. 의자가 주는 안정감은 좀 덜하지만 선팅과 별도로 창마다 반자동 가림막 장치가 눈에 들어왔고, 3열의 의자는 다른 차처럼 접이식 개폐가 가능하여 사람대신 많은 짐을 실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또 출입문이 양 옆으로 설치되어 있어 타고 내림이 편리할 것 같고. 운전석의 네비도 음성인식에다 창이 광폭이었다. 내 승용차에 없는 기능들이다. (언젠가 아내에게 차 교체 욕심을 흘렸지만 돌아온 것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핀잔뿐. 앞으로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 그땐 혹 치매 검사로 인해 면허 발급 불가가 될 수도 있잖을까??.. '금수강산'을 거꾸로 말해 보라고 해서 갑자기 당황했었다고 전해 들은 선배의 얘기. 지금의 내 차가 과분하다는 자각도 없진 않다만)
그러나 차 내부 장치 그런 것 보다 훨씬 맘에 든 것은 운전대를 잡은 차 주인의 돌발성 발언이었다.
"멀티재 잠깐 둘러보고 청남대 가자고요. 1시간 이면 가네"
반갑고야!
잘 됐다. 그동안 기회를 잡지 못했는데. (사실 지인은 나보고 말티재 가자고 했지만 나를 픽업하기 전 서로 간에는 사전 얘기가 있었던 듯)
청주 문의면에서 청남대까지 들어가는 데는 오른쪽으로 대청호를 끼고도는 경관 좋은 드라이브코스였다. 과거로부터 이 주변의 경비가 삼엄했을 테니 주변에 인가들이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쾌적감을 느낄 수밖에. 날씨 좋고.
오후 3시경 인데도 출입하려는 차량이 꼬리를 문다. 주말인 공휴일 같은 매우 몇 시간씩이나 심한 정체를 빚는다고.
등산을 싫어하는 이도 있기에 산 위의 전망대에 오르지 못하고 안내판으로 대신한 청남대 전경
도착하니 안내원이 들고 있는 팻말부터 눈길을 잡는다. 줄 서 있는 차 안의 일행 중 한 사람이니 먼저 내려 먼저 개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라는 것. 얼마나 혼잡하면 저럴까 싶다. 우린 할인받아 명당 3천 원. 승차 인원 확인 절차도 없이 통과. 서로 바쁘니 무한 신뢰로?
언젠가 친구와 차 안에서 대화하며 우스개 대화를 나눈 바 있다.
"나도 저런 직업을 좀 가져보고 싶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제발 내 돈부터 받으라고 통사정을 하는 것 봐라. 세상에..."
예전의 하이패스가 없던 시절의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그랬고, 명화가 들어온 극장 앞이 그랬고, 인기 스포츠 경기가 있는 의 경기장 등이 그랬다.
어떤 곳에서는 지금 돈 안내도 좋으니 사용 후에 지불하라 하기도 하고 3년짜리 할부도 해 준다는데.
제일 보고 싶었던 곳은 청남대 본관. 사람들이 계속 줄을 선다. 대개의 사람들은(사실은 거의 모두 다가 아닐까) 가난한 이들이 사는 집 내부에는 관심이 없다. 부뚜막이란 게 따로 있든 화장실이 집 밖에 있든.
그러나 반대의 상황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 내부 인테리어는 어떻게 했는지 어떤 전자제품을 쓰는지 그리고 화장실의 수도꼭지가 진짜로 금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인지... 나도 그런 소시민이다.
과거 한 포상대상자가 되어 청와대 들어가 본 경험이 있지만 대통령과의 악수나 다중 면전에서의 곰탕 한 그릇 그보다는 금색의 화려한 벽과 높은 천장의 장식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더 관심사였고 흥미로운 것이었다. 최상 권위의 상징적 장소 아닌가. 생각해 보면 그때의 신원 조회부터 몸수색까지, 내가 잘해서 뽑혀 갔었다는 것보다는 '불려 가서 긴장 속에 숨 죽이고 있었다'는 인식이 맞는 것 같던.
그런데 여기, 20년 전에 그 관리가 지자체로 이양되고 일반에 공개되면서 나는 지금 슬리퍼를 신고 구경하고 있다. 아주 편하게.
바닥에는 이런 대리석이 깔려있구나. 침실 침대는 저렇게 생겼고, 저길 지나면 화장실이 저기에 저렇게 있구나. 창 밖으로 저렇게 나무들과 호수가 보이고... 또 여러 가지 집기들에 대한 호기심. 서민 생활과의 괴리감과 함께 위압감을 동시에 느끼기는 하는 그런 구경거리들.
여기에 내려와 잠시 휴식을 취하며 그 당시 어떤 국정을 어떻게 구상했을까? 그래서 그때 그런 이른바 '청남대 구상'이라는 게 나왔었나? 정말 그런 생각은 1도 없었다.
뒷사람에 밀리니 가능한 한 빨리 이 그 자리를 물러나야 했다. 신발을 벗어 담은 주머니를 든 채로.
본관 외에 좀 더 많은 곳을 둘러보며 나름대로의 생각과 여유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일단 '일행' 속에 섞이게 되면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남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그저 함께 한 무리를 이루어 바삐 옮겨 다니며 실없이 내뱉는 말들에 서로 박자 맞추고 해야.
어느 날 전주의 한 상가를 거닐고 있는데 "뜻밖의 OOO"이라는 상호가 눈에 띄었다. 기발한 상호라는 생각과 함께 과연 뜻 밖으로 가게 운영이 잘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었다.
뜻 밖에 나선 이번 여행길에 과연 뜻밖의 어떤 소득이 있었는가. 글쎄다.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냥 또래의 사람들과 한 차를 타고 이동했고 점심 한 끼라도 같이 하며 수평적 유대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게 뜻밖의 소득일 수는 아닐 테고.
청남대 본관을 배경으로한 인증 컷
- 2024.11. 8(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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