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서해 덕적도를 찾았던 우리 셋은 그때 예정했던 동해안으로 2박 3일의 여정을 시작. 사람 말을 참 잘 듣는(?) 친구의 똑똑하고 편안한 승용차로 출발.
서울 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백담사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참 오랜만에 가게 된 강원 북부 쪽. 과거 직업상 비교적 자주 드나들던 지역이었지만 소원하게 보내게 된 지 어느새 3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입구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해 10여 분 이동 후 폭넓은 계곡천을 건너야 백담사 경내로 들어설 수 있다.
설악산 줄기 깊은 계곡 안에 자리한 백담사(百潭寺)는 우리 현대사에 불행한 역사를 만들었던 한 인물이 유배 비슷한 상황 속에 칩거하게 됨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 이전 만해 한용운이 이곳에서 만년을 보내며 많은 책과 시를 남긴 곳으로 기억되는 사찰이다. 백담이라는 이름의 연유로 보면 설악의 그 많은 못 중에서 백 번째에 해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고 화재가 자주 나는 바람에 비보의 성격으로 그리 이름했다는 설.
문고판인 조선불교유신과 님의 침묵. 첫 쪽에 만해가 머물렀던 백담사의 옛 모습이 실려 있다.
경내에는 만해의 동상과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에는 그의 여러 행적과 글씨 그리고 여러 종류의 유작 출판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집에 있는 내 책이 생각났다. 유심히 살펴보니 내가 갖고 있는 출판물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976년 100원에 구입한 삼성문화재단 발행 문고판인데 그의 시가 좋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반백년을 보관해 온 책. 볼품없어 보이지만 여기에서 그의 조선불교유신론을 읽었고 '알 수 없어요'같은 그의 시들을 애송했던 기억.
다시 대진항 쪽으로 나서면서 건봉사(여기도 다시 찾고 싶었는데...) 들머리를 지나니 얼마 후 동해의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성수기를 지난 터라 주위는 시간이 멈춘 듯 적막감이 들 정도로 차분한 느낌. 그냥 차창 밖으로만 보기가 그러하니 일단 반암 해변에서 차를 멈추고 잠시 모래밭을 거닐며 기념사진 한 장으로 우정을 남기고.
거진, 화진포, 대진항을 지나 해변에 위치한 전망 좋은 숙소에 짐을 풀고 산책. 한 여름에 가족들과 함께하면 즐기기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보기에 좋았다.
백사장의 가는 모래와 크고 작은 바위들 그리고 바다 위의 작은 어선들과 또 해안도로를 따라 대진항까지 걸어 그곳에서의 해산물과 함께하는 저녁도 좋았고, 다음 날의 일출 등 이른바 힐링의 조건들을 잘 갖추고 있는 곳.
통일전망대에서 본 저멀리 북녘 산과 백사장
DMZ박물관 입구에 전시용으로 세워진 대북 방송, 조명탑
최북단에 있는 통일전망대는 마치 정형화된 수학여행 코스 같아서 생략하기로 했다. 여기로의 출입은 출입신고소에서의 사전 절차가 필요하다 해서 그런 수고로움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예정했던 DMZ박물관이 같은 지역에 있어 결국 신고서 작성과 입장료를 지불. 그리고는 8분짜리 영상 '안보교육'도 받아야 했고. 그런데 이 DMZ박물관이 통일전망대와는 별개 장소라는 듯 '무료입장'이라고 곳곳에 홍보하고 있었는데 이건 엇박자 아닌지. 무료입장이라는 것 때문에 신고 절차없이 자유롭게 찾아 오라는 것으로 오해하기에 충분했다. 그 바람에 상당한 거리를 주행했다가 검문에서 제지를 받고 어쩔 수 없이 되돌아 와 신고소를 방문.
서류 작성도 복잡했지만 출입자에 대한 안보교육도 필요하단다. 나중에 알았지만 필수사항도 아니면서 교육을 받으라고. 강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사전에 얘기해 줘야 하지 않나? 국민들의 의식과 판단 능력은 이미 저만치 앞서 있는데 이런 구태의연한 교육 절차가 필요한 것인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 검문소의 통제를 거쳐야 함을 이해하면서도 여행 중 겪었던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비상계엄 선포' 같은 해프닝 같은 모습들로 보이기도 하여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왼편으로 울산바위 끝자락과 아래로 신흥사가 눈에 들어온다.
자연은 사람을 받아 주고 품어 준다. 설악의 웅장한 위용이 너그러움으로 다가온다. 오색 온천으로 가기 전에 잠시 설악 안으로 들어 가 가능한 대로 편안하게 쉬어 가기로.
역시 성수기가 아니어서 권금성(權金城)을 오르는 케이블카를 줄 서기 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고 풍속이 강해 운영하는 쪽에서도 상황에 딸 운행이 불가할 수도 있다는 안내 멘트를 했으나 무리 없이 오르내릴 수 있었다.
670m 정도의 정상에는 칼바람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매섭고 세찬 바람이 불어 황망히 돌아서 오다. 어디쯤 고려시대 축성했다는 성의 흔적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지금 주머니 속의 손까지 시린데 그런 게 대수냐는 원초적 반응이 우선. 오호 애재라. 최정상 대청봉(1,708m)에 올랐던 젊은 날의 그 패기는 다 어디로 가고 이리 나약한 모습인가.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이미 하산하여 따듯한 온천수에 몸 담그고 있는 내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어서 가자 오색 탄산온천으로. 우리 거기에서 이번 일정의 정리와 다음 계획에 대해 얘기 나누도록 하자.
- 2024.12. 5(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