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잊혀진 세월 - 선운산/강천산

소나무 01 2009. 12. 26. 00:14

 

 

철따라 아름다운 산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빗대어 흔히 남한의 소금강이라는 표현을 곳곳에서 사용한다. 순창 강천산도 마찬가지다. 특히 단풍은 화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있어 가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단풍하면 흔히들 설악이나 내장산의 단풍만을 생각하는데 그런 화려함에 비해 그 규모

와 내용 면에서 아기자기하고 단아한 맛이 있다. 강천산과 비견되는 곳이 고창의 선운산인데 산의 높낮이가 그만그만하고 산세가 비슷한 것이 서로 형제지간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선운산(禪雲山)은 가을보다는 흔히 봄의 동백을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선운사 동백꽃을 생각나게 하는 시인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라는 시 때문일 것이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읍디다.

 

 거기에다 80년대 들어서는 가수 송창식도 거들어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하는 노랫말로 가슴을 파고드는 바람에 선운사 대웅전 뒤편의 동백나무 숲은 봄이면 관광객들의 발길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동백 숲까지의 화사한 벚꽃 길도 놓칠 수 없는 정경이다.

 그러나 가을 단풍 또한 봄의 동백 못지 않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야말로 선운사 동구(洞口)에서 계곡을 따라 도솔암까지 이어지는 단풍나무 숲길은 경탄을 자아내게 하고 천마봉에 올라 기암괴석과 함께 어우러진 산 전체의 단풍 물결을 보면 또 한번 감탄사가 나온다. 그 옆으로 약간 걸어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저 아래의 가을 들녘과 서해바다는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선운산의 도솔암 마애불과 단풍.

 

 선운산과 강천산을 굳이 비교한다면 그래도 정이 가는 쪽은 순창의 강천산 이다. 취재 때문에 평소에 순창 쪽을 몇 번 들락거렸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 보다는 아내와의 인연이 강천산에 묻어있어서라는 이유가 크다.

 정월 초, TV뉴스를 보니 강천산 일대에 폭설이 내렸다하여 혹시라도 눈다운 눈을 실컷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방향을 그 쪽으로 잡아 산행을 준비한다. 눈이 내린 후 이미 사흘이 지났는데 내일 주말에도 눈이 그대로 남아있을까 싶어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넣어봤더니 그간 며칠 날이 포근하여 응달진 곳말고는 모두 녹아버렸다는 대답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결국 실망으로 바뀐다.

 

 

희미한 추억의 그림자들

 전주에서 1시간을 넘게 달려 강천산 입구쪽에 도착한다. 겨울 한 가운데인데도 눈은 보이지 않고 햇살이 오히려 따뜻하다. 넓은 주차장은 찾는 이 없어 휑하다. 적당한 곳에 차를 대고 아내와 함께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모든 게 낯설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마다 30년 전의 기억대로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 사람에겐 망각이란 것이 있어 가끔 편리할 때도 있지만 생각나는 것이 거의 없고 보니 이처럼 서운할 때도 있는가 보다. 대학 방송국 시절에 요즘으로 치면 MT를 왔었고 여기 어디쯤의 계곡 자갈밭에서 발 담그고 놀았을 텐데 그 넓던 장소가 지금은 너무 협소하고 단조로워 보인다. 정확히 1976년의 여름이었으니 30년쯤의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 가버린 셈이다.

 계곡을 끼고 난 차도를 따라 10분 정도를 걸으니 오른 편으로 수직으로 된 깎아지른 암벽이 나타나고 30m 쯤 되어 보이는 높이에서 여러 물줄기들이 폭포가 되어 쏟아져 내린다. 병풍바위라 이름 붙여진 곳이다. 얇은 바람에도 물보라를 일으키며 햇빛을 받아 무지개를 만들어 낸다. 

 

                           강천사 입구 병풍바위의 시원스런 물줄기.

 

 자세히 보니 물줄기가 일정하고 쏟아지는 물의 양도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인공 폭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 병풍바위 역시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곳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강천사라는 사찰이 나올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전혀 모르겠네. 생각나는 게 있어?”

멍한 상태로 서있는 아내의 표정을 살핀다. 혹시 아내는 기억하고 있을지 몰랐다.

“모르겠어-”

“언제 이런 바위가 있었지? 그 때 우리가 이 근처에서 놀다가 저 밑에 분교같은 교실에서 잠자고 그러지 않았나?”

“분교는 무슨, 민박집에서 잤었지- ”

“민박집? 그런 게 있었나? 교실 한 두 칸 빌려서 마루바닥에서 모두 같이 잔 것 같은데… 거기에서 우리가 첫 키스를 했었나?”

“???…… ”

아내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황당하다는 투다.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하기야 30년이란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버렸으니 기억에서 사라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단 하나 흐릿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당시 PD일을 맡아하던 조재철 군의 익살스런 행동이다. 자신의 손과 아내의 손을 수건으로 한데 묶고는 냅다 달음질치는 것이었다. 아내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재철 군의 뛰는 속도에 맞춰 헉헉거리며 함께 뛸 수밖에 없었다. 언제 그렇게 전력 질주를 해 봤겠는가. 둘은 물론 구경하던 방송국 식구들이 배꼽을 뺐다.

 그런데 골똘히 생각해 보니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학 방송국 생활동안 MT형식의 야유회를 간 것은 금산사와 운일암․반일암 그리고 지금 이곳의 강천사 세 차례뿐이었는데 1박 2일의 형태를 취한 것은 1977년 진안의 운일암․반일암 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두 장소를 착각하고 있는 셈이 된다. 30년이란 세월은 과거의 기억을 그렇게 희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아내와 둘이 함께와 본 곳이 두 장소였고 서로 계곡을 끼고 있기 때문에 그런 착각이 가능하지 않는가 싶다. 아내도 첫 키스는 기억하지만 그 곳이 강천산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어떻든 이 곳 어느 곳인가에 도 30년 전 아내와의 자취가 남아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한 줄기에서 8가지가 뻗어 나온 반송. 이 지역의 옛이름을

                    따 장사송(長沙松)이라 이름한다.

 

아내같은 나무, 나무같은 나무

며칠 전 내린 눈은 모두 녹아버렸지만 아직 한 겨울인데도 바람이 없어 춥지가 않다. 안내판을 들여다보니 등산코스가 여러 개 표시되어있다. 대충 서 너 시간 정도 걸으면 좋을 것 같아 그 가운데 정상으로 가는 코스인 왕자봉 코스를 택하기로 한다.

강천사(剛泉寺)는 계곡 오른 쪽으로 나지막이 들어 앉아있다. 30년 전 당시의 눈으로는 꽤 규모 있는 사찰이었던 것으로 기억했는데 지금의 눈으로 보니 역시 왜소하다는 생각이다.

 

 강천사는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지어졌고 한 때 1천명이 넘는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하는데 임짐왜란과 한국전쟁 때 두 번 불타 버린 후 지금의 규모로 중창된 비구니 사찰이다.

 강천사를 오른쪽으로 끼고 돌면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길은 비교적 완만한 편이고 수종이 다른 곳에 비해 다양한 편이다. 비록 나뭇잎은 없지만 나뭇가지만의 수형 그 자체를 감상하는 맛도 나에겐 특별하다. 뿐만 아니라 나무 자체의 색깔이나 표피형태가 다양해서 삭막한 겨울 속에서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를테면 새하얀 자작나무나 오랫동안 씻지 않아 때 국물이 잔뜩 낀 것 같은 새까만 때죽나무 같은 것이 그렇고 비교적 매끄러운 단풍나무, 어머니 뱃가죽처럼 살이 튼 층층나무, 마치 추상화 작품 같은 물푸레나무, 세월의 더께를 느끼게 하는 참나무류의 두꺼운 껍질 등이 그렇다.

 사실 특별히 깊은 산이 아니면 늘 만나는 게 소나무나 신갈나무 같은 단순함뿐이어서 시각적으로는 지루함이 없지 않은데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자라는 곳은 한 겨울에도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나무를 두드려 보면 소리도 저마다 다르다. 나는 산을 오르면서 가끔 지팡이로 나무몸통을 두드리며 그 소리를 감상하기도 한다. 참나무처럼 코르크 재질이 붙어 있는 것은 둔탁한 소리를 내어 두드려도 재미가 없지만 어떤 것은 딱- 딱- 하며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내어 기분이 상쾌할 때가 있다. 괜히 얻어맞아야 하는 나무에게는 그 자체가 수난이어서 나무들에게 미안하지만 나무를 두드려서 내는 공명음은 무료함을 달래주기도 하고 근처에 있는 동물들에 대해 인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전 경고음을 보내면서 상대방 누군가에게 내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행위이기도 하여 나쁜 습관만은 아닌 것 같다. 산 속에 뿔뿔이 흩어져서 약초를 캐는 사람들도 지팡이로 나무를 두드려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지 않는가.

 

                  

                   

                    솜씨좋은 추상화가 작품같은 물푸레나무 표피.

 

 아내와의 산행에서는 언제나 내가 앞서가는 편이었다. 평지 같으면 손이라고 맞잡고 걷기도 하는데 비좁은 등산로에서는 그걸 허락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산행을 하면서의 대화는 많은 편이 아니다. 비록 부부지간이라 할지라도 많은 대화가 필요치 않은 것 같았다. 시인 황지우의 ‘늙어 가는 아내에게’라는 시의 첫 대목처럼 구태여 서로를 확인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는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내가 너무 앞서가는 바람에 뒤돌아 서서 한참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그렇다 할 지라도 아내는 그런 나를 향해 매정한 사람이라고 한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아내 역시도 무엇인가의 생각에 빠져 그저 묵묵하게 걷는 모양이었다. 나이가 들어진 만큼 생각할 일도 많아졌지 않겠는가.

 어느 정도 오르고 나니 바위로 된 험한 길이 급경사가 나타난다. 힘들어하는 것 같아 손을 내밀면 괜찮다 하면서 혼자 오른다. 아마 아내 나름대로의 성취감이 있는 모양이었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전망이 매우 시원하다. 물이 가득 담긴 강천호수가 파랗게 내려 다 보이고 전망대로 연결되는 구름다리가 멋들어지게 눈에 들어온다. 산에 만들어지는 인공조형물 대부분은 거부감이 들어지는데 유독 구름다리만큼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런지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해 본 일은 없지만 서로와 서로를 이어준다는 그 자체의 이미지 때문이 아닌 것인지.

 한 발자국 씩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고 때론 로프에 의지하여 오르기도 하면서 정상을 향해 다가간다. 나무들에 가려 시야에 들어오지 않지만 수십 미터 전방에서의 사람들 이야기가 소란스럽게 들려온다. 다른 방향에서 올라 온 산행 팀의 정상 도달이 이뤄진 모양이었다. 정상까지는 다시 일정부분 완만한 길로 이어지고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에 속도가 붙는다.

 

 정상인 왕자봉(583m) 주변에는 다양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그룹을 이루어 양지쪽에 자리를 잡아 점심을 즐기고 있었고 정상의 작은 돌답 앞에서는 경남 거창에서 건너 온 산악회 팀이 새해 들어 첫 산행을 기록하는 것인지 한창 시산제를 지내고 있었다. 부부동반의 20명 정도로 보이는 모임이었다. 부부들의 모임은 대체로 왁자지껄한 편인데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걸죽한 목소리를 지닌 40대의 어느 한 사람이 막걸리 병을 들고 다니며 적당한 신소리와 함께 한잔하라고 권하고 다닌다. 사람들은 낄낄대며 좋아한다.

 시계가 12시 반쯤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도 양지쪽 어느 한군데를 잡아 점심을 하고 싶은데 넓지 않은 장소이고 보니 좋은 곳은 모두 먼저 온 사람들의 차지였다. 남아있는 공간은 눈이 녹아 축축하거나 그늘 진 곳뿐이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기념사진 한 장만 부탁하고 하행을 서두른다.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고 깃대봉으로 내려 가 병풍바위 쪽으로 하산하는 등산로를 택한다.

 

 강천사 왕자봉 정상에서 아내와 함께.

 

 내려오는 길, 더 이상의 등산객은 없는지 어쩌다 두 세 사람 정도를 만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왕자봉 뒤편인 음지쪽에는 녹지 않은 눈들이 제법 쌓여있다. 사실은 이런 설경을 보겠노라고 찾아왔는데 그동안에 거의 녹아버려 기념사진 몇 장을 추가하는 것으로만 아쉬움을 달랜다. 20~30분을 걸어도 적당한 장소가 나타나지 않는다. 좁은 능선 길을 타고 가다보니 등산로 외에는 둘이 쉴만한 아늑한 평지를 만나기 힘들다.

 대략 40여분 정도를 더 걸어가서야 둘이 앉을만한 평평한 바위가 눈에 띠었고 그때서야 우리는 배낭을 풀었다. 거의 2시에 가까워 졌고 보니 찬밥덩어리와 김치조각, 그리고 장조림 류 뿐인 도시락인데도 맛있기만 하다. 둘이 충분히 먹을 수 있을 만큼 모자라지 않게 싸왔지만 아내는 늘 먼저 젓가락을 놓고 나에게 양보한다. 찬밥 몇 덩어리 더 떠 먹어봐야 무에 배부를까만 그게 남편을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평소 밥상에 앉아서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생선을 내 놓으면 나는 대충 살만 가려먹는 편이지만 아내는 내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머지를 남김없이 발라먹는다. 몸에 배인 배려하는 마음이자 절약하는 마음이다. 그러하니 어찌 평생 한길을 같이 가지 않겠는가. 

 

산행 중의 점심. 아내와 알콩달콩 지내며 같은 길을 함께 걷는 게 즐거움이다. 가을날 김제 구성산에 올라 약간의 평지가 있는 정상에서 찍다.

 

 마지막 사과 한 알에 물 한 모금까지 더없이 맛있게 해치웠다. 배낭이 많이 가벼워졌다.

이후의 하산 길은 응달이 진 가파른 길인데다 쌓인 눈이 그대로 있어 여간 미끄럽지가 않다. 100m 정도만 잘 내려가면 될 것 같아 나무를 붙잡으며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 딛는데 뒤돌아보니 아내는 엉거주춤 주저앉은 자세로 힘들게 내려오고 있다. 오늘은 혹시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싶어 아이젠을 챙겨왔는데 지금까지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가 결국은 써야 할 일이 생겼다. 아내의 발에 채워주니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도 이런 눈길을 만나 겨울산행의 맛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음이 다행이지만 워낙 경사가 가파르다. 처음 등산안내도를 보며 이곳으로 오를까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하산코스로 택했음을 너무 잘했다 싶다.

 

  

세월만큼 사랑은 깊어지고

 다시 되돌아 온 강천산 입구, 근 30년 만에 아내와 함께 찾아 온 곳, 그 옛날 둘만의 추억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 테지만 강렬하지 않았던 터라 기억이 희미하게 지어진 곳, 그래서 오늘 둘만이 산행을 하며 또 다른 추억거리를 만들어 놓은 셈이지만 또다시 수많은 세월이 흘러 여기 다시 찾아오게 된다면 그 때도 역시 희미하게 지금의 기억을 더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돌아오는 차안, 왼쪽 편 넓은 운암호의 푸른 물결이 오후의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난다. 그 햇볕으로 채워진 차안이 따뜻하다. 아내는 몸이 풀리는지 어느 새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혹시라도 30년 전의 기억을 찾아내어 그 때 강천산에서 나와 만나고 있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월이 너무 흘러가 버렸지만 아내를 보는 눈과 사랑하는 마음은 그 때나 지금이나 저 산처럼 변함이 없다.

 다시 황지우의 그 ‘늙어 가는 아내에게’ 첫 대목,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아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시인의 상상력이나 표현력은 정말 대단해서 흉내낼 수가 없다. 어찌 이리 글을 잘 쓸까 싶을 정도로 아내 사랑하는 마음을 간결하고 절절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내가 지금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한다면 어떻게 글로 표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냥 말없이 쳐다보는 그것만으로도 내 마음을 전할 수밖에.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내도 나에게 구태여 그런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도 그냥 그렇게 살아 왔으니까.

 

내가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다오.

당신과 나의 영혼사이에는 아무런 말수가 필요 없다는 것을.

그저 따뜻한 미소 그 하나 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포근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내가 머물러야 할 그 자리에 바로 당신이 서있는데

어찌 내가 그 자리를 내어 줄 수 없다 하겠습니까.

하여 내 운명의 또 다른 출발인 지금

나는 그대를 위해 나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힙니다.

나는 기꺼이 당신을 위한 촛불이 되겠습니다.

 

 머쓱하지만 20대 중반에 아내에게 보냈던 나의 편지는 물론 지금도 변함 없이 유효하다.

아내도 어느 새 오십 줄에 들어서 귀밑머리까지 하얗게 되었고 발뒤꿈치 도 굵은 선으로 많이 갈라졌다. 하지만 오히려 나이 들어갈수록 아내와의 정과 사랑은 더욱 깊어 갈 따름이다.

아내는 잠에 빠져 있지만 또 새삼 그런 말을 강조하느냐고 애써 모른 척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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