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겨울로
햇빛과 바람이 스산해지면서 가을이 지나갈 무렵부터는 전라북도의 동부 산악지역을 주로 찾았다. 바깥 날씨가 추우면 행동이 굼뜨기 마련이고 따라서 산행에 나선다는 게 귀찮을 때가 있지만 흔히 하는 말처럼 습관이란 것이 그 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산에 갔다 오지 않으면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을 하지 않은 것처럼 개운치가 않았다. 지난 번 모악산 입구에서 털모자를 하나 샀고 하니 그것을 한번 써 볼 요량으로 어서 집 밖으로 나서야 했고 또 산을 찾아 걷다 보면 맑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게 되고 어느 새 흐르는 땀과 함께 몸이 더워지면서 역시 산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되니 일단 집 밖으로만 나서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서울과 전주의 가을 느낌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야 TV에서 전해주는 가을 소식이나 쇼윈도우의 바뀌어진 진열 상품과 같은 유리창 안에서의 가을일 수밖에 없지만 전주는 잠깐만 차를 타고 나가도 널따란 들판의 산과 산의 연속 아닌가.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황량한 모습으로 변했지만 때때로 청둥오리나 까마귀 떼들이 무리 지어 날아다니며 쓸쓸함을 달랜다. 인근 야산들의 나무들도 많이 헐벗었다. 단풍이 드는가 싶더니 어느 새 낙엽이 지면서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단풍이나 은행같은 나무들은 잎줄기와 가지 사이에 떨켜라는 조직을 만들면서 일시에 나뭇잎을 떨어뜨려 겨울을 준비하지만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같은 참나무류는 본디 더운 지역에서 살았던 수종이어서 이 떨켜라는 것을 만들지 못해 누렇게 변해 뒤틀린 나뭇잎들을 그대로 매달고 있다.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는 것 같은 모습이지만 곧 매서운 바람이라도 불어 대면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여름에는 깊고 울창했던 산들이 겨울이 되면서부터는 나무들의 겨울준비 때문에 산의 맨살이 그대로 들어 나 보여 허전해 보인다. 겨울산은 겨울산 대로의 매력이 있는 법인데 사람들은 어느새 발길을 뚝 끊어버리고 집안에서만 웅크리고 지낸다. 나는 습관대로 계속해서 산행에 나섰다.
고원지대 산골의 겨울
가을이 지나면서 찾은 산들은 만인에게 덕을 베풀어 재난에도 화가 없었다는 만덕산(萬德山, 763m)과 바위산 그 자체인 내동산(萊東山, 887m) 그리고 자연휴양림이 있어 느낌이 좋을 것 같았던 성수산(聖水山, 876m) 또 TV무인중계시설이 꼭대기에 설치되어 있어 꼭 가고 싶었던 팔공산(八公山, 1,151m) 등등이고 아버지와 내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빼 내어 이름한 덕태산(德泰山, 1,113m)등 주로 전북 동부 산악지역에 속한 산들이 그 대상이었다.
진안군에 있는 고즈넉한 한 산촌 풍경.
이들 산들은 고원지대에 위치하여 그런 대로 높은 지형의 산에 속하지만 소위 금남정맥의 한 줄기를 이루고 있어서 산세가 비슷비슷한 편이다. 순차적으로 산을 찾아가는 산악회원들 모임 형태가 아니면 거의 인적이 끊겨 조금 적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제나 편안하게 오를 수 있었다.
만덕산은 전주 도심에서 불과 20여분 거리의 완주군 상관면 마치(馬峙)라는 아주 조용하고 아늑한 동네에서부터 시작하여 느낌이 좋았다. 그러나 낯선 사람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듬성듬성 들어앉아 있는 인가마다에서 개들이 어찌나 크게 짖어대는지 조용하던 산골이 일순간에 요란해진다. 여름에는 나무숲들이 있어 소음을 적당히 흡수해 그나마 덜하지만 겨울이 되면서부터는 울림 현상이 심해서 더욱 요란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산골의 개들은 낯선 어느 집 한 마리가 짖어 대기 시작하면 인근의 모든 집 개들이 동시에 짖어 대는 바람에 무척 당황하게 만든다. 또 어떤 곳은 도사견을 집단으로 사육하고 있어 이 놈들이 한꺼번에 짖어대며 사육장 창살을 뛰쳐나와 물어뜯을 것처럼 등등한 기세를 보이면 금새 혼이 나갈 듯 했다. 하여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쫓기 듯 마을을 빠져나가게 된다.
만덕산 정상에서 본 주변의 수많은 연봉들.
나뭇잎이 모두 저버린 산행 길은 삭막했지만 서리가 내린 탓에 주변 풀들이 하얗게 변해있어 색다른 느낌을 준다. 낙엽 쌓인 길을 걷노라면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듣기 좋지만 그만큼의 두께로 발에 와 닿는 푹신한 감촉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잎을 떨군 작은 나무들을 보면 마치 마른 나뭇가지들을 그냥 땅에 박아 놓은 듯하여 허허롭다. 군데군데 약간의 석축과 돌무더기 흔적만 남아있는 만덕사 옛터가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어 지루함을 잊을 수 있었지만 꽤 경사지고 단조로운 길을 그냥 걷기만 하다. 만덕산 정상에서는 지리, 덕유, 운장, 무등산 등 사방의 높은 산들을 조망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진안 내동산 원경. 내동산은 거의 암반층으로 만 이루어져 있다.
진안 내동산은 사실 산행 생각이 마음이 별로 없었다. 이따금씩 차를 타고 가다 근처를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내동산을 바라보면 삭막할 정도의 바위산으로 이뤄져 정상에 올라서 본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동산의 내(萊)는 쑥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이 마을에는 경작하지 않고 놀리는 땅이 많아 한 때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 일이 있다고 한다. 그 후 한 풍수가 가 쑥 내(萊)를 안 내(內)자로 바꾸면서 풍요로워졌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이다. 그러나 어떤 산은 안온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가 하면 또 어떤 곳은 음습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어서 풍수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가끔씩 해 볼 때가 있다.
내동산을 오르며...
산행 초입이 되는 동산마을에서 시작하여 암봉을 향해 본격적으로 오르기까지의 대략 15분 정도가 되는 송림 길의 짙은 솔 내음이 좋았다. 갈수기가 되어 물줄기는 약했지만 깎아지른 암벽에서 떨어지는 내동폭포와 바로 옆의 민가같은 약사암이 인상적이었다.
그 약사암을 지나 10여분을 걸었는데 10여m 측면에서 갑자기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순간 긴장하여 방향을 맞춰 쏘아보니 형체는 분간할 수 없으나 나뭇가지가 많이 흔들리는 것으로 봐 상당히 몸집이 큰 동물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추측컨대 낙엽더미에서 먹을 것을 찾는 노루 아니면 멧돼지일 것 같았다. 일단 스틱에 잔뜩 힘을 주고 숨죽이며 노려봤더니 잠시 후에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람이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약초꾼이었던 것이다. 잠시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소리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깊은 산중에서 경험하게되는 헤프닝이었다.
내동산 산행의 중간 지점에 있는 민가 형태의 약사암 앞에서 잠시 심호흡을 하며. 바로 옆으로 수직으로 된 암벽 폭포가 있다.
임실 성수산은 자연휴양림이 있어서 인지 특히 하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러나 겨울이 되면서 계곡 가장자리는 살얼음이 얼었고 응달진 등산로의 약간씩 패인 곳마다 고여있던 물이 얼어붙어 발을 내딛을 때마다 와드작 와드작 하는 소리가 더없이 정겹다. 또 푸석 푸석한 땅이 살짝 부풀어오른 곳을 밟을 때마다 뽀드락 뽀드락 하며 서릿발 바스러지는 소리를 들을라치면 어릴 적 고향의 겨울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이었다.
성수산 자연휴양림은 학교나 직장단위의 이용자로부터 예약을 받아 하루 이틀 정도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때때로 이들을 대상으로 성수산 정상까지 등산을 하는 커리큘럼이 있을 것이다. 아마 그 때문일 것이라는 판단을 해보지만 휴양시설이 있는 곳에서부터 30여분 정도 거리의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상이암(上耳庵) 초입에는 커다란 철제 대문이 길을 가로막고 ‘여기는 수행정진중인 곳이니 등산객의 진입을 금한다’는 경고성 표지판이 그 옆에 서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니 방해가 된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산중 암자에 육중한 철문까지 설치한 것은 너무했다 싶다. 혼자지만 나도 등산객이고 보니 그 때문에 상이암을 통과하는 지름길을 택하지 못하고 한참을 우회하여 올라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암자의 위쪽 경계를 울타리로 표시하면서 철조망을 두른 것이 또 몹시 눈에 거슬리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나무에 못을 박아 가시철사를 둘러놓은 것 아닌가.
“정말 고약하군. 철문도 모자라서 생나무에 못질하고 가시철망을 두르고… 이래서야 어찌 중생제도 어쩌고 한다는 것인지-”
나는 많이 화가 났다. 다시는 이쪽으로 발 들여놓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정상까지 가겠다고 그저 가파르기만 한 길을 계속 걸었다.
성수산 정상까지는 어느 산보다도 경사가 급했고 등산로서의 특색이 없을 만큼 밋밋했는데 결국은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에 내가 죄 값을 받았다. 내려오는 길에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그대로 주저앉아 얼마동안 고통스러움을 겪어야 했다. 생각해 보니 경사가 급한 길을 너무 무리하게 걸어 이상신호가 온 모양이었다. 용인에 있는 용문산을 올랐을 때도 경사가 급한 길을 오래 걸어 쥐가 나 잠시 고통을 당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은 철문과 철조망을 두른 암자의 태도에 화를 내어 그 죄 값을 받는가보다는 생각이었다. 같이 대응하지말고 항상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자고 마음을 다스려 보지만 그런 점에서는 나는 아직 수양이 한참 모자라는 편안가 보다.
그쯤하고, 전라북도에는 KBS의 TV무인중계탑이 39군데나 있다. 이것은 강원도보다 숫자가 많은 것으로 그만큼 산간오지가 많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방송국 주 송신소에서 발사한 전파가 가정에 직접 도달하지 못해 군데군데 높은 산마다에 간이 중계시설을 만들어 전파가 쉽게 도달할 수 있도록 그 만큼 많은 수효의 중계탑을 설치했다는 얘기다.
진안 장수군 일부를 커버하는 팔공산 TV중계탑도 그 중에 하나다. 산에도 오르고 그 시설도 한번 둘러보고 싶어 진안 백운면 신암리 화암저수지를 지나 적당한 빈터에 주차를 하고는 구불구불하게 난 임도를 따라 차분하게 올랐다. 그런데 중계탑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 갑자기 길이 끊긴다. 어디 있겠지 싶어 길을 찾아 좌우로 서 너 차례나 오가면서 흔적을 찾아 봤으나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 어떤 곳은 일정한 폭으로 풀들이 누어 있어 이곳인가 보다 싶어 한참을 따라가다 보면 길이 끊기고 해서 덤불을 해치고 다니느라 꽤 고생을 한 편이다. 완주의 종남산에서도 길이 없어 1시간 정도를 헤맨 일이 있는데 물론 사람을 만날 수 없어 겪어야했던 불편이었다. 평소 ‘산 속을 헤맨다’라는 말을 우습게 알았으나 나는 이 두 번의 경험을 통해 그 말이 상당히 무서운 말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돌아오는 길, 고랭지 재배인 듯 고지대의 수확이 끝난 넓은 무밭에 군데군데 뽑지 않고 버려 둔 무들이 널려있었다. 한 개를 뽑아 입에 물어보니 먹을 만 한 것 같다. 군 훈련병 시절 P-25라는 무전기를 메고 훈련을 받으면서 교관 몰래 버려진 무밭에서 무를 뽑아먹으며 배를 채우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버려진 무가 아까워 깍두기 김치라도 담아먹자고 배낭에 가득 담아 무겁게 메고 돌아오다. 그런데 아내가 수고하여 막상 무김치를 담아놓으니 맛이 너무 아니었다. 결국 모두 버려야했다. 밭에 버려진 무가 아깝다는 생각에 그리하였지만 그것도 괜한 욕심을 부렸던 결과이고 보니 과욕은 금물이라는 교훈을 새삼 가르쳐준 산행이었던 셈이다.
덕태산 초입에 있는 점천폭포. 갈수기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는데 폭포로서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덕태산은 아버지와 내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합쳐 놓은 것으로 은근히 정이 갔으나 부자간의 정을 느낄만한 더 이상의 것들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입구의 넓은 계곡과 점천폭포는 차라리 여름에 찾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정적의 시간 속으로
그렇게 해서 가을이 겨울로 이어졌다. 겨울산은 계곡물소리마저 잦아들어 조용하기만 하다. 어쩌다 한번씩 너구리나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이라도 마주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껏 그런 일이 없어 아쉽다. 기껏해야 청설모나 다람쥐 정도 뿐. 그나마도 요즘은 다람쥐마저도 보기 힘들어 졌다. 최근 들어 멧돼지들이 많이 늘어 나 산촌 농가의 피해가 크다는데 이놈들은 멀리서 사람의 냄새만 맡아도 미리 피해버리는 바람에 산에서 마주칠 일이 없다. 그러니 산에서 만나는 들짐승이라고 해봐야 기껏 다람쥐 아니면 청설모, 족제비 정도가 전부이고 오히려 날짐승과 친숙해진 편이다.
아직은 산새들과 친숙하지 못해 새소리를 듣고도 어떤 새 인지 분간을 해내지 못하지만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의 둔탁한 공명음이라도 듣게 되면 그 땐 갑자기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산골에 사는 한 아이가 숲 속으로 달려간다. 취재하던 PD가 묻는다.
“어디 가는데?”
“새가 왔나 보려고요- ”
뛰어가던 아이는 숲 앞에 멈춰 서서는 숲 안 쪽으로 쫑긋 귀를 갖다댄다.
“새소리가 들리니?”
“네- ”
“무슨 새가 왔는데?”
아이는 숲 쪽으로 귀를 댄 채로 가만히 있다가는
“까치 3마리 하고요, 박새 2마리 하고요…… , 어치 1마리가 왔어요- ”
소리로 새 종류를 판별하는 신통력과 자연에 동화되어 함께 살아가는 그 해맑은 순수성에 탄복했다.
초겨울의 자유로운 단독 산행. 가끔씩 청설모가 재롱을 피우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즐겁다.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서의 산행, 이 때쯤이면 바람의 움직임까지도 눈에 보일 정도로 나의 감각이 예민해진다. 한 가닥 찬바람이 불면서 몇 잎 붙어있지 않은 신갈나무 잎이 파닥거리며 땅에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그리고 온 산에 흰 눈이 내리면 비로소 산은 깊은 겨울에 빠져들게 되고 그 속에서 눈 무게를 못 이겨 탁- 하며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를 듣는 것도 더없이 정겹다.
그것뿐인가. 드러나지 않게 살아가는 온갖 생명체들의 소리들을 나는 그 안에서 마음 안으로 보고 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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