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가운 사람들의 터전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의 커튼을 열어제치면 모악산은 일정한 거리에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무연이 서 있었다. 그래서 전주에서 생활하던 2년 4개월 동안 모악산은 늘 내 마음 안에 담겨있던 상징적인 산이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산, 오르지 않아도 올라가 있는 것 같은 산, 모악산은 그렇듯 어머니 품처럼 푸근한 산이었다.
전주에 부임해 내려온 지 사흘 째 되던 날 일요일 아침, 차를 몰아 완주군 구이면(九耳面) 쪽의 모악산 쪽으로 달렸다. 모악산이 좋아 모악산에서 살고 있는 시인 박남준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그가 모악산을 떠나려 한다는 기사를 본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만나서 계속 머물러있어 달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마을 사람에게 길과 집의 위치를 찾아갔으나 그는 외출하고 없었다. 앞쪽으로 작은 시내가 흐르는 초막 같은 집이었다. 마치 제주도의 정낭처럼 문도 없는 대문에 긴 나무 막대 두 개를 걸쳐놓았다. 나는 그 옆에 모악산에 계속 있어 달라는 메모 한 장 남겨 두고 돌아서 왔고, 서울 지하철 역사에서 그의 말간 모습이 커다랗게 클로즈업된 전광 홍보판에서 그의 맑은 얼굴을 보았을 뿐 이후 그를 만나지 못했다. 모악산 시인이라 불리던 그는 지금 경남 하동 땅에서 살고 있다고 들었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모악산 겨울모습. 구이저수지와 너른 들녘을 품고있어 안온하고 풍성한 느낌이다. 경각산 정상부에서 촬영.
그리고는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그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서양화가 유휴열 화백을 만났다. 나는 그를 형이라 부르며 따랐고 형은 한 쪽이 온통 유리로 만들어진 그 만의 거실에서 소주를 따라 주었다. 유명세로 인해 적당히 배를 채웠을 것 같은 형은 놀랍게도 옆에 있는 또 다른 형에게 ‘돈 좀 췌 주라(꿔 주라)’고 얘기한 일이 있었다. 그는 돈이 안 되는 비구상에 매달려 그의 곧은 혼을 형상화시키며 화실과 겸해서 쓰고 있는 창고 가득히 그런 작품들만으로 만 채워가고 있었다. 모악산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살아 더욱 좋았다.
생각나는 모습들
모악산에는 금산사가 있어 미륵신앙이 이곳에서 뿌리 내렸고 견훤이나 이성계, 정여립 등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은 이곳에 와 미륵신앙을 찾았다. 한때 교세가 막강했던 증산교(曾山敎)가 여기에서 퍼져 나갔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한을 방문하면 참배하겠다고 해서 화제가 된 바 있는 전주 이씨의 시조 묘가 또 여기에 있다.
전주 주변에는 서방산, 종남산, 위봉산, 경각산 등 산행을 할 만한 적당한 높이의 산들이 많으나 유독 모악산의 산세가 뛰어나고 조망이 좋으며 접근성이 가장 좋은데다가 산행에 필요한 시설들을 비교적 잘 갖추어 놓았고 보니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된 것이다. 요즘 주말이나 휴일이면 평균 3만 명 정도(이 숫자는 어느 정도 과장된 것일 수도 있겠으나 한 지역 신문에서 집계한 것이다)가 찾아 와 산행을 할 정도가 되었다.
모악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대략 20여 개 정도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크게는 3가지 코스가 있다. 하나는 김제 금산사 방향에서 동쪽을 향해 오르는 것이고 다른 두 개는 완주군 구이면과 전주 중인동에서 서쪽으로 오르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사람과 덜 부딪치는 중인동 코스, 그 중에서도 오른 쪽의 한적한 등산로를 좋아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많이 선택한 것은, 사실은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편하게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 얘기는 뒤에서 하기로 하고, 모두들 좋아하고 아끼고 때로는 어머니 같은 산으로 숭배하는 모악산인데 나와는 3가지 악연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고교 졸업 후 친구와 어울려 금산사 쪽에서 정상에 올랐다가 흉기를 든 술 취한 불량배들을 만나 아무런 이유 없이 무릎을 꿇려야했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793m 정상에서 끝없이 펼쳐진 만경평야와 아스라이 보이는 서해 바다 등 주변 풍광에 탄복하여 감사의 마음으로 절로 무릎을 꿇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순전히 위협에 의한 것이었고 보니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智者樂水)라 했는데 산은 인자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만 찾아오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또 군에 입대하여 신병훈련을 마치고 향토사단에 부대 배치를 막 받은 어느 날 집합명령을 받았는데 주어진 임무는 더블 백에 자갈을 잔뜩 채워 넣은 채 그 무거운 등짐을 정상까지 짊어지고 올라가야 하는 일이었다. 당시 정상부근에 군 통신 막사를 짓고 있었는데 상당량의 자갈이 필요했던지라 나와 같은 신출내기들은 명령에 따라 노예 같은 비참한 모습으로 산을 올라야 했다. 그것도 오전 오후 두 번을 연거푸 올라야했기에 기진맥진했었던 역시 씁쓸한 기억.
전주 중인리 쪽에서 모악산을 오르며 눈밭에서 잠시 쉬다.
세 번 째는 최근의 일로 모악산 정상에 세워져있는 송신소를 이전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부터인가 ‘KBS는 불법건물을 즉각 철거하라’는 등의 플래카드가 모악산 등산로 입구 이곳 저곳에 걸려 나와 KBS의 입장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이었다. 이후 송신소 이전문제로 금산사의 월주 큰스님과 주지 평상 스님을 수 차례 만나 협의했으나 결국 지금까지도 뚜렷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모악산 산행을 자주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 문제는 좀 더 자세히 얘기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정상 점유의 이해 대립
모악산 정상에는 현재 KBS의 방송 송신시설이 들어 서 있다. 지난 1977년에 세워졌으니 30년 정도의 세월이 경과한 셈이다. 건립 당시에는 TV난시청 지역 해소가 1순위였고 보니 송신소 건물과 송신용 철탑이 우뚝 들어선 것에 대해 모두들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어찌 보면 당시에 TV가 유일한 오락 기능을 담당했던 터이고 보면 TV가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 상황이 바뀌었다. 케이블TV와 위성방송 등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급속한 영역확대로 인해 사람들은 굳이 별도의 수신료를 내며 KBS와 같은 지상파 TV를 시청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또 여가시간 증가로 인해 산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도 KBS가 여전히 산의 정상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불만이 생겼을 것이고 그리고 산 정수리에 안테나가 세워져있어 모악산의 정기를 누르고 있을 것이라는 점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어떻든 그런 맥락에서 KBS송신소가 특별히 모악산 정상을 차지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금산사측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의 현실적인 주장이다. 사실 내가 등산객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도 어느 특정 시설이 산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짜증스럽고 기분 나쁜 일이었다. 정상을 내 발로 디뎌보겠다는 마음으로 땀흘려 올라왔는데 막상 그 자리에 특정한 건축물이 버티고 있어 돌아 설 수밖에 없다면 얼마나 속이 상할 것인가.
현재 모악산 정상의 토지는 금산사 소유로 되어 있고 그 토지를 임대했던 KBS는 금산사와의 계약이 종료되는 바람에 비워주어야 했다. 그것은 아무런 대안도 없이 그렇게 서류를 꾸며 계약을 했던 KBS측의 잘못이 있다. 따라서 송신소를 조속히 이전하라는 금산사측과 일부 여론 주도층의 요구는 당연한 것이었다. 나로서는 내가 재임하는 동안 이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로 본사와 금산사를 오가며 타협점을 이끌어 냈다. 모악산송신소가 국가기간방송시설로써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2007년까지 다른 곳으로 완전 이전하여 정상을 비워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이후 여기에서는 밝힐 수 없는 금산사 측의 입장 변화로 인해 무산되어 버리고 이 문제는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되어 버렸다. 모악산 정상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으나 아직까지는 뚜렷한 해결 방안이 모색되지 못하고 있어 산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모악산 정상의 방송사 송신시설. 초기에는 가시청권 확대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으나 지금은 자연훼손이라는 갈등과 대립에 휘말리고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케이블카를 이용해 정상을 수시로 올랐던 것이다. 모악산에 케이블카가 있다는 것은 사실 전주 사람들마저도 잘 알지 못한다. 현재도 금산사 방향에서 6인승 케이블카가 매일 정상을 오른다. 물론 일반에게는 개방하지 않고 정상 일대에 있는 각종 시설의 근무자 들이 전용으로 이용하고 있다. 모악산 최정상에는 KBS송신소가 있지만 정상 일대에는 KBS뿐만 아니라 도내 각 방송사의 송신 시설과 군, 민간 통신시설 등을 비롯한 국가 주요 시설이 들어 서 있어서 적지 않은 인원이 상주하고 있어 이 때문에라도 효과적인 이동 수단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가장 필요성이 요구되는 KBS가 주도적으로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운행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케이블카를 이용하면서 일반 시민들도 자유스럽게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조망대를 포함한 방송타워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계획해 본 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송신소 이전 문제와 관광레저 시설 유치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과 대구 전주시 등 몇 군데를 통하는 동안 수익성 문제 등으로 인해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모악산 송신소 이전 문제는 우선 방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이라서 적잖은 어려움이 있지만 어떻든 몇 가지 미묘한 문제가 겹쳐있어 원래대로 어머니 산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고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평범한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모악산 산행을 해야했고 그 이후에 완주군 구이면의 동쪽 산자락에 도립미술관이 꾸며져 개관이 되었다. 산행과 곁들여 여러 작가와 분야에 걸쳐 다양하게 그림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싫은 점 한가지를 구태여 얘기한다면 주말에 등산객이 너무 많다는 것말고는. 입구 도로를 따라 즐비해진 음식점과 등산용품 가게도 그렇지만 그곳에서부터 대원사까지는 마치 신작로를 방불케 하여 등산로라고 이름하기에는 거북스럽다.
그래서 오솔길다운 호젓한 등산로를 원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샛길을 찾아내어 이용한다. 나는 전주 중인동 방향의 코스를 택하는 편이었다. 중인동에서 시작하여 금곡사 오른쪽으로 작은 계곡을 끼고 완만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삼나무 숲을 만나게 되고 민가처럼 안온한 분위기의 염불암에서 약수 한잔 떠 마시고 잠시 쉬면서 저 아래 전주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언제나 떠밀려서 살고있는 듯한 삶의 중심에서 몇 발자국 물러나 차분히 자신을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염불암을 지나 급사면을 타고 조금 오르면 매봉 삼거리가 되고 그곳에서부터 능선을 타고 정상까지 가는 것이다.
한결같은 어머니산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모악산을 찾았을 것이다. 아직 KBS에 몸담고 있는 내 입장으로서는 모악산 정상에 아직 남아 있어야 하는 송신소 문제로 모두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산은 몰라도 모악산을 오를 때만큼은 마음이 가볍지 않았고 솔직히 꺼려지는 점도 없지 않았다. 머지않아 원만히 잘 해결되어 모악산 정상을 등산객에게 돌려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모악산 사랑하기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한 지역신문과 나에게 수시로 전화하여 송신소 이전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쏟았던 애향운동본부 임 총재께도 미안한 마음이다.
전북 사람들 모두는 모악산을 어머니 산이라 부른다. 모악산 정상 부근에 있는 한 바위의 형태가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있는 모습이어서 그런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모악산에서 어머니 젖줄처럼 흘러 간 물이 김제와 만경평야를 기름지고 풍요롭게 만든다고 하여 그렇다 하며, 또 어떤 이는 금산사를 비롯한 많은 암자와 신흥종교 단체를 안고 있어서 그런다고 말한다. 모두 맞는 얘기인 것으로 생각한다.
태백에서 금남정맥을 타고 와 널따란 평야지대에 우뚝 서 멈춘 그 자태가 언제나 든든하고 포근하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감싸안는 듯한 바로 그 모습 때문에 모악산은 누구에게나 어머니 산으로 불려지지 않나 싶다.
전주 구이면의 모악산 입구에 전북도민일보가 세운 시인 고 은 선생의 ‘모악산’ 시비(詩碑)는 이곳 사람들의 그런 마음을 담고 있었다.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
저 혼자 떨쳐 높지 않고
험하지 않고
먼데 내 고장 사람들 마저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내 자식으로 품에 안은 어머니외다.
여기 고스락 정상에 올라
거룩한 숨 내 쉬며
저 아래 바람진 골마다
온갖 풀과 나무어진 짐승들 한 핏줄이외다
세세생생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도 한 핏줄이외다
이다지도 이다지도
내 고장 모악산은 천년의 사랑이외다
오 내 마음 여기 두어.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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