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향적봉의 겨울동화 - 덕유산

소나무 01 2009. 12. 26. 00:48

 

 

먼 산의 눈을 기다리며

 전라북도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는 무주에 있는 덕유산 향적봉이다. 제일 높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언젠가 그 곳에 올라가야겠다는 욕심을 부리기에 충분했고 다만 그 타이밍이 언제인가가 문제였을 뿐이었다. 어떤 계절이든 굳이 가릴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덕유산 산행의 백미를 한 겨울로 꼽고 있었다. 눈이 소복하게 쌓여 온통 은백색의 축제를 이룰 때 그 때야 비로소 찾아가리라고 생각하며 아껴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겨울철 같은 무주의 적상산(赤裳山, 1,034m)에 올랐을 때 봤던, 덕유산 정상에서 신령스럽게 빛을 내던 은백색의 장관을 멀리서 지켜보며 품었던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제법 내렸다. 이번 주말에 가면 틀림없이 눈꽃 구경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리 얘기해 두자면 이번에 계획한 나의 덕유산 겨울 산행은 방한장비를 단단히 갖추고 중무장한 채 출발하는 본격 산행이 아니라는 점이다. 폭설이 내린 지역에 대한 산행이 위험하고 무모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더욱 그렇다.

 전주에서 무주까지 2시간이 넘게 소요되고 산악지대의 도로 사정도 좋지 않은 편이어서 내 차를 포기하고 버스 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내와 서둘러 새벽밥을 먹고 무주스키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침 7시, 이른 시간이었지만 스키를 즐기는 사람인지 버스 안에는 이미 10여명 타고 있었으며그들은 특별하면서도 어딘가 요란하게 보이는 스키복을 입고 있었다. 나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외형적인 모습 그 자체를 신분 상승이나 되는 것처럼 남들에게 내 보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비싸고 좋은 옷을 입고서 그것도 아무나 갈 수 없는 특별한 곳을 찾아가는데 그냥 조용히 간다는 것이 양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버스에 같이 타고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유독 언행을 남다르게 보이려 하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도 두터운 파카를 입었다. 그러나 높은 산의 찬바람을 의식해서 입었을 뿐 내 겉옷은 구입한지 10년이 훨씬 넘었을 정도의 그저 평범한 옷차림일 따름이다.

 

 버스는 무주로 향하면서 손님을 위해 전주 외곽에서 잠시 쉬며 스키장에 가는 손님 대 여섯 명 정도를 더 태웠다. 차창 안으로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 왔지만 부족한 잠 때문인지 자꾸 눈이 감긴다. 버스 안 히터의 더운 바람 때문에 더욱 잠이 쏟아지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내는 새벽부터 부산하더니만 피곤한지 이미 잠에 들어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수많은 고개를 오르내리며 산과 산을 지났을 테지만 버스의 엔진소리는 자장가 소리만큼이나 부드럽다. 

 

덕유산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설경. 

 

 

지난 겨울 이야기

 눈 내린 겨울에 덕유산(德裕山)을 찾아가는 또 한가지의 이유가 있다. TV 아침 프로그램 책임을 맡고있던 시절, 겨울이면 자주 취재해서 소개하는 아이템이 산촌의 설경이었는데 경관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여러 지역가운데 가장 인상깊은 화면이 덕유산 설경이었다.

어느 날 여성탤런트 K씨가 리포터로 나서서 덕유산 최정상인 향적봉의 설경을 소개하고 있었다. 향적봉에는 눈이 흠뻑 내려앉아 온통 하얗게 변한 나무들 그리고 그 위에 피어 난 아름다운 눈꽃들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신비스런 덕유산정의 눈 덮인 경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화면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방송 주제 선택에 있어 겨울 설경은 언제나 흡인력을 갖는 아이템이었다.

 

 한참동안이나 눈 구경을 하고 난 다음에서야 비로소 리포터로 나선 K씨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특별한 등산장비나 방한장구도 갖춘 것이 아닌 일상적인 옷차림이었고 얼굴 화장기도 그대로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은 점이 있었다.

“무척이나 높고 험한 산이었을 텐데 어떻게 저런 옷차림으로 정상까지 올라갔지? 헬기를 탔나? 그럴 수도 있지만 헬기를 이용한다는 얘기를 사전에 들은 바가 없고… ”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다가 방송이 끝난 뒤 결국 취재를 맡았던 PD를 불렀다.

“어이, 거길 어떻게 올라갔어? 자네 대단한 사람이네- ”

“ …… ”

담당 PD는 씨익 웃기만 하였다.

“눈길에 하루 이틀은 생고생했을 텐데 거길 어떻게 올라 갔냐구- ”

“아까 대피소 안에서 인터뷰하는 것 안보셨어요? 거기에서 하룻밤 자고 새벽 일찍 올라갔지요-”

“대피소? 대피소까지는 어떻게 올라갔는데? 아니 대피소 거기도 굉장히 추웠을 것 아니야”

“당연하죠. 저 추워서 죽을 뻔 알았어요. 고생 많이 했어요. K씨(탤런트)도 고생했어요. 그러니까 그림이 나오죠-”

이 친구는 어느 새 자신이 촬영한 영상에 대해 자랑을 하고 있었다.

“그래 아주 좋았어. 그런데 장난하지 말고 바른대로 말해 봐. 어떻게 올라갔는데? 어떻게 올라갔는데 옷차림이 그렇게 가벼워? 거기는 안 춥나?”

궁금한 것들을 한꺼번에 쏟아 내었다.

“안 춥다니요,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다시 가라하면 안가요”

“그러니까 어떻게 갔냐구- ”

이 친구는 냉큼 대답하지 않고 변죽만 울리다가 한참 너스레를 떨고 난 다음에야 히죽거리며 대답해 온다.

“거기요? 거기에 곤돌라 있어요. 아, 거기에 스키장 있잖아요. 스키장 밑에서 곤돌라 그것 타면 5분이면 올라가요. 거의 꼭대기까지요. 거기에서 한 15분 정도만 걸어가면 정상이거든요. 거의 평지로 가요!”

“이 사람잇- ”

속은 느낌이었다. 그 친구는 직장생활에서 나를 항상 그림자처럼 보좌해주던 능력 있는 친구인데 지금도 일선의 제작팀장으로 열심히 일에 몰두하고 있는 후배 PD다.

 

 어떻든 덕유산 정상에는 곤돌라가 닿는다는 것을 그 송기윤 PD로부터 처음 알았고 그 후 몇 년이 지나 이번에는 내가 이용해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혹시나 하여 어제 전화로 현장에 확인해 보니 내일 주말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말하자면 바람만 불지 않는 한 곤돌라를 정상 가동한다는 것이었다. 바람이 불면 곤돌라가 흔들려 자칫 인명사고로 연결될 수도 있어 운행하지 않는 날도 많다고 한다.

 이윽고 버스는 무주콘도 정문을 지나 스키장 안으로 깊숙이 들어 와 멈춰 선다. 처음 와보는 곳이라 많이 낯설다. 주차장뿐만 아닌 온통 눈밭인 넓은 빈터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승용차와 버스 등 각종의 차량들로 가득하다. 경기, 경남, 전남 등 넘버 판의 지역이름이 그만큼 다양하다. 언제부터 이렇게 스키인구가 늘어났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첩첩산중인데 무슨 빅 스포츠 대회장처럼 사람들로 넘쳐난다. 생활 형편이 나아진 만큼 취미나 여가생활도 다양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남에게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옷차림에 비싼 음식을 스스럼없이 먹는 사람들을 보면 사실 부럽다는 것보다는 연민의 정을 느낄 때가 더 많다. 저 혼자 잘나고 잘 사는 것처럼 제발 좀 거들먹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질 때가 사실 한 두 번이 아닌데 여기에 와서도 그런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침을 대충 했고 보니 시장기도 들거니와 산행을 위해서라도 뭔가 더 먹어야 했다. 두리번거리며 음식점을 찾아본다. 일시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인지 입식의 스낵코너가 있다. 우리가 먹겠다고 맘먹은 우동과 김치볶음밥은 시중에 비해 거의 두 배나 비쌌다. 다른 메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한철 장사라지만 이건 엄청난 폭리다. 은근히 화가 났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대충 먹어 치우고는 스키장 시설을 둘러보다.

 매우 큰 스키 대여장소에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활강을 위해 리프트카를 기다리는 행렬도 만만치 않다. 평지에는 스키를 배우는 초보자들이 그룹단위로 조심조심 몸놀림을 하고 있다. 나도 배우고 싶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은 딱 질색이다. 사실 이젠 이미 나이가 들어 배울 수도 없는 입장이지만.

 

 

새하얀 동화의 세계

 정상 쪽으로 가는 곤돌라에는 이용객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스키와는 특별히 관계가 없고 대부분 관광용으로 이용되기 때문이었다. 귀엽게 생긴 곤돌라를 타고 난 후 불과 2~3분 지났을까? 아내의 환호와 탄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와~ 동화나라에 온 것 같네- ”

나도 같은 감정이었다. 나뭇가지마다에 수북히 내려앉아 그대로 꽃이 되어버린 눈들이 너무 아름다웠고 가지마다의 고운 선들을 따라 또 하나의 하얀 선들을 무수히 만들어 놓았다. 그런 나무들로 숲을 이룬 설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와~ 멋지다. 정말 멋있다”

아내의 탄성이 계속 이어졌다. 아내와 함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름답고 멋지다는 말 외에는 생각의 한계로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었다. 아름다운 설경에 흠뻑 빠진 채 그런 모습 그런 느낌 그대로 곤돌라 반환점까지 올라갔다. 좀 더 오래 타면서 눈 내린 덕유산의 장관을 보고 싶었지만 케이블로 연결된 코스가 너무 짧아 아쉽기만 했다.

 

 너무 기분이 좋다는 느낌은 일단은 거기까지였다. 곤돌라가 회귀하는 설천봉 반환점의 건물을 빠져 나오자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친다. 어? 이게 아닌데- 하면서 갑작스런 찬바람에 주춤했지만 그래도 정상까지 가야했다. 한 15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고 했으니 어떻게든 참아야 했다.

 운동장처럼 넓게 닦여진 불과 200m 정도의 설원을 지나오는데 정말이지 찬바람이 너무 매섭게 파고들었다. 두터운 오리 털 파카를 껴입은 상반신은 그런 대로 견딜 만 했으나 하반신은 참기 어려울 만큼 감촉이 차가 왔다. 등산용의 비교적 두터운 바지인데도 차가운 바람을 감당해 내지 못했다. 그 춥다던 최전방 강원도 향로봉에서도 이런 찬바람은 겪어보지 않았고 보면 일생을 통해 가장 찬바람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평지를 지나 향적봉의 입구인 약간 경사진 길을 오르려하는데 쌓인 눈 때문에 등산화가 푹푹 빠지고 어떤 곳은 너무 미끄러워 더 이상 전진하면 사고가 날 것 같았다. 거기에다 운무까지 몰아 쳐 시야 확보도 되지 않았다. 거의 시계 제로 상태다. 큰 마음먹고 오늘 결행했는데 낭패였다. 내가 너무 경솔했었다는 후회가 들기 시작한다. 곤돌라에서 내려 잠시 걸으면 되겠지 싶어 내복도 입지 않았고 스패치는 물론 아이젠도 아예 준비하지 않은 건방진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대로 돌아서자니 너무 억울한 것이었다. 입구의 작은 초소의 한쪽 벽을 의지하여 차가운 바람을 피하면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본다. 돌아갈 것인가 말 것인가.

“그냥 돌아갈까?”

차마 그럴 수 없으면서도 힐끗 아내의 마음을 떠본다.

“그냥 가든지… ”

대답이 적극적이지 않다. 그 사이에도 발이 시려온다. 두터운 등산양말에 역시 두터운 가죽등산화인데도 발리 시린 것을 보면 확실히 바람이 몹시 매서운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아내는 추위가 나보다 덜한 모양이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타이타닉호의 침몰한 후에 실제 여자 주인공인 로즈가 그 차가운 얼음바다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것을 보고 확실히 여자는 추위에 강한가보다고 아내에게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극한상황에서는 언제나 여자의 생명력이 강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바로 위쪽에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내려오는 듯한 대화소리가 들린다. 순간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무가 몰아치고 찬바람이 매서운데도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산행하고 있다니 놀랄 만 한 일이었다. 얼마 후 시야에 나타난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었다.

“아니 그 위쪽은 안 춥습니까? 바람이 세게 불지 않아요?”

나의 걱정 어린 질문에 되돌아오는 열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아들 녀석의 아주 태평스런 대답이었다.

“바람이 조금 많이 부는 편 이예요”

‘조금 많이’는 또 뭔가.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묵묵부답이고 다시 돌아오는 아들의 대답,

“많이 쌓였는데 다니는데는 괜찮아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고 시야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저기 경사진 곳만 통과하여 꺾어져서는 그곳에서 시야를 살펴본 후 더 이상 안되겠다 싶으면 미련 없이 돌아서자고 아내와 정리한 후 크게 호흡 조절하고 운무가 몰아치는 가운데 전진했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여 최대한 조심하며 나뭇가지들을 붙잡고 미끄러운 경사로를 올라섰다. 주변에는 키를 넘는 나무들이 눈을 잔뜩 뒤집어썼고 그 사이로 등산로가 나 있다. 그런데 웬걸 여기는 거짓말같이 바람이 잔다. 오히려 안온한 느낌이 들어진다. 불과 20~30m 사이인데 이렇게 차이가 날 수가 있는가 싶다. 생각해 보니 조금 전에 지나온 곳은 시야가 툭 트인 바람이 지나는 길목이었던 것 같았고 그래서 방풍역할을 해주는 나무의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곳부터는 전혀 별천지가 눈앞으로 전개되면서 그림동화에나 나올법한 은세계가 펼쳐지는 것이었다. 강원도 건봉사 부도탑에서 봤던 설경 이후 처음 대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내도 연거푸 탄성을 내지른다.

“와~ 여기는 진짜 동화나라네- ”

지금까지 봤던 설경에 비해 ‘진짜’라는 단어가 하나 더 붙은 걸 보면 그야말로 최상급이라는 얘기다. 만져보고도 싶고 가지를 흔들어 눈 세례를 맞아 보고도 싶고 눈밭에 뒹굴어 보고도 싶고… 우리들도 동심으로 돌아 가 아무튼 그냥 눈 속에 푸욱 빠져들고 싶은 심경이었다.

“와- , 좀 전에 그 걸 못 참고 돌아갔으면 어마나 후회했을까. 큰 일 날 뻔했네- ”

이제 견딜 만 하니까 은근히 엄살을 부려보는 것이다.

 

 덕유산 정상을 오르는 눈길에서의 아내. 주위는 온통 눈의 축제였다.

 

 

 키 작은 나무들로 빽빽이 들어 찬 숲 속의 통로는 온통 은백색의 장관이었다. 나무 형태에 따라 각각의 눈꽃들이 피어있다. 말할 것도 없이 곧바로 카메라를 꺼내들고 여기 저기 눌러대었다. 멀리에서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바로 앞에서 얘기하는 듯 그들의 목소리가 가깝게 들린다. 수북히 내린 눈으로 숲 속으로 난 작은 통로가 하나의 터널을 이루어 방음막을 형성하고 공명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았다. 만나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대부분 등산장비를 갖추지 않은 가벼운 옷차림이다. 분명 곤돌라를 타고 우리보다 일찍 왔다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그 추운 장소를 통과했는지 그러고 보니 좀 창피하다는 생각도 들어지는 것이었다.

 

 지루함과 피곤함도 없이 쉽게 정상에 다 이르다. 해발1,614m. 그러나 심한 운무 때문에 불과 몇 십 미터 앞은 보이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 주변에 30~40명 정도는 모여있는 것 같은데 유독 한군데에 많이 모여있는 것 같다. 가까이 다가 가 보니 최정상을 의미하는 향적봉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돌탑 앞에서 순서대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도 예외일 수 없었다. 산악지방 고지대의 날씨는 수시로 변한다지만 사방을 분별할 수 없는 지금의 운무가 쉽게 거칠 것 같지는 않았다. 언젠가 꼭 와보고 싶었던 덕유산 정상, 비록 손쉽게 올라오긴 했지만 아내와 함께 은세계의 장관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고 좋은 경험이었다.

 

 운무에 덮힌 덕유산 향적봉 정상에서. 찬바람이 몰아 쳐 매우 차가웠다.

 

 오후 2시 30분쯤, 우리는 무주버스터미날 인근 식당에서 늦게나마 4천 원짜리 백반으로 맛있는 점심을 즐기고 버스에 올랐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고개를 뒤로 돌려 멀리 덕유산 쪽을 바라보니 그 사이 구름이 말끔히 걷혀 마치 하얀 색 발광물질을 칠해 놓은 듯한 정상부근이 뚜렷하게 보인다. 향적봉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 후 1년 반의 세월이 지난 뒤 여름날에 다시 덕유산을 찾아가게 된다. 들꽃과 나뭇잎과 계곡의 물과 그리고 바위들까지 그 모든 것들을 직접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쉽게 올라야 했던 지난번 겨울 산행에 대한 가벼움 때문이었다.

 출발지는 무주구천동 삼공매표소,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반의 어느 아이가 수업시간에 해찰을 하자 선생님은 ‘네 이놈 자식, 무주구천동에 보내 버린다’라고 일갈해서 나는 무주구천동이란 것이 무시무시할 정도의 무서운 귀신인 것으로 알아들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와 처음 가보고는 깊고 깊은 산골짜기인 것만은 틀림없으나 참 경치가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한차례 더 찾아 갈 기회가 있었으나 지금처럼 규모 있는 관광지는 아니었다. 손님 맞을 채비로 준비가 한창인 즐비한 상가를 지나 계곡을 끼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해서는 돌아올 때까지 다섯시간 정도를 걸었다.

 

 이른 아침 서둘러 산행에 나선 까닭인지 구천동 계곡을 거쳐 백련사, 향적봉에 이르기까지 다만 십 수명의 등산객들만 만난 편이었다. 그래서 보다 차분하고 여유 있게 산과 대면할 수 있었다.

산은 이번에도 변함 없이 그 모든 것을 받아주었다. 우리 인생도 산행과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오르고 내려오고, 또 오르고 내려오고… 거기에는 다만 완급과 장단이 있을 뿐.